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음이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처음부터 그 모든 일을 목격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오래도록 잊지 않았다. 마치 바람이 지나간 자리처럼, 사람들의 말 한 자락 한 자락이 내게 남겨졌다.
그중에서도 유다 산골에서 있었던, 두 여인의 만남은 유난히도 선명하게 남았다. 어떤 장면은 한 줄의 시처럼 조용했고, 어떤 말은 사람들의 눈을 가볍게 적셨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이어 붙이며, 마치 아주 오래된 상처를 꿰매듯, 그렇게 하나의 장면을 그렸다.
마리아가 길을 떠난 건 너무 갑작스러웠다고 했다. 그녀는 천사의 말을 들은 지 며칠 되지 않아, 짐을 꾸렸고, 아무에게도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누구는 말했다.
“그 애가 뭘 알고 갔겠어요. 그냥 가야만 했던 거죠.”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확인하러 간 거예요.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도 기적이 일어났는지… 혹시 그게 진짜였는지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음은 조용히 다른 증거를 찾고 싶어지는 것. 무언가 큰일이 일어났을 때, 사람은 혼자 있기가 두렵다.
마리아도 아마 그러지 않았을까.
자신이 품게 된 생명이 얼마나 무겁고 신비한지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몸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그녀에게는 붙잡을 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산을 넘었다.
유다 산골. 이름처럼 멀고 험한 길이었다. 짐승도 쉬 다니지 않는 돌길을, 한 손에는 물병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치맛자락을 그러쥐고, 마리아는 걸었다.
그 길 위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말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게 맞을까?"
"혹시 내가 착각한 건 아닐까?"
"엘리사벳도… 진짜 아이를 품고 있을까?’"
그건 단순한 방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걸음은 확인이자 위로였고, 고백이자 기도였다. 길 위의 돌부리 하나, 바람에 밀려 흔들리는 나뭇가지 하나까지, 그녀의 눈엔 의미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즈가리야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그녀는 문 앞에 잠시 멈췄다고 했다.
문 안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보다 먼저 이 이야기를 이해해 줄 거라고 믿었기에.
“엘리사벳?”
그녀는 문을 열며 조심스레 불렀다. 그날, 햇살이 문턱을 타고 조용히 밀려들었다. 먼지조차 숨을 죽인 듯 떠 있었다. 엘리사벳은 마루 끝자락에 앉아 있었고, 마리아의 목소리가 집 안을 채우자마자, 그녀는 몸을 움찔했다. 배를 감싸 안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그녀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고 했다. 뱃속의 아기가 갑자기 뛰놀았기 때문이다.
“잠깐만… 지금…!”
엘리사벳이 배를 감싸며 숨을 고르는 장면을 누군가는 이렇게 전해주었다. 그녀는 손을 떨며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몇 초 뒤, 소리쳤다.
“이럴 수가… 네가…!”
그 소리는 벽에 울리고, 기둥에 부딪혀 다시 돌아왔다.
“모든 여자들 중에 네가 가장 복돼! 그리고 네가 품은 아이도 복돼!”
엘리사벳은 그 순간 무언가를 확신한 듯 보였다. 마리아는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설명도, 고백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인사 한마디.
“엘리사벳, 안녕히 계셨어요?”
그 말이 닿자마자, 뱃속의 아이가 반응했다.
기쁨처럼. 춤추듯.
나는 이 대목에서 늘 멈춰 선다. 마리아가 한 말은 겨우 몇 마디였는데, 그 말이 귀에 닿았을 때, 태중의 아기가 반응했고, 그 반응을 통해 엘리사벳은 말할 수 없는 감각을 느꼈다.
이건 단지 두 여인의 만남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인사 한마디가 또 다른 생명을 흔들었고, 그 떨림이 다시 엘리사벳의 마음을 일깨웠다. 그리고 그녀는 곧장 말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주님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오다니…”
그 말은 경외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더 인상적인 건 그다음이다.
“너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었잖아. 그 말씀이 꼭 이루어질 거라고 믿었잖아. 그래서 너는 복돼.”
나는 그 말을 조용히 따라 읊조려 본다.
너는 믿었기 때문에 복돼.
그 믿음이 네 안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너는 그 믿음을 누군가와 나누기 위해 이 길을 건넌 거야.
그 장면을 듣고 또 듣고, 나는 조심스럽게 그림을 그리듯 기록을 남겼다. 누구도 소리쳐 외치지 않았지만, 그날의 분위기는 벅차오르던 눈물 같았다고 한다.
그 누구도 확신에 찬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몸은 이미 하느님의 손길 아래에 있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한 사람, 또 다른 사람에게서 반복해서 들었을 때, 나는 어떤 경건함보다 그 평범한 풍경 속의 떨림이 더 깊이 다가왔다.
누구의 눈에도 대단한 기적처럼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두 여인이 서로를 마주 보고 나눈 말, 몸에 일어난 반응, 믿음을 고백하는 그 장면은 아무 설명 없이도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신앙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커다란 확신이나 지식, 논리나 설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에서, 말에서, 손끝에서 느껴지는 떨림에서.
“나도 그래.”
“나도 네 말이 믿어진다.”
“너를 보니, 나도 안심이 돼.”
그런 고백들이 이어지며, 한 사람이 품은 신비가 또 다른 사람에게 흘러간다. 믿음은 감정이 아니다. 하지만, 감정 없는 믿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날, 뱃속의 요한이 움직였던 것처럼.
그 움직임이 엘리사벳의 마음을 일깨웠던 것처럼.
그리고 그 마음이 마리아의 걸음을 조용한 확신으로 감싸주었다.
나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어떤 아이가 엄마 손을 꼭 잡고 낯선 길을 걷는 모습이다. 엄마는 길을 알고 있고, 아이는 모르지만, 손을 꼭 잡고 있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 마리아도 그랬을 것이다.
모든 게 낯설고 어지러웠지만, 엘리사벳의 반응 하나로 안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 나 혼자가 아니구나.’
‘내가 들은 말, 내 몸에서 일어난 일… 진짜였구나.’
나는 지금도 종종 묻는다.
‘내가 듣고 믿는 이 이야기는 진짜일까?’
그리고 곁에 있는 누군가의 눈빛, 고백, 삶을 보며 다시 생각한다.
아, 믿을 수 있구나.
이야기는 지금도 살아 있구나.
하느님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몸에서, 목소리에서, 기다림에서 또다시 태어나고 있구나.
마리아가 건넜던 그 산길은 지금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그 길 끝에서 또 누군가는 문을 열고,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또 다른 사람의 안에서—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기쁨으로 반응할 것이다.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1:39-45"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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