[진리 탐구 08] 헤겔 vs 쇼펜하우어
서울 시내의 한 카페. 늦은 밤, 대학원 수업을 마친 청년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누군가는 “우린 부모 세대보다 분명 더 나아진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 적어도 민주주의는 지켜냈잖아”라고 말한다. 다른 이는 고개를 젓는다. “그렇지만 취업난은 여전하고, 집값은 감당이 안 돼. 기후 위기는 더 심해지고 있고, 전쟁 뉴스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데… 정말 역사가 진보한다고 믿을 수 있을까?”
순간, 테이블 위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청년 세대의 마음속에는 두 개의 시선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다. 하나는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온 길은 조금씩이라도 좋아져 왔다’는 희망의 시선, 다른 하나는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비관의 시선이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인간의 욕망과 고통은 여전히 우리 삶을 짓누른다.
이 질문은 단순히 개인적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사실, 철학의 역사 속에서도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거대한 논쟁이었다. 바로 헤겔과 쇼펜하우어라는 두 철학자의 대립이다.
헤겔은 말했다. “역사는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진보의 과정이다.” 그는 역사를 단순한 사건의 집합이 아니라, 인류 정신이 더 큰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나아가는 거대한 흐름으로 보았다. 그에게 역사의 어두운 순간들—전쟁, 혁명, 좌절—조차도 결국 자유를 확대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였다. 청년들에게 이 말은 위로처럼 들린다. 지금의 고통과 불안도 언젠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발판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정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냉정하게 말했다. “인간은 끝없는 욕망과 고통의 순환 속에 갇혀 있다. 역사는 결코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의지를 맹목적 충동으로 보았고, 그 결과 역사는 언제나 비극을 반복한다고 보았다. 이 말은 청년들에게 섬뜩한 울림을 준다. 반복되는 취업난, 양극화, 정치적 갈등은 어쩌면 그의 말대로 ‘형태만 달라진 고통의 되풀이’가 아닐까?
오늘날 청년 세대가 겪는 삶의 풍경을 떠올려보자.
기후 위기 뉴스 속에서 “30년 후 지구가 안전할까?”라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채용 공고 앞에서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느끼며,
국제 전쟁과 분쟁을 지켜보며 “역사가 반복되는 건 아닐까?”라는 회의를 품는다.
이들의 삶은 헤겔의 ‘진보의 철학’과 쇼펜하우어의 ‘비관의 철학’이 충돌하는 최전선에 있다. 역사는 정말로 나아지고 있는가? 아니면 같은 고통을 반복할 뿐인가?
이 질문은 결코 추상적인 철학적 논쟁에 그치지 않는다. 청년 세대의 일상은 곧바로 이 질문의 실험장이 된다. 정부가 내세우는 ‘디지털 전환’, ‘녹색 성장’, ‘청년 정책’이라는 이름들은 헤겔적 희망을 약속한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체감되는 불안, 경쟁, 반복되는 사회 문제들은 쇼펜하우어적 비관을 다시 상기시킨다.
결국 이 책의 9회차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두 철학자의 사상을 비교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청년 세대가 역사의 한가운데서, 진보와 비관이라는 두 철학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을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광장의 불빛 속에서, 혹은 카페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역사는 진보하는가, 아니면 되풀이되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어쩌면 청년 세대가 앞으로 만들어갈 세계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철학적 선택일지도 모른다.
19세기 유럽은 거대한 격변의 시대였다. 혁명과 전쟁, 산업화와 근대화가 동시에 몰아치며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바로 이 시기에 등장한 철학자들이 역사와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맞섰다. 헤겔과 쇼펜하우어의 대립은 단순히 학문적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 격동의 시대에 대한 두 개의 근본적 해석이자, 서로 다른 인간관과 역사관의 충돌이었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은 유럽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다. 절대왕정은 무너지고, 시민들이 권력의 주체로 등장했다. 자유와 평등, 박애라는 이상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혁명은 곧바로 테러와 혼란으로 이어졌고, 권력투쟁 속에서 수많은 희생이 뒤따랐다. 나폴레옹의 등장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 질서를 세우려는 시도였으나, 동시에 유럽 전역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여기에 19세기 초반부터 급격히 진행된 산업혁명이 더해졌다. 공장은 연기를 뿜어 올리고, 기계는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도시화는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빈부격차와 노동 착취, 열악한 생활 환경이 뒤따랐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물질적 생산을 경험했지만, 동시에 극심한 불안과 소외감을 겪었다.
