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한 장의 사진과 두 번째 생각

by 별빛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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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662890028_24.jpg Leica MP, Summicron-DR 50/2.0, Ilford XP2 400, Adobe Lightroom 편집


놀랍지 않게도 창문의 용도는 명확하다. 답답한 공기를 밖으로 내 보내고 - 맑은 새 공기를 안으로 들이기 위한 환기의 기능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분명 창문을 통해 흐트러지듯 내려오는 한줄기 빛을 통해 어둡고 우중충함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때론 창가의 멋진 풍경이 마음의 안식을 주기도 하지만, 쥴리엣은 창문을 바라보며 자신의 연인인 로미오를 기다렸으니 창문은 분명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용도가 있을 듯하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힐 때 흐르는 듯한 빛 한줄기를 통해 하루를 기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분명 어린 시절에는 지하철이나 버스의 창가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없었으니 - 창문은 일종의 유희도구가 되기도 했다. 신기해 보이는 자동차와 간판들,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들과 함께 난생처음 보는 건물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분명 창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쥐어준 듯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창문이 열리지 않았다. 창문이 닫혀있으니, 마음속 깊이 채워져 있는 공기는 점점 답답해져 갔으며, 밝은 빛 한 줄기 흐르지 않으니 점점 우중충해졌는지 모른다. 아마 현재의 상황에 만족해있으니 굳이 새로운 환경을 바라보고자 창문을 열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지금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다 보니 그러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창문을 내가 닫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만족스럽지 않던 현재의 자리에 순응하며 살던 그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하니 막상 어린 시절 품었던 그 꿈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니, 어린 시절에 품었던 꿈이 뭐였는지 조차 기억나질 않았다. 그땐 지나가는 버스 하나만 바라봐도 즐거웠던 시절이고, 학교 수업시간에 무심코 창문을 통해 바라보던 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즐거워 보이던 그 시절의 모습. 그러다 한 눈 팔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다시 눈은 교과서를 향한다. 어쩌다 한 번씩 환기를 하기 위해 열던 창문의 역할. 그 시절의 창문은 분명 많은 꿈을 품고 있었는지 모른다.

단돈 천 원만 있어도 행복해하며, 아무 버스나 타고 종점에서 종점까지 바깥 구경을 하며 친구들과 재잘거리던 게 즐거웠던 시절. 그러다 돈 몇 백 원씩 모아 군것질을 하고 집에 돌아갈 버스비가 없어 걸어가야 할 때는 아까 버스 창가를 통해 바라보았던 풍경이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에 조금 늦더라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그 내비게이션은 거리만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는 듯 간판과 광고지, 플래카드들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모습들이 만들어낸 풍경과 한데 어우러져 내 가슴속의 꿈도 함께 커져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꿈이 사라진 그 순간, 창가를 바라보는 시간은 부쩍 줄었다. 분명 지금 이 순간의 창문의 역할은 단지 환기를 위한 역할이며, 채광을 위한 역할이지 바깥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어 사치를 부리고 싶을 정도의 역할을 하지 못했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며, 창문은 분명 명확한 역할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하나 - 둘씩 떠나가는 걸 바라보며, 어린 시절 꿈꿔왔던 창문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한다. 분명 창문을 잠가둔 것 같은데, 어디에서 감갔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니, 잠그지 않았음에도, 창문을 열 용기조차 없었는지 모른다. 창문을 열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 주위에는 점점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의 웅성임이 들리기 시작한다. 이젠 82년생도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 않았던가? 그나마 몇 년을 더 기다리고 -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내 운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그렇게 만족을 하며 다시 한번 창문을 열까? 말까? 고민을 하는 순간.

미세하게 보이던 작은 못 하나는 절대 열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가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 아니면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걸 인지하는 순간, 밖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힘을 내 못을 뽑아본다. 창문 밖에는 무엇이 있을는지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창문 밖에 보이는 그 벽이 언제부턴가 생겨났는지도 모른 채 우두커니 바라본다. 그 벽을 어떻게 무너뜨려야 할지도 모른 채 말이다. 창문을 열고자 한 순간, 나도 모른 채 생겨난 담벼락은 왠지 모르게 나 자신을 둘러싼 벽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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