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조용한 아침,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다. 이 기록은 누군가의 위대한 업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성공도 아니고, 누군가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건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아침에 관한 기록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야기 속에서야말로, 보통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진실이 깃들어 있음을 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조용한 장면 하나를 다시 꺼내어 바라보려 한다.
그의 이름은 "즈가리야"였다.
그는 늙은 사람이었고, 삶의 한가운데를 지난 뒤 조용한 언덕을 내려오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경건한 사람이라 불렀고, 그의 아내 엘리사벳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만큼 단정하고 신중한 이였다. 하지만 그들 부부에게는 누구도 쉽게 입 밖에 꺼내지 않는 사적인 결핍이 있었다.
자식이 없었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위로해 주었지만, 오래도록 아이를 기다렸던 이들에게 그런 말은 마치 희망이 닿지 않는 구름처럼 멀기만 했다. 어느 날 아침, 즈가리야는 성전으로 향했다. 그날은 그의 조가 성전의 일을 맡는 날이었다. 그는 이미 수없이 반복된 일상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사제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온 시간만큼, 그는 무엇이 예상되는 하루이고, 무엇이 기대되지 않는 일인지를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런 즈가리야에게 ‘제비 뽑기’는 그저 전통적인 절차일 뿐이었다. 매번 선택되지 않으며 지나쳐왔던 그 과정은 이제 익숙한 무관심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날, 그의 이름이 불렸다.
사제들의 관례에 따라, 제비로 뽑힌 한 사람이 성소 안으로 들어가 향을 피우는 일을 맡게 되는데, 그 제비가 바로 즈가리야를 향했다. 그 순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가까이서 보았다면, 그의 눈꺼풀이 아주 짧게 떨리는 걸 포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말없이 향을 들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성소로 들어가는 길은 짧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길은 평생 한 번밖에 허락되지 않는 길이었다. 성전 안에서, 사람의 기도를 하느님 앞에 올리는 의식을 수행하는 일. 그것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말하자면 하늘과 땅이 맞닿는 자리에 서는 일이었다. 그날 즈가리야는 그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는 향을 피우기 시작했다. 작은 불씨가 향에 옮겨 붙고, 연기가 천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고, 안에서는 그가 그 기도를 받아 올리는 중이었다. 그의 입술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마음에서 울려 나오는 기도를 들을 수 있었다.
그건 단순한 언어가 아니었다. 오래된 기다림, 말라버린 소망, 그리고 그럼에도 남은 무언가. 그런 것들이 섞여 천천히 올라가는 향과 함께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던 순간,
성소 안쪽, 제단 오른편에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그는 처음엔 그것이 착각인 줄 알았다. 성소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말없이 거기에 서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 인물은 분명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고,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으로 즈가리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흔들렸고, 등골을 타고 찬기운이 흘러내렸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한 인간의 반응은 언제나 단순하다.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 인물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즈가리야.”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그 말이 들리자마자, 그의 마음속 어떤 오래된 방 하나가 천천히 열리는 듯했다. 잊힌 줄 알았던 소망이 먼지 쌓인 채 그대로 놓여 있었고, 누군가가 그 문을 조심스럽게 다시 열어준 것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당신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입니다. 그 이름은 요한이라 하십시오.”
그 순간 즈가리야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아이를 바라는 기도를 멈춘 지 오래였다. 아내도 더는 그런 이야기 꺼내지 않았다. 그건 이미 지나간 계절이었다. 잎을 떨어뜨리고 줄기마저 말라버린 나무처럼, 가능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해진 삶이었다. 그런데 지금, 누군가가 그 나무 아래 다시 물을 붓고 있었다. 그것도 하느님이 직접...
“그 아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될 것이며,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느님의 영에 이끌릴 것입니다. 그는 포도주나 독한 술을 입에 대지 않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켜, 하느님께로 향하게 할 것입니다.”
즈가리야는 그 말을 하나하나 새기듯 들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아이는 단지 두 노인의 오랜 바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어떤 큰 흐름 속에서 부름 받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 흐름은 지금 이 조용한 성소 안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 아이의 역할은 분명했다.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사람.
앞서 가는 자.
길을 닦는 이.
세상은 언제나 중심에 선 사람을 기억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조용히 길을 준비하는 이들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오르지 못한 채 잊히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그 잊힌 자리에서도 누군가를 불러내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길을 걷게 하신다.
먼저, 그리고 조용히.
즈가리야는 성소에서 나왔지만, 말이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멎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무슨 일을 경험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침묵 안에 얼마나 많은 진실이 담겨 있었는지를.
그 침묵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었다.
그건 신비 앞에 선 한 인간의 조용한 경외였다.
쉽게 말하지 않기 위해, 말하지 않는 침묵.
나는 이 이야기를 적는다.
누군가는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향이 피어오르던 그 아침, 하느님은 한 사람의 오래된 기도에 대답하셨고, 한 아이의 이름이 그 자리에서 불려졌으며, 그 아이는 앞으로 오게 될 빛을 맞이할 길을 닦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그것을 지켜보았고, 조심스럽게, 조용히, 기록해 두었다. 나는 대단한 것을 본 것도 아니다. 기적이라 불릴 만한 장면은 아주 잠깐 스쳐갔다. 그저 한 노인의 떨리는 손과, 그 안에 담긴 오랜 마음을 들여다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 같았던 시간 속에 조용히 뚫고 들어오는 빛 한 줄기... 그 빛이 모든 것을 바꾸는 데는 큰 소리도, 빠른 걸음도 필요하지 않았다.
혹시 당신에게도 그런 순간이 오거든, 부디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침묵이, 사실은 대답일지도 모르니까.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1:8-17"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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