이 두 사건—혁명과 산업화—은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인류는 정말 나아가고 있는가?”
“이 혼란과 고통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과정인가, 아니면 끝없는 반복의 시작인가?”
바로 이 질문 앞에서, 헤겔과 쇼펜하우어는 극단적으로 다른 길을 택했다.
헤겔(1770~1831)은 나폴레옹이 지나가는 장면을 보고 “나는 세계정신을 보았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게 나폴레옹은 단순한 정치적 인물이 아니라,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구현하는 존재였다. 헤겔은 역사 속 사건들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인간 정신이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진보의 과정’ 속에서 역사를 읽었다. 전쟁과 혁명, 혼란과 좌절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더 높은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었다.
그의 철학은 낙관적이었다. 그는 ‘역사’라는 이름의 거대한 무대가 결국 인류를 자유로 이끌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철학자의 역할은 바로 이 거대한 흐름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시대정신(zeitgeist)을 포착하는 일이었다.
쇼펜하우어(1788~1860)는 정반대의 입장에 섰다. 그는 유럽 사회를 뒤덮은 전쟁과 혼란, 산업화의 고통을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인간은 결코 합리적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은 맹목적인 의지(wille)에 지배받는 존재였다.
그는 역사를 진보의 과정으로 보지 않았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욕망이 충족되는 순간 또 다른 욕망이 태어난다. 따라서 삶은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전쟁과 혁명은 자유를 향한 진보가 아니라, 끝없는 의지의 충돌일 뿐이라고 보았다. 산업화와 근대화도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욕망을 자극하며 인간을 끝없는 결핍 속에 몰아넣을 뿐이었다.
이처럼 헤겔과 쇼펜하우어의 사상은 19세기 유럽의 두 얼굴을 대변했다.
헤겔은 혼란 속에서도 미래의 희망을 보았다. 그는 인간 정신이 결국 자유를 향해 나아간다고 믿었다.
쇼펜하우어는 번영의 이면에서 인간의 끝없는 고통을 보았다. 그는 역사가 반복될 뿐이라는 냉소적 현실주의를 강조했다.
이 대립은 단순히 철학적 이론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청년 세대가 살아가던 삶의 풍경 속에서 체감되는 문제였다. 혁명에 뛰어든 청년들은 자유를 외쳤지만, 곧바로 전쟁터와 산업 노동 현장에서 고통을 마주해야 했다. 이상과 현실,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은 바로 두 철학자의 대립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청년 세대 역시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기술과 민주주의, 인권은 과거보다 분명 나아졌다. 그러나 동시에 기후 위기, 불평등, 전쟁, 불안정 노동은 여전히 우리를 짓누른다. 헤겔식 희망과 쇼펜하우어식 비관이 동시에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따라서 19세기 유럽의 철학적 배경을 살펴보는 일은 단순한 과거 공부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질문을 준비하는 일이다. “우리는 진보를 믿어야 하는가, 아니면 반복을 직시해야 하는가?” 이 물음은 시대를 넘어, 청년 세대가 자기 길을 설계할 때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 된다.
헤겔은 혼돈의 19세기 유럽에서 누구보다도 역사와 사회의 깊은 의미를 탐구한 철학자였다. 그는 단순히 과거 사건을 기록하거나 분석하는 역사학자와 달랐다. 그의 관심은 “역사는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가?”, “인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 단호히 대답했다. “역사는 자유를 향한 진보의 과정이다.”
