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예’가 시작한 이야기
내가 그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 장면을 장엄하게 상상하지만, 실은 아주 작고 고요한 곳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나자렛.
이름만 들어도 한적한 시골 마을이 떠오른다. 언덕 위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돌길은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어버리는 그런 동네. 사람들은 나자렛이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인지 잘 모르고, 사실은 관심도 없었다.
“나자렛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겠어?”
이런 식의 말이 익숙했다. 하지만 바로 그곳에서… 어떤 일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처음에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 자신도 몰랐을지 모른다. 특별한 출신도 아니었고, 유복한 집안도 아니었다. 그저 어느 골목 끝의 작은 집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소녀. 이제 막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요셉이라는 남자와 약혼한 상태였고, 둘 다 아직 세상의 거친 풍경을 잘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날, 그녀는 평소처럼 집안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말린 허브를 빻고, 무심코 들리는 바깥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평범한 하루. 그런데 그날의 공기는 조금 달랐다고 했다.
“안녕하세요.”
그 소리는 너무나 또렷해서,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갑자기 들린 목소리. 그것도 낯설고 따뜻하고, 동시에 위엄 있는 목소리였다.
“당신은 지금, 특별한 순간에 서 있습니다.”
마리아는 눈을 크게 떴다. 당연히 놀랐다.
“제가요…? 왜요?”
“당신은 지금 중요한 이야기에 초대되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과 함께할 분이 계십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거죠?”
“당신은 아기를 갖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 아이는 세상에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겁니다. 이름은 예수라고 하세요.”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무게가 스며들었다. 이름 하나가 그토록 무거울 줄 누가 알았을까. 그 아이는 단순한 아이가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기다리던 인물, 다들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던 이야기 속 인물이었다.
그 이야기는 한 민족의 오래된 기억과도 닿아 있었다.
“그 아이는 ‘야곱의 후손’에서 태어날 것이다”—그건 단지 혈통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야곱은 오래전 그 민족의 조상 이름이었고, 그의 열두 아들이 하나의 나라를 이루는 시작이었으니까. 그 집안에서 다시 누군가가 태어난다는 말은, 단지 어느 집안 출신이라는 게 아니라, 그 민족 전체를 품을 누군가가 온다는 뜻이었다.
특히 어떤 예언자들은 이런 표현을 자주 썼다.
“야곱의 집아, 빛을 따라 걸어라.”
“야곱의 집이여, 그분을 기다려라.”
이 말들은, 흩어졌던 이들이 다시 하나로 모이고, 모든 갈라졌던 길들이 다시 이어질 거라는 희망을 담고 있었다. 마치 잊고 살던 꿈이 다시 눈앞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느낌처럼.
그런데 지금, 마리아 앞에 전해진 말은 그 오래된 꿈이 이제 너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놀람, 의심, 불안, 두려움이 뒤섞인 침묵.
마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저는 아직 결혼도 안 했어요. 아무하고도 그런 관계는 없었는데요.”
그녀의 말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어린 소녀의 당황스러운 반응. 그건 합리적인 질문이자, 두려움을 담은 솔직한 고백이었다.
“나는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이게 진짜 현실일까?”
“이 이야기가 정말 내 삶에 일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대답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단호한 것이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겠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세상이 보기엔 불가능해 보여도, 이 일은 이루어질 거예요. 그리고 누군가 당신보다 먼저 그 길을 걷고 있어요. 엘리사벳이라는 여인이에요. 그녀는 오랫동안 아이를 가질 수 없었지만, 지금은 여섯 달이 되었어요.”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알고 있었다.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조언해 주던 이웃 아주머니. 아이를 바라면서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던 이. 그런데… 그 엘리사벳이 아이를? 정말?
마리아는 무릎을 꿇었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 저는, 그 말씀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그렇게 깊이 신뢰하는 모습은…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마리아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기억한다. 왜냐면 그녀는 정말 평범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직업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유명한 집안도 아니었다. 이름 없는 동네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소녀가, 상상도 못 했던 말 한마디에 삶 전체를 열어버렸다.
“내가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내게 그 이야기가 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두려워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녀는 앞날을 계산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할지,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그 무게를 모른 게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녀의 대답은 더 놀라웠다. 어떤 이들은 마리아를 너무 순진하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덜컥 받아들일 수 있지?”
“왜 아무 의심도 없이 믿는 거야?”
하지만, 나에게는 그 순진함이 용기처럼 느껴졌다. 정해진 규칙과 계산에 갇혀버린 우리에겐, 오히려 그런 단순한 결단이 가장 어려운 일이니까.
나는 문득 멈춰 선다.
나도 그 이야기의 주인공을 믿을 수 있을까?
사실 내 삶은 너무 현실적이고, 내 사고는 계산에 익숙하다.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어야 안심이 되고, 결정에는 근거가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그런 내가, 그분의 목소리를 따라 한 걸음을 내디딘다는 건…
어쩌면 미련한 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고, 불확실하고, 때로는 외로운 일이다. 하지만 마리아를 떠올리면, 그 생각이 조금씩 달라진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안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알 수 없었기에 더 망설였고, 두려웠기에 더 조용히 마음을 열었다. 그녀의 믿음은 이론이 아니라, 삶을 건 선택이었다.
나는 그 순간을 떠올린다. 한 소녀가 두려움을 마주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장면. 주변은 아무 변화도 없었고, 상황은 여전히 막막했지만, 그녀의 ‘예’라는 대답은 세상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마리아를 존경하게 되었다.
단순해서가 아니라, 진심이었기 때문에. 흔들리는 믿음도 믿음이라는 걸,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여는 것도 용기라는 걸 그녀는 보여주었다.
믿음이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세상이 뭐라 하든, 앞날이 보이지 않든, 자신에게 건네진 이야기를 작은 숨으로라도 “네”라고 받아들이는 것.
나는 천천히 펜을 든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이름을 적는다.
예수.
그분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눈부시지 않은 작은 동네에서.
한 소녀의 조용한 수락으로.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이야기는 나에게도 조용히 말을 건넨다.
너는, 네 삶 안에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겠니?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1:26-38"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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