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잡한 XR 산업을 구분하는 나만의 기준
2024년 1월, 애플에서 MR 기기 출시로 VR과 AR을 동시에 지원하는 기기 경쟁이 가속화되었다. 아직 보급화되기엔 가격이 너무 높아서 대중화라고 예상할 순 없다. 그래도 XR 분야를 모르던 사람들도 애플의 덕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대중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XR 산업에 관심을 가질 텐데 기술 영역의 비전문가 입장에서는 아직 MR이 뭐고 AR이 뭐고 개념이 어렵다. 그래서 XR 디바이스를 바라보는 관점은 VR 기기와 AR 기기로 단순히 XR 디바이스를 나누는 것보다는 그 형태로 구분하는 것이 더 직관적이고 적절해 보인다.
HMD, 머리에 쓰는 Head Mount Display는 과거. 글라스는 현재. 스마트 렌즈는 미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Meta의 퀘스트 시리즈 그리고 애플의 비전프로까지 모두 HMD 헤드셋의 형태다. 이런 형태는 인류가 가장 처음 만든 XR 디바이스의 형태이면서 현재 가장 보편적인 XR 디바이스 형태이다. HMD 헤드셋이 옵틱 기술의 발전으로 점점 경량화가 되어가다가 최근에는 안경과 같은 글라스 형태가 실현 가능하게 되었다. 그다음으로는 아예 신체의 일부로서 눈 바로 앞에 삽입하는 콘택트렌즈의 형태가 개발 중이고 최근 시장에 데모 제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내가 XR 디바이스의 당장, 현재에 관심이 있다면 HMD, 미래에 관심이 있다면 글라스 혹은 렌즈 제작 산업군을 보면 되겠다.
내가 경험하고자 하는 XR이 일상생활 중 고정된 실내 환경, 공간의 제약이 있는 콘텐츠에 국한된다면 고성능 고화질의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 형태의 디바이스들에 관심을 가지면 된다. 그렇지만 내가 경험하고자 하는 XR이 일상생활 전반의 내가 존재하는 모든 현실 공간 속에 경계 없이 구현되는 것이라면 글라스형 디바이스의 출시 혹은 스마트 렌즈의 등장에 관심을 가지면 된다.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는 XR 디바이스의 과거와 현재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초기 연구실에서의 XR 디바이스 모습이기도 하고 현재 주력 XR 디바이스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메타의 퀘스트 3과 애플 비전프로를 필두로 MR(Mixed Reality), 혼합현실 디바이스가 대중 시장에 등장한 최근에도 여전히 HMD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까지 META가 독주이지만 SONY, HTC, VALVE 등 HMD 디바이스들의 제조사는 꽤 다양하고 나름대로 시장을 나눠 가지고 있다.
VR 기기에 AR 기술을 강조하며 MR을 내세운 메타 퀘스트 3은 전작에 비해 경량화가 되긴 했으나 여전히 전통적인 VR에 적합한 실내용 HMD 형태다. 반대로 VR 보다는 AR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며 VR까지 섭렵하는 공간 컴퓨팅을 자칭한 애플 비전프로도 디자인 마케팅이 가미된(스키 고글이라고...) HMD 형태로 공개되었다. 비전프로가 고글이라고는 표현 하나 결국 머리에 씌우는 무거운 HMD이다. 앞서 말한 최신 XR 디바이스 시장에서 패권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부분도 모두 HMD 형태 기기의 영역에 제한된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HMD는 XR 디바이스 산업의 현재이다.
이런 형태는 기기 자체에 여러 고성능 하드웨어와 높은 용량의 저장장치, 와이파이, 블루투스등의 무선 연결기능, 배터리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디바이스 독립적으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우리가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하고 독립적으로 실행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각 디바이스 제조사별로 구글 플레이스토어, 앱스토어처럼 저마다의 앱 플랫폼 생태계도 독립적으로 확장해 나가려고 하고 있다. 우리가 재밌는 드라마가 있는 OTT 서비스를 찾아 구독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게임이 있는 콘솔 게임기를 구매하는 것과 같이 HMD 디바이스 제조사들도 저마다의 소프트웨어 플랫폼에 좋은 콘텐츠를 유치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그래서 최근 META는 XBOX와 제휴를 맺어 XBOX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를 퀘스트 시리즈에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대중화를 위해서는 경량화와 가격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은 케이스들도 있다. HMD 형태의 디바이스들은 이미 각 산업군에서 다양하게 판매되어 사용되고 있다. 각 산업에 최적화된 커스텀 기기 제조사들이 있다. 항공기 조종이나 위험한 상황의 훈련을 위한 콘텐츠를 재생하기 위해서 경량성보다는 각 훈련 환경에 맞게 제작된 제품들이다. 조종석을 실제로 같이 제공한다거나 모션 슈트나 모션 체어와 같이 제공하기도 한다.
