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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그네 한 Jan 16. 2023

광야에 서있다(1).

광야와 사랑에 빠지다.

시나이 반도에 놓은 고속도로


이집트 카이로에서 동쪽으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시나이반도에 들어서면 끝도 보이지 않은 광야가 펼쳐진다. 운전을 하며 광야 사이에 놓여있는 고속도로를 따라가다 핸드폰 통신이 잡히지 않은 도로를 긴 시간 지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늦은 밤에 이곳을 지나 혹시 차가 멈추면 어떻게 하지? 이 근처엔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일까?


멀리보이는 광야의 산들 - 시나이 반도


그렇게 끝도 보이지 않는 그 광야의 도로 위에서 난 일어나지도 않을 그 일을 떠올리며 두려움 아닌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 두려움조차 잃을 만큼 광야의 절경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저 멀리 나무가 없어 보이는 수많은 바위 산들 그리고 흙 위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와 바람... 자연 앞에 인간의 나약함을 알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곳에 생명이 살고 있을까?


야등덩굴, 양떼 그리고 목동들


생명이 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바위와 모래 사이사이 나무, 꽃 열매들이 있다. 비가 거의 오지 않은 건조한 이곳에 생명이 살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 끈질긴 생명력을 보며 난 경외감을 느낀다. 심지어 사람들도 함께 살아간다. 풀이 듬성듬성 자란 땅에서 풀을 뜯어먹는 양과 염소 그리고 낙타는 야생이 아니었다. 목동이 양과 염소를 야생가운데 그냥 풀어놓을 리는 없을 것이기에 난 주변에 목동이 있나 찾아보았다. 낙타를 탄 두 명의 목동들이 가축들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유롭게 양과 염소를 풀어놓은 듯했지만 목동들은 낙타 위 높은 곳에서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돌봄은 아침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 계속된다. 조금은 지루할 수 있는 일상. 하지만, 그들은 오랫동안 대를 이어 광야에서 가축들을 키우며 유목민의 삶을 산다. 우린 그들을 ‘베두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높은 곳에 올라가...


Serabit el-Khadim - 하토르신전, 시나이 반도


약 1시간을 걸어 높은 곳에 올라갔다. 그곳엔 3500년 전 신전인 ‘하토르(Hathor)'가 남아 있었다. 지금은 거의 폐허가 된 곳이지만 고대 이집트에서 ‘하토르’는 어머니의 신으로 ‘보호’를 상징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아주 높은 곳에 이 ‘하토르’를 세워놓고 나라와 광야에 살아가는 자신들을 보호할 것을 염원했다. 신전 가장 높은 지대에 올라가 앞뒤좌우를 바라보면 아주 넓은 세상이 펼쳐진다. 이들에게 신은 가장 높은 위치에 있으므로 자신들의 세상을 지킬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이처럼 신은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는 인간의 세계관은 3500년 전이나 오늘날의 종교도 변함없어 보인다. 종교성을 가진 인간들은 ‘신’을 늘 가장 높은 곳에 두려는 변하지 않는 본성이 있는 것이다.


신전을 둘러보던 중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3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것은 뜨고 지는 해와 달이다. 이집트의 지는 해는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붉게 보인다. 붉은 피가 세상을 덮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광야에서 해가 지면 모든 일과가 마친다. 도시처럼 어느 곳에든 전기가 들어오는 곳이 아니기에 해가 지면 광야의 세상은 아주 컴컴해진다.


환대(歡待)
유목민이 운영하는 캠핑장

산에서 내려오니 유목민들이 방문객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고 식사를 대접한다. 광야의 유목민들은 보통 몇 대가 함께 살아간다. 오래전 한국이 몇 대가 함께 한 집에 살았던 것처럼 이곳의 유목민들도 그렇게 살아간다. 유목민들은 방문객들을 최선을 다해 맞이한다. 식사를 가져다주면 손님이 먼저 자유롭게 먹고 난 후남은 음식들을 가장 어른부터 먹는다. 그러면 그 집의 가장 어린 손자, 손녀들은 가장 나중에 식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우린 먹을 것과 따뜻한 차를 가져다주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린 너를 기억하고 있어.


이 말을 한 후 우린 그 아이에게 뜨거운 물을 넣은 한국의 라면을 한 그릇 나눠주었다. 뜨거운 물에 담긴 매운 라면을 먹는 아이는 아주 행복해한다. 늘 가장 나중에 식사를 해야 하는 그 아이는 오늘만큼은 자신의 할아버지보다 일찍 숟가락을 들게 된 것이다. 손님을 맞은 유목민들은 우리의 필요를 계속 묻는다. 그들은 우리들의 찻잔이 비어지면 계속해서 홍차와 커피를 따라준다. 그러한 그들의 따뜻한 마음에 방문객인 우리들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것이야 말로 환대의 참모습이다. 방문객이 나이가 많든 적든 주인은 자신의 자리와 우선순위를 방문객에게 먼저 내어주는 것이다.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아 핸드폰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마을이지만 그들의 환대로 인해 우린 그곳에서 전혀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아이들에게 차 안에 있는 오래된 축구공을 하나 선물하였다. 미리 알았다면 튼튼한 새 축구공을 사 와 그들에게 주었을 것이다. 시나이 반도 깊은 곳에서 만난 그들의 마음을 난 잊지 못할 것이다. 별로 가득한 광야의 밤은 너무 아름답다. 난 또 다른 광야를 향해 발을 나선다.

축구공을 받은 유목민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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