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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 말하지 못한 사람의 계절

아무 말 없이 시작된 이야기...

by 나그네 한

나는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그가 무언가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에도, 그는 말보다 눈빛과 몸짓으로 대화했다. 그 눈빛에는 무언가 담겨 있었고, 말보다 훨씬 진한 시간이 배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즈가리야였다.

사람들은 그를 오래된 규칙과 질서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오래된 꿈 하나를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사람의 기색을 보았다. 그 꿈은 말로 꺼내기에도 부끄러운 것이었고, 오래전 마음속에 조용히 접어둔 채 살아온 그런 종류의 소망이었다.


그날, 즈가리야는 성소 안으로 들어갔다. 향을 피우는 차례가 그에게 주어진 날이었다. 이 일은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린 순번의 결과였고, 그는 그 기회를 정성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밖에서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안에서는 향이 타올랐고, 벽과 천장, 그의 손끝까지 그 향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가 그 앞에 나타났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즈가리야는 그 존재를 두려워했지만, 동시에 그 빛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존재는 말없이 위엄을 지니고 있었고, 그의 말은 단호했지만 따뜻했다. 그는 즈가리야에게 뜻밖의 말을 전했다.


“당신과 당신의 아내에게 아이가 생길 것입니다.”


그 말은 즈가리야가 오랫동안 들어보고 싶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지나버렸다. 그의 나이도, 아내의 나이도 이미 그 말을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쩌면 습관처럼 되물었다.


“무엇을 보고 그런 말을 믿으란 말입니까?”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그가 불신을 말하려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가까운 것은 아마도 ‘조심스러움’이었을 것이다. 희망이라는 건, 너무 오래 기대하면 그것에 배신당하는 순간이 더 아프다. 그는 이미 수없이 기대했고, 수없이 실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너무 쉽게 믿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 존재는 다시 말했다.


“당신은 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말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즈가리야는 벙어리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말도 들리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천천히 몸을 돌려 성소 밖으로 나왔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그가 늦어진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처음엔 혹시 무슨 실수가 있었나 걱정했지만, 그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즈가리야의 눈빛은 어딘가 멀리 닿아 있었고, 그는 평소처럼 축복의 말을 하지 않았다. 입을 열지 못한 채, 떨리는 손으로 무언가를 설명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손짓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 어설픈 움직임 속에서 오히려 불안함을 느꼈다.


속삭이는 소리가 퍼졌다.


“말을 못 하나 봐.”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얼굴이… 무서우리만치 환했어.”


누군가는 눈길을 피했고, 누군가는 그의 손짓을 따라 끝까지 해석하려 했지만 그 어떤 말보다 더 큰 침묵이 무리 가운데 퍼져 나갔다. 그날,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마주했다는 것을 말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입을 열지 않았고, 오히려 손짓으로 무언가를 설명하려 했다. 사람들은 그 손짓을 따라 눈길을 주었지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의 침묵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해석되지 않은 채 공중에 남아 있었다.






그 후 즈가리야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말하지 못하는 남편,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무언가의 기척.


조용한 날들이 흘렀고, 얼마 후 엘리사벳은 자신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기를 품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다섯 달 동안, 그녀는 조용히 자기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을 들여다보았다. 왜 그렇게 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대신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해 본다. 혹시 그녀는 그 시간을, 그저 ‘기쁨’이나 ‘자랑’으로 채우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


다섯 달 동안 그녀는 세상과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자신 안에서 자라고 있는 무언가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나도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되었구나.”


그 말은 단순한 감탄이 아니었다. 그건 오랜 세월 동안,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못한 시선 속에서 살았던 여인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온 고백이었다.


당시 세상은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들에게 가혹했다. 겉으로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뭔가 잘못된 것이 있을 거라 짐작하곤 했다. 한 여인이 아무리 따뜻하고 지혜로워도, 그 품에 아이가 없다는 이유 하나로 존재의 가치까지 낮춰 보는 풍조가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얼굴을 마주한 채로 묻지는 않았지만, 뒤돌아서면 쉽게 말했다.

“하느님이 문을 닫으신 거겠지.”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어?”


엘리사벳은 그 말들을 묵묵히 견뎠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믿고 살아가는지 설명할 수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사람들의 ‘안타까움 섞인 시선’ 앞에서 자주 힘을 잃었다. 그러니 그녀의 이 한마디는, 단순한 기쁨이 아니었다. 그건 수치심 위에 서서 조용히 선언하는 존엄이었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내가 가장 오래 붙들었던 단어는 ‘침묵’이었다. 즈가리야의 침묵은 말할 수 없게 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실을 품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말하지 못한 동안, 스스로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동안 그는 익숙한 것들로 스스로를 무장해 왔다.


정해진 규칙, 익숙한 기도, 사람들의 기대. 하지만 그 침묵의 시간 동안, 그는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무언가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엘리사벳 역시 다르지 않았다. 자신을 숨긴 그 다섯 달은, 단지 아이를 지키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녀가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자신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기록하며 자주 멈췄다. 그리고 내 삶도 돌아보게 되었다. 혹시 나도 말하지 못해 침묵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누군가와 마주 앉아 말할 수 없는 시간을 견디는 중은 아닐까.

혹시, 엘리사벳처럼 세상의 모든 말보다 한 생명을 받아들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는 중은 아닐까. 말할 수 없음은 약함이 아니다. 말하지 않는 시간은 때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계신 시간일 수 있다.


즈가리야와 엘리사벳의 이야기는 바로 그 침묵 속에서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지금, 혹시 당신도 침묵 가운데 있다면—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그리고 말로 설명되지 않는 변화가 당신 안에서 자라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1:18-25"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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