HUD는 Head Up Display의 약자이다. HUD는 디바이스 형태를 뜻하기도 하지만 스크린에 나타나는 그래픽 정보 체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마블의 아이언맨 덕분에 HUD 인터페이스가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실제로 HUD는 전투기를 위한 주요한 인터페이스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 신체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기로서 HUD보다는 투명 스크린의 등장으로 그에 적합한 인터페이스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미 전통적인 기기가 가지고 있는 유리를 디스플레이로 쓰는 윈드실드 타입과 작은 투명 모니터를 추가로 설치하는 컴바이너 타입이 가장 보편적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앞 유리에 실시간 내비게이션 정보를 보여주는 HUD 시장이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을 중심으로 굉장히 발전해 있다. 현재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신차들에 옵션으로 HUD 스크린이 들어가고 있고 스크린을 별도로 직접 구매해 차량에 장착할 수도 있다.
웨어러블 기기로서 HUD는 정보를 보여주는 디스플레이가 눈앞에 위치한 형태이다. 모든 XR 기기들이 눈앞에 디스플레이가 위치하고 있지만 HUD 기기 영역은 콘텐츠를 보여주는 방식이 꽤나 전통적이다. 눈앞에 작은 모니터를 거치하는 형태인데 드래곤볼 스카우터가 HUD를 설명하기에 딱 정확한 형태이다.
머리 위에 거치하는 디스플레이라서 이런 형태를 HMD 디바이스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구분하는 HUD들은 HMD와는 그 형태가 다르다. 일반적으로 눈을 다 가리는 HMD 디바이스의 경우 내 주변, 시야 전체를 가상공간으로 만들어준다. 내 시야 전체를 가상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HUD는 작은 모니터를 통해서만, 예를 들어 한쪽 눈앞에 위치한 작은 모니터에 내가 초점을 맞추면 그 평면 모니터에 국한되어 정보를 보는 식이다. 그래서 특정 좁은 범위 안에서 정보를 보여주고 처음 사용하면 곁눈질하면서 계속 작은 모니터에 초점을 맞춰야 해서 꽤나 불편하다. 작은 모티터만 앞에 거치하면 되기 때문에 완제품 전체를 헬멧 쓰듯이 착용해야 하는 HMD와 달리 자신이 원래 쓰던 안경의 렌즈 앞에 거치한다던가 산업용 헬멧에 결합해 사용한다던가 착용 방식에 있어 유연성이 있다.
어떤 면에서 HUD 디바이스는 글라스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여겨지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독자적인 장르를 가지고 있는 디바이스 형태라 생각한다. 무거운 HMD 형태를 탈피하기 위한 디바이스들의 초기 형태였다. 일상생활 전반에 보다 적합하고 신체 활동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면서 눈앞에 렌즈를 구현한 형태이다. 최초의 스마트 글라스이자 AR 글라스라고 여겨지는 구글 글라스가 HUD 형태였기도 하다. 현재 이런 기기들은 단순히 정보를 눈앞에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인터렉션이 없기 때문에 산업현장에서 화상 리모트 워크를 위한 가성비 있는 기기로 많이 선택된다.
HMD가 과거와 현재라면 글라스는 근미래, XR 디바이스의 현재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 GLASS 형태의 가장 큰 특징은 HMD처럼 넓은 시야 범위에 가상 정보를 보여주면서 투명한 렌즈를 가지고 있는 덕분에 맨눈 시야가 확보된다는 점이다. HMD 디바이스들이 외장 카메라로 맨눈 시야를 대체하는 것과 다르다. 또 정말 안경과 같아서 가볍고 역동적이다. 메타 퀘스트 3과 애플 비전 프로가 AR을 활용할 수 있어도 기기가 맨눈 시야를 가리는 동시에 장시간 쓰기 어려운 무거운 HMD 형태라면 제한된 공간에서 정적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 애플 비전프로의 홍보 영상을 보면 그 형태의 제약 때문에 결국 기존 VR 기기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를 선보일 수밖에 없었다.
애플 비전 프로와 메타 퀘스트 3을 쓰고 지하철을 타는 건 조금 꺼려진다. 2023 비엔나의 AWE에서는 디바이스의 Social Compfort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공공장소에서 HMD 착용은 이질감이 크고 튀어 보여 착용이 쉽지 않지만 Glass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 녹아들기에 전혀 이질감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글라스 제품들에 관심이 많다.