헤겔에게 역사는 무의미한 사건들의 나열이 아니었다. 역사는 하나의 ‘세계정신’(Weltgeist)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실현해 가는 장대한 과정이었다. 이 세계정신은 단순히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사회, 제도와 문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그가 보기에 인류 역사의 핵심 동력은 바로 자유였다. 고대 동양의 전제군주 사회에서는 오직 한 사람만 자유로웠다. 그 다음 단계인 고대 그리스·로마에서는 시민 일부가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근대 사회에 이르러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누리게 되었고, 결국에는 “모든 인간은 자유롭다”라는 인식에 도달한다는 것이 그의 전망이었다.
즉, 역사는 자유가 확장되는 과정이며,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 법칙이었다.
헤겔은 역사가 단선적 직선으로 나아간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변증법(dialektik)이라는 독창적 방법론을 통해 역사의 전개를 설명했다. 변증법은 단순히 ‘찬성과 반대의 토론’이 아니라, 대립과 갈등 속에서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 운동 원리였다.
- 정(These) : 하나의 주장이나 상태가 나타난다.
- 반(Antithese) : 그에 대한 반대나 모순이 등장한다.
- 합(Synthese) : 두 대립이 충돌하면서, 그 모순을 포괄하고 넘어서는 새로운 단계가 형성된다.
역사는 바로 이 정-반-합의 과정 속에서 발전한다. 전쟁과 혁명, 혼란과 위기도 결국 더 높은 자유와 질서를 낳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은 기존의 절대왕정을 부정하면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내세웠다. 그러나 혁명은 곧바로 혼란과 공포정치라는 반동을 불러왔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근대 시민 사회로 나아가게 되었다. 헤겔은 이러한 과정을 ‘역사의 필연적 변증법’으로 보았다.
헤겔은 역사 속 위대한 인물을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세계정신의 대리인으로 보았다. 나폴레옹을 “말 위에 앉은 세계정신”이라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전 유럽을 전쟁터로 만들었지만, 그 결과는 유럽 질서를 재편하고 자유주의적 제도의 확산을 촉진했다.
즉, 위대한 인물들은 자신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역사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세계정신의 도구가 되어버린다. 개인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만, 역사는 그것을 넘어선 ‘더 큰 목적’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한편으로는 개인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역사에는 의미와 방향성이 있다”는 강력한 신념을 담고 있었다.
헤겔의 역사철학은 당대 청년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19세기 초반, 혁명과 전쟁의 혼란 속에서 많은 청년들은 좌절과 허무에 빠지기 쉬웠다. 그러나 헤겔은 역사가 단순히 무너지고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설파했다.
그의 사유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오늘의 혼란과 고통은 결코 헛되지 않다. 그것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이러한 낙관적 비전은 좌절하던 세대에게 큰 위로와 방향성을 제공했다. 동시에 청년들이 혁명, 사회운동, 학문 연구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
오늘날 청년 세대가 직면한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 AI와 기술 발전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고, 민주주의와 인권은 확대되었지만, 동시에 기후 위기, 불평등, 전쟁, 불안정한 노동이 여전히 존재한다. 많은 청년들이 “역사가 정말 나아지고 있는가?”라는 회의 속에서 살아간다.
이때 헤겔의 철학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혼란과 위기 속에서도 역사의 의미를 읽어내려 했고,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힘을 신뢰했다. 물론 그의 낙관적 시각이 오늘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최소한 청년들에게는 “역사에는 방향이 있다”라는 믿음을 줄 수 있다.
즉, 청년이 경험하는 좌절과 무력감도 결국 더 큰 자유와 정의를 위한 과정 속에 있다는 관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철학적 메시지가 된다.
만약 헤겔이 역사를 거대한 진보의 드라마로 본 낙관주의 철학자였다면, 쇼펜하우어는 그 드라마를 정면으로 거부한 비관주의 철학자였다. 그는 인류가 점점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간다고 믿는 모든 사유를 환상이라 간주했다. 그의 눈에는 인간 존재는 본질적으로 고통스럽고, 역사는 그 고통을 반복하는 순환일 뿐이었다.
