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적으로 그리고 깊이
사람들이 인생 드라마로 많은 뽑는 나의 아저씨에는 범죄자이지만 할머니를 마음 다해 보살피는 지안, 다른 사람들에게 잘 맞춰주는 듯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주위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하는 동훈, 사람을 때리지만, 마음이 여린 광일 등의 인물이 나온다. 이중인격 소유자라 할 만큼 반대의 모습을 한 명의 인물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성격 검사에서 ‘다른 사람의 평가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문항에 쉽게 yes를 체크해왔다. 사실이었다. 왼손잡이여서, 어렸을 때 내가 글씨를 쓰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한 두 마디씩 했었다. ‘”연필은 오른손으로 잡아야지.”, “아주 똑똑하겠구나! ” 그러나 오른손으로 잡아야 하는 마땅한 이유가 없고, 내가 그렇게 똑똑하지 않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귀에 말이 잘 들려오지 않았다. 그즈음부터 사람들의 평가는 그다지 들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사교육을 거의 받지 않아서,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그저 엉덩이를 붙이고 책상 앞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시험기간이면, 학교 끝나고 도서관에 가서 저녁까지 먹고 집에 들어왔다. 대학교 때도 이 습관이 이어져 대학생활의 꽃이라는 축제 기간에도 도서관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나의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네가 A+안 나오면 누가 A+받니?” “나는 어젯밤부터 공부 시작했는데, 너는 진짜 다 외웠겠다.” 등의 시기 반, 농담 반의 이야기를 건넸다. 그리고 나는 나름 쿨하게 그러니깐 나도 성적이 잘 나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정원이 적은 학교여서 소문들도 많았다. 내 앞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기도 했고, 친한 지인이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는 것 같다는 제보를 받기도 했는데, 나는 늘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쓰지 말자고 되뇌었고, 그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나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 처해지니, 정반대의 모습이 나타났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한테도 내 근황을 숨겼다. 전화가 오면 받지 않고, 내가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자동응답기를 흉내 내어 지금 전화를 못 받으니, 문자로 연락 달라고 안내를 보냈다.
내가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리는 것이 싫었다. 안부 연락을 받았을 때도 "지금 너무 잘 지낸다.", "너무 좋다!"라고 보냈고, 송신과 함께 허탈함이 쏟아졌다. 죄는 항상 결과를 낳는 것처럼 대화는 중심부에 다다르지 못하고 미끄러져 끝이 났다. 그리고 이 일은 반복되어 어느새 거짓말을 일상처럼 하고 있다.
그러고 나선 학창 시절에 나 스스로 꽤 만족스러운 생활을 했었고, 그 조건 덕분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의 나와 만족스러운 상황에서의 나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진 것이다. 이 길이 어떻게 끝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여정임은 분명하다. 큐비즘 작품처럼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될지라도 나라는 사람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