과거 구글 글라스부터 대중들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XR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는 기기라고 여겨지는 안경형 제품들이 끊임없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과거 구글글라스가 Glass Hole이라고 놀림을 받았지만 현재의 글라스 제품들은 기존 선글라스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기술과 디자인이 발전했다.
특히 중국 Nreal(현재 엑스리얼)이 저가형 AR 글라스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Nreal 이전에는 이렇다 할 글라스 제품군이 없었는데 50만 원대에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AR 글라스와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와 비슷한 수준의 화질 제공, 거부감 없는 선글라스 디자인 덕분에 사실상 현재 완제품 글라스 시장은 Nreal이 홀로 점유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Nreal은 현재 Xreal로 이름이 바뀌었고 2023년 12월 Xreal air2 pro 제품이 출시되었다.
글라스의 관건은 옵틱 렌즈 기술: 현재 XR 시장에서 글라스 제품이 놓여있는 것 같은 기업의 부스를 구경 가면 렌즈 부분만 전시되어 있고 안경 프레임은 없거나 임시 프레임, 목업으로 만들어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 제품들의 경우 제조사마다 디스플레이 제조방식이 다르긴 하겠지만 원리가 비슷비슷하다.
반면 글라스 제품의 경우 아직 시장에 독점적인 제조 기술이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많은 옵틱 기술 기업들이 프레임을 포함한 완제품 제조사들을 대상으로 자사의 렌즈 옵틱(Optic) 기술의 시장 독점을 목표로 경쟁하고 있다. 렌즈만 어떻게 만들면 프레임은 디자인하기 나름이다. 우리가 실제 안경을 맞출 때 안경 프레임 고르고 렌즈를 따로 고르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경험이다.
과연 어떤 렌즈 기술이 시장에 보편화될지가 관건이다. 일반 대중은 가장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글라스를 고르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렌즈의 핵심 부분만 갖추면 나머지 프레임은 3D 프린팅으로 제작할 수 있다.
아쉬운 플랫폼 확장성: 아직까지 글라스형 제품들은 스마트폰이나 PC 등에 연결해야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HMD와 다르게 폼팩터 자체가 미니멀하기에 고성능 하드웨어나 고용량 저장장치와 배터리가 들어가기 쉽지 않다. 그래서 스마트폰이나 PC가 가지고 있는 앱이나 미디어를 그대로 재생하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META와 APPLE의 기기 광고를 보면 자체 기기 경험에 맞춰 개발된 콘텐츠를 기기에서 직접 실행 한다. 반면 글라스 형태 제품들의 광고를 보면 스마트폰에서 재생하는 영상을 글라스에서 큰 화면으로 재생한다거나 닌텐도 스위치와 연결해 가상 화면에서 커다란 화면으로 게임을 즐긴다던가 하는 식이다. 아직까지 스마트폰등 기존 기기의 콘텐츠에 의존해야 하며 자체 플랫폼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현재까진 글라스 형태가 줄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에 특화된 콘텐츠를 찾기 어렵다. 그래서 기술적으로도 그렇지만 콘텐츠로서도 아직은 현재라기보다 근미래라고 생각하고 있다.
글라스의 다음은 어디일까? 가장 최고의 디바이스는 사람의 눈 자체이다. 그래서 여러 기업들이 XR 콘텐츠를 사람의 눈 바로 위에서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콘택트렌즈를 시장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 ANON(아논) 처럼 모든 사람들이 눈에 AR 스마트 렌즈를 착용하고 있는 미래가 현실로 다가왔다.
ANON의 미래 도시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AR 스마트 렌즈를 끼고 있다. 모두 실물 위에 증강된 그래픽으로 정보를 보기 때문에 도시에는 실물 간판이나 사인이 하나도 없다. 미래 영화라고 하면 떠올려지는 전광판이 현란한 사이버펑크 도시의 모습과 완전히 반대이다.
2023년 MOJO vision의 CEO가 자신들이 만든 스마트 렌즈를 직접 실착용하고 아마존과 함께 만든 데모 앱을 스마트 렌즈에 띄웠다. 그리고 Alexa 인공지능에게 음성 명령을 통해 장바구니에 상품을 추가하는 데모 시연이 큰 화제가 됐다. 2023년 마지막 AWE 행사에서 러시아 스타트업에서 스마트 렌즈를 제작하고 있다고 했지만 이밖에 스마트 렌즈 부분에서 아직까지 제품 시장 출시에 대한 큰 소식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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