쇼펜하우어 철학의 출발점은 그의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잘 드러난다. 그는 칸트의 영향을 받아,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단순한 ‘표상(Representation)’, 즉 주관적 인식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과 자연을 움직이는 더 근본적인 것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바로 ‘의지(der Wille)’다.
이 의지는 합리적 목적을 향한 이성이 아니다. 오히려 맹목적이고, 충동적이며, 끝없이 욕망하는 힘이다.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욕망과 충동의 발현이며, 만족은 잠깐 스쳐 가는 순간일 뿐, 곧 또 다른 욕망으로 대체된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싶고, 먹으면 잠시 만족하지만 곧 또 허기가 온다.
성공을 맛보아도 오래가지 않고, 더 큰 성공을 원한다.
사랑을 이루어도 만족은 잠시, 다시 불안과 집착이 찾아온다.
즉, 인간은 끝없는 욕망의 노예다. 이 맹목적 의지가 우리의 삶과 역사를 지배한다는 것이 쇼펜하우어의 핵심 통찰이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행복할 수 없는가? 쇼펜하우어의 대답은 단호하다. 행복을 가로막는 것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인간 자신 안에 있는 끝없는 욕망 때문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충족의 순간은 항상 잠시뿐이다. 충족되지 않을 때는 결핍으로 인한 고통을 겪고, 충족되었을 때조차도 새로운 욕망이 나타나 또 다른 고통을 낳는다.
그리하여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 삶은 욕망을 좇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욕망이 잠시 멈춘 순간 찾아오는 지루함의 연속일 뿐이다.
그의 비관주의적 결론은 이렇게 요약된다.
“삶은 고통과 권태 사이의 진자운동이다.”
쇼펜하우어는 역사에도 냉정한 시선을 보냈다. 헤겔이 말한 ‘자유의 진보’나 ‘세계정신의 발전’은 그에게 환상에 불과했다. 역사는 단순히 인간 욕망의 반복된 발현일 뿐이었다. 전쟁과 혁명, 정치적 변화도 결국 권력과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에서 비롯되며,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가 ‘더 나아지는 것’은 없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 삶이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지만, 쇼펜하우어는 기술이 새로운 욕망과 불안을 더 만들어 낼 뿐이라고 보았다. 전쟁이 끝나면 평화가 올 것이라 기대해도, 평화는 잠시뿐이고 다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다.
그에게 역사는 희망의 직선이 아니라, 끝없는 욕망과 고통의 순환 고리였다.
그렇다고 해서 쇼펜하우어가 단순히 절망만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인간이 이 무의미한 욕망의 굴레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그것은 예술, 연민, 금욕이었다.
- 예술 : 음악, 문학, 미술과 같은 예술은 인간의 욕망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한다. 예술을 감상할 때 우리는 순간적으로 의지를 넘어선 세계와 접속한다. 음악은 특히 순수한 의지의 표현을 드러내며, 인간을 초월적 경험으로 이끈다.
- 연민(자비) :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공감하는 순간, 인간은 자기 욕망을 넘어설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윤리의 기초를 ‘이성’이 아니라 ‘연민’에서 찾았다.
- 금욕 : 결국 가장 근본적인 해방은 욕망 자체를 끊어내는 것이다. 그는 불교와 힌두교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아, 욕망을 멈추는 금욕적 삶을 이상적 해방의 길로 보았다.
즉,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지만, 예술과 연민, 금욕을 통해 그 고통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비관주의적 구원론이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19세기 당시 청년 세대뿐 아니라, 오늘날 청년 세대에게도 여전히 강렬한 울림을 준다.
- 청년들은 AI·기술 혁신, 무한 경쟁, 불안정한 노동 속에서 끝없는 성취 욕망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성취의 순간은 짧고, 곧바로 더 큰 욕망과 불안이 뒤따른다.
-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사회적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년들은 번아웃과 허무감에 빠진다.
-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현실을 정확히 짚어낸다. 그는 행복을 방해하는 원인이 외부의 제도나 운명만이 아니라, 인간의 끝없는 욕망 구조 그 자체라고 말한다.
이 통찰은 청년들에게 두 가지 교훈을 준다.
