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작았던 한 여인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세상을 바꾼 목소리
나는 한 번도 그녀를 본 적이 없다.
그녀는 아주 오래전에 살았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 땅을 떠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아주 오래된 노래를 들었을 때처럼, 그녀의 말은 낯설지 않았다. 처음 들었지만 익숙했고, 멀리 있었지만 마음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가 남긴 건 짧은 노래였지만, 그 노래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한 세상의 방향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마리아와도 다른, 너무도 조용하고 단단한 여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위대한 인물로 불렀고, 어떤 이들은 그저 역사 속 이름 하나로 지나쳤다.
하지만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 그 누구보다도, 그녀는 ‘기억되는 사람’이었다. 말수가 많지도 않았고, 화려한 삶을 살지도 않았지만,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누군가의 마음을 일으켜 세웠다.
그날 내가 들은 노래는 마치 속삭임 같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찬가’라 불렀지만, 내게는 그저 한 여인이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꺼낸 진심처럼 들렸다. 그녀는 말했다.
“내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그녀는 기쁜 일이 있어서 설렌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도 뜻밖의 일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기 어려운 현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사람들의 시선, 오해, 소문…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해야 하는 시점에 그녀는 설렌다고 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자신을 기억하신 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자신을 ‘보잘것없는 사람’이라 말했다. 남들보다 특별한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으며, 세상에서 중요한 자리에 서 본 적도 없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낮음 속에서 어떤 초대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 초대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냥, ‘네’라고 했어요.”
그녀는 그렇게 대답했다. 많은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 자기 이름을 불렀고, 자기는 그 이름에 응답했을 뿐이라고. 나는 그 순간 그녀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맞서지 않는 것, 침묵 속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 그런 것들이 얼마나 단단한 용기에서 나오는 것인지, 살아보니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약속을 잊는다. 내가 듣고 기록한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도, 처음의 말과 나중의 행동이 같았던 사람은 드물었다. 그게 인간이다. 바쁘고, 두렵고, 때론 의심이 앞서기 때문에 자신이 했던 말조차 잊는다. 하지만 마리아는 아니었다. 그녀는 기억했다. 자신이 들은 말, 마음속 떨림, 그날의 공기, 창밖의 바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붙잡고 있는 한 존재를.
그녀는 하느님을 기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기억된다는 것을 믿었다.
“사람들은 언젠가 나를 복되다 말할 거예요.”
그녀는 이 말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치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서, 아주 낮은 목소리로 꺼낸 듯했다. 자기를 내세우려는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어쩌면, 그 시대 어떤 왕보다도, 선지자보다도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말은 곧 세상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처음엔 자신의 내면에서 출발했던 고백이, 점점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뻗어갔다. 그녀는 힘 있는 자들이 무너지고, 보잘것없는 이들이 높아질 거라고 말했다. 배고픈 사람들은 배부르게 될 것이고, 가진 사람들은 빈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나는 이 말들이 단지 감정적인 반항이거나, 희망 섞인 바람만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녀는 세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낮은 곳에 오래 서 있었고, 거기서 본 것들을 숨기지 않았다.그녀의 눈에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불공평 속에서 그녀는 무기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그 어그러진 질서 속에서도 정직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언젠가 이 세상이 뒤집힐 수 있다고 믿었다. 누군가 위에서부터 내려와 우리와 함께할 거라고.
나는 그녀의 노래가 혁명처럼 들렸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평화로운 고백처럼도 들렸다. 이것이 단지 어느 한 개인의 염원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기다리던 소망이라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세요.”
그 말이 내 안에서 자꾸만 울렸다. 내가 지금까지 수집한 모든 기록과 이야기들을 돌아보면, 약속은 늘 문제였다. 사람들은 시작은 잘했지만 끝을 맺지 못했고, 누군가는 중간에 떠났으며, 어떤 약속은 누군가의 죽음과 함께 잊혔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약속이, 지금 자기 안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고.
그녀는 자기 몸에 생명을 품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혼란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두려워하기보다 기억을 택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믿음으로 바꾸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돌아와, 그 날의 대화를 오랫동안 곱씹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내게 단순한 역사 속 인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이 세상 어딘가에서 그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종종 질문한다. 왜 그런 이야기들을 쓰냐고. 그렇게 오래된 기록이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마리아의 노래를 떠올린다. 그 노래는 삶에 대해 말하고 있었고, 기다림에 대해 말하고 있었으며, 한 여인의 조용한 용기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 그 노래를 듣고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을 일으키고 있다는 뜻이다.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오래전에 멈췄지만, 그 울림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나는 그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가능한 오래도록,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
누군가 혼자일 때, 지치고 방향을 잃었을 때, 아무도 내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낄 때, 그때 이 노래가 조용히 다가가 닿기를 바란다.
왜냐면… 나도 그랬으니까.
어느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여인의 속삭임이, 내 마음 어딘가를 건드리고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걷게 만들었으니까.
그 노래는 대단한 진리를 외치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기억 안에서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작은 숨처럼 말해주었다.
나는 이제 안다. 진심은 조용한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는 것을.
마리아는 큰일을 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부름에 ‘네’라고 답한 그 작고 떨리는 한마디가세상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싶다.
그저, 한 여인의 진심에서 시작된 노래가
이 세상 어디에서든
다시 들려지기를 바라며.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1:46-55"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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