1. 불행은 나의 잘못만이 아니다. 인간 조건 자체가 불행을 낳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2. 그러나 예술, 연민, 자기 절제 속에서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이 점에서 쇼펜하우어는 청년들에게 냉혹하지만, 동시에 위로가 되는 철학자가 된다.
헤겔과 쇼펜하우어는 서로 정반대의 관점을 보여준다.
- 헤겔 : 역사는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진보의 과정이다. 혼란조차 더 큰 자유의 씨앗이다.
- 쇼펜하우어 : 역사는 욕망과 고통의 순환일 뿐이다. 진보는 환상이다.
이 대조는 청년 세대가 세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잘 보여준다. 하나는 희망의 철학, 다른 하나는 비관의 철학이다.
무대는 상징적 공간, 시간의 강 위에 놓인 철학적 광장이다. 양옆에는 헤겔과 쇼펜하우어가 마주 앉아 있다. 한쪽은 눈빛이 멀리 뻗어나가며 역사의 흐름을 응시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고개를 숙인 채 인간의 고통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두 철학자는 서로의 사유를 향해 불꽃 튀는 질문을 던진다.
헤겔:
“세계사는 곧 세계정신이 자유를 실현하는 과정입니다. 혼란과 전쟁, 갈등마저도 역사의 거대한 합 속에서 더 높은 자유로 나아가는 씨앗이지요. 프랑스 혁명을 보십시오. 폭력과 혼란이 뒤따랐지만, 인류는 이전보다 더 큰 자유의 단계를 경험했습니다.”
쇼펜하우어:
“그러나 당신이 말하는 자유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혁명이 끝나면 인간은 다시 욕망에 사로잡히고, 새로운 권력 다툼이 시작됩니다. 자유의 확대가 아니라 고통의 반복일 뿐이지요. 당신은 역사를 직선으로 보지만, 나는 그것을 끝없는 원으로 봅니다. 자유의 진보가 아니라 욕망의 순환, 그것이 역사의 진실입니다.”
청중으로 모인 현대 청년들이 술렁인다. 한쪽은 헤겔의 말에서 희망을 보고, 다른 한쪽은 쇼펜하우어의 말에서 현실감을 느낀다.
헤겔:
“인간은 이성적 존재입니다. 물론 욕망과 충동이 있지만, 이성은 그것을 매개하고 발전시킬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개인의 욕망은 국가라는 이성적 제도 속에서 조율되고, 역사 속에서 점차 자유의 보편성을 확장합니다.”
쇼펜하우어:
“나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이성이 아니라 맹목적인 의지입니다. 이성은 그저 욕망을 합리화하는 도구일 뿐이지요. 국가는 인간의 욕망을 억누르지 못합니다. 제도가 바뀌어도 인간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불행한 존재입니다.”
한 청년이 속으로 중얼거린다.
“시험 준비를 하면서도 끝없는 경쟁에 시달리고, 잠시 성취를 맛보아도 또 다른 불안이 밀려오지… 쇼펜하우어의 말이 이상하게 와닿는다.”
현대 사회를 주제로 대화는 이어진다.
헤겔:
“오늘날 인류가 과학과 기술을 통해 이룬 진보를 보십시오. 인간은 자연의 제약을 극복하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 제도의 확산, 교육의 확대, 의료 발전은 모두 역사적 진보의 증거입니다.”
쇼펜하우어:
“그 모든 발전은 또 다른 욕망을 낳았을 뿐입니다. 의료가 발달하면 더 오래 살고 싶어 하고, 교육이 확대되면 더 치열하게 경쟁하며 불행을 느낍니다. 기술은 인간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대신, 더 깊은 결핍과 불안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진보는 욕망의 장식일 뿐입니다.”
청년 청중들이 다시 반응한다. 어떤 이는 “그래도 기술이 없었다면 코로나 팬데믹을 버틸 수 있었을까?”라며 헤겔 편을 들고, 또 다른 이는 “팬데믹 이후 불안과 혐오가 더 커졌잖아”라며 쇼펜하우어의 손을 들어준다.
헤겔:
“인류는 세계정신을 통해 점차 자유의 이념을 실현할 것입니다. 구원은 역사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인간은 이성의 힘을 통해 자신과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쇼펜하우어:
“아니요. 역사는 결코 구원의 길이 아닙니다. 오직 개인의 내적 전환을 통해서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욕망을 절제하고, 연민을 실천하며, 예술 속에서 순간적 해방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집단적 진보를 말하는 것은 허상일 뿐입니다.”
청중의 한 청년이 손을 든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사회가 점점 나아진다는 말을 믿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모두 각자 고통만 들여다본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헤겔과 쇼펜하우어는 잠시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동시에 청년에게 답한다.
헤겔:
“그대는 역사가 나아진다는 믿음을 버리지 마시오. 혼란 속에서도 더 나은 제도와 자유가 가능하다는 희망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쇼펜하우어:
“그러나 동시에 그대는 욕망이 만든 환상을 직시해야 하오. 세상이 좋아진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진짜 자유는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때 찾아옵니다.”
청년은 두 철학자의 상반된 목소리를 들으며 깊은 침묵에 잠긴다. 어느 한쪽만이 정답일 수 없는 듯 보인다. 역사는 분명 진보의 길을 걸어온 듯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고통은 여전히 짙다.
토론장은 고요해지고, 청중은 묵묵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역사의 진보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욕망의 고통을 직시할 것인가? 혹은 둘을 동시에 붙잡을 수 있는가?”
헤겔과 쇼펜하우어의 대화는 끝났지만, 그들의 질문은 청년 세대의 마음속에 남는다. 희망과 절망, 진보와 고통 사이에서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는 이제 독자의 몫이다.
한국 사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눈부신 성취를 이뤘다.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거치며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자리 잡았고, 시민들이 거리에서 스스로 권력을 견제하며 민주주의를 지켜낸 경험도 축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빛과 그림자가 함께했다. 경제적 풍요 뒤에는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민주주의의 진전 뒤에도 정치적 갈등과 불신이 여전하다.
헤겔의 눈으로 보면, 한국은 분명 세계정신이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전형적 무대다. 그러나 청년들의 눈으로 보면, 진보의 약속 뒤에 고통과 불안이 반복되는 쇼펜하우어적 현실이 동시에 드러난다.
청년 세대는 한국 사회의 진보를 “알지만 체감하지 못하는 세대”다.
부모 세대가 겪은 가난과 독재는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고, 제도적 민주주의는 정착했다.
그러나 청년들의 일상은 여전히 취업난, 주거 불안, 경쟁 사회라는 벽에 막혀 있다.
즉, 청년들은 “우리는 과거보다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다”라는 확신과 동시에, “그러나 왜 우리의 삶은 여전히 힘든가?”라는 회의를 동시에 품는다. 이 양가성은 곧 역사 진보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낳는다.
2016~2017년의 촛불집회는 시민이 권력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운 역사적 사건이었다. 헤겔식으로 말하자면, 이는 ‘자유의 의식’이 현실 속에서 구현된 장면이었다.
그러나 2024년 겨울, 비상계엄령 발표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청년들은 또다시 거리로 나섰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저항의 맨 앞에 섰다는 점이다. 촛불의 전통을 잇되, 자신들의 문화 자산을 정치적 언어로 변용한 것이다. 이 장면은 민주주의의 진보가 단절되지 않고 세대별로 새롭게 창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주의가 아직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불편한 사실도 드러냈다.
2025년 봄,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한국 사회는 ‘찬탄파’와 ‘반탄파’로 갈라졌다. 도심 한복판에서는 찬성 측이 밤샘 농성과 단식을 이어갔고, 반대 측 역시 철야 집회를 벌였다.
청년들도 이 장면 속에 있었다. 일부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거리로 나왔고, 또 다른 일부는 과도한 정치 갈등에 지쳐 참여를 주저했다. 결과적으로 청년 세대는 “민주주의 진보의 주체”이면서도 “정치 불신의 당사자”라는 모순적 위치를 동시에 점하게 되었다.
AI와 플랫폼 경제의 급성장은 사회 진보의 또 다른 상징이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기술은 더 이상 일방적 희망이 아니다.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축소, 플랫폼 노동의 불안정, AI 의사결정이 불러오는 윤리적 불확실성은 청년들에게 “기술 진보가 곧 내 삶의 진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일깨운다.
산업화 세대가 기술을 ‘희망의 동력’으로 보았다면, 청년 세대는 기술을 ‘양날의 검’으로 경험한다. 진보와 불안이 교차하는 시대적 경험이다.
이 모든 사례는 청년 세대 내부에 헤겔과 쇼펜하우어의 목소리가 동시에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역사는 분명 진보한다”는 믿음.
다른 한쪽에서는 “고통은 반복된다”는 비관.
청년들은 묻는다.
“우리는 역사의 진보를 믿고 희망을 가져야 하는가?
아니면 반복되는 고통을 직시하며 개인의 길을 찾아야 하는가?
혹은 이 두 시선을 동시에 붙잡을 새로운 균형이 가능한가?”
한국 사회의 역동성은 분명 세계사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성취다. 그러나 청년 세대는 그 성취의 수혜자이자 모순의 희생자다. 촛불과 응원봉의 불빛 속에서, 청년들은 역사의 진보를 증명했지만, 탄핵 정국과 기술 불안 속에서 여전히 깊은 회의와 불안을 마주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의 청년들은 단순히 낙관이나 비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다. 오히려 진보와 비관을 동시에 사유하는 새로운 철학적 감각이 요구된다. 그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역사 진보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원일 것이다.
한국 사회의 청년 세대는 지금 독특한 철학적 갈림길에 서 있다. 한쪽에는 헤겔이 말한 역사 진보의 서사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쇼펜하우어가 강조한 고통과 비관의 반복이 있다. 문제는 이 두 길이 서로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청년들의 삶 속에서 두 시선은 동시에 작동한다.
촛불과 응원봉 집회에서 청년들은 민주주의의 진보를 직접 체험했다. 자신들의 목소리로 권력을 흔들고, 자유를 확장한 경험은 분명 ‘역사의 진보’가 현실로 드러난 장면이다. 그러나 탄핵 정국에서 보여준 청년들의 분열과 냉소는 “역사의 진보가 곧 나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진보와 비관이 서로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경험 속에서 동시에 스며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순해진다. “청년들은 이 모순된 두 시선을 어떻게 균형 있게 붙잡을 수 있는가?”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만으로는 청년 세대가 겪는 현실적 고통을 설명할 수 없다.
취업난과 불평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기술 발전은 희망보다는 불안을 더 크게 안겨준다.
단순한 낙관은 현실을 외면한 자기 위안이 될 수 있다. 청년들은 이미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비관만 붙잡는다면, 청년들은 희망을 잃고 무력감에 빠질 위험이 있다.
역사 속 성취와 사회의 진보는 분명 존재했다.
민주주의, 인권, 평등의 제도적 진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다.
비관만을 강조하는 것은 과거 세대의 성취와 청년 스스로의 가능성을 무효화하는 태도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청년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이나 비관 중 하나를 선택하는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두 시선을 동시에 붙잡는 균형의 감각이다.
헤겔적 진보: 사회 제도와 집단의 차원에서 인류는 더 큰 자유와 합리성을 향해 나아간다는 믿음.
쇼펜하우어적 비관: 개인의 삶과 내면에서 고통은 반복되고, 인간 본성의 어두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자각.
청년들은 이 둘을 동시에 인정하면서, “사회적 진보 속에서도 개인적 고통은 여전하다”는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이 균형은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라, 오늘의 청년이 일상에서 체득해야 할 실질적 태도다.
- 정치적 참여: 집단적 진보를 위해 목소리를 내되, 단기적 성과에 과도한 기대를 걸지 않는다.
- 개인적 성장: 구조적 한계에 좌절하기보다, 그 속에서 자기 삶의 의미를 찾는다.
- 비판적 성찰: 진보 서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동시에 냉소적 비관에 갇히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단순히 철학적 균형이 아니라,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생존 전략이다.
결국 청년들이 배워야 할 것은 “낙관 vs 비관”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두 시선을 동시에 붙잡는 새로운 철학적 감각이다. 진보를 믿되, 고통을 잊지 않고, 희망을 말하되, 냉소를 견뎌내는 태도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 청년들이 역사 속에서 새롭게 창조해야 할 철학적 균형이며, 앞으로 이어질 논의(결론 단계)에서 “청년 세대가 역사의 주체로 살아가기 위한 조건”으로 다시 연결될 것이다.
청년 세대 앞에 놓인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역사는 진보하는가, 아니면 인간의 고통은 반복되는가?”
이 물음은 곧 헤겔과 쇼펜하우어의 논쟁이 오늘날 다시 살아난 형태다.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한 청년들의 대답은 더 이상 한쪽만을 선택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의 청년들은 이미 역사의 진보와 비관을 동시에 경험했다.
촛불집회는 자유와 정의가 현실에서 구현되는 순간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구조적 변화의 더딤과 정치의 반복적 갈등이 청년들을 좌절시켰다.
기술 발전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지만, 동시에 불안정 노동과 고용의 위기를 불러왔다.
이 두 경험은 청년 세대에게 ‘진보의 희망’과 ‘비관의 현실’을 동시에 각인시켰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운 세대적 사유가 출발한다.
청년 세대는 더 이상 “역사는 반드시 나아진다”는 단순한 낙관에 머물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인간은 고통 속에 갇힌다”는 순전한 비관만을 붙잡을 수도 없다.
- 헤겔의 진보론은 청년들에게 집단적 변화를 추동할 용기를 준다. 민주주의의 확대, 인권의 성장, 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모두 인간이 더 높은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증거다.
- 쇼펜하우어의 비관론은 청년들에게 개인적 내면을 성찰할 여유를 준다. 사회가 변하더라도 삶의 불안과 고통은 언제나 남아 있으며,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즉, 청년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진보와 비관의 공존’이다. 역사를 믿되, 고통을 잊지 않고, 희망을 품되, 냉소를 견뎌내는 이중의 시선 말이다.
이 균형은 청년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다음과 같이 실천될 수 있다.
1. 정치적 균형: 거리의 목소리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되, 제도의 한계를 직시한다.
2. 사회적 균형: 집단적 진보를 추구하되, 개인적 고통과 불평등을 외면하지 않는다.
3. 개인적 균형: 자기 성장과 자율을 중시하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는다.
청년들은 이 균형을 통해 단순한 ‘피해 세대’가 아니라, 새로운 철학을 실천하는 세대가 된다.
앞으로 청년 세대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진보는 왜 나에게 체감되지 않는가?”
“고통은 어떻게 반복되는가?”
“이 두 현실을 동시에 인정하면서도, 어떤 새로운 길을 낼 수 있는가?”
이 물음들은 고대 철학자들이나 19세기 사상가들이 답할 수 없는 영역이다. 오직 오늘의 청년들이 자기 시대와 삶을 살아내면서 답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청년 세대는 단순히 과거 철학을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철학을 창조하는 주체다.
역사는 진보한다고 말한 헤겔과, 인간의 고통은 반복된다고 말한 쇼펜하우어. 두 철학자의 목소리는 대립처럼 보이지만, 오늘의 청년에게는 동시에 울린다. 청년들은 이 양극의 목소리를 통합해야 한다.
즉,
사회의 진보를 믿고 참여하되,
인간의 불안을 직시하며 내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바로 이 태도가 오늘날 청년들이 “역사 진보와 인간의 고통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새로운 철학적 시민”으로 거듭나는 길이다.
청년 세대에게 남겨진 과제는 명확하다. 단순한 희망도, 단순한 절망도 아닌 양가적 진실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한국 사회의 청년들이 세계사 속에서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철학적 감각이며, 앞으로의 역사에 남길 가장 중요한 발자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