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한 장의 사진과 열다섯 번째 생각

by 별빛바람

https://brunch.co.kr/@pilgrim6/149

Leica MP, Summilux 50/1.4, Ilford XP2 400, 무보정

순대는 지금 서민의 음식이지만, 과거에는 서민들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소나 돼지를 잡아야 할 여유가 있어야 하고, 그 내장에 순대소를 넣어야 하는데, 밥으로 먹기도 힘든 쌀과 고기를 소로 넣으니 이 순대는 분명 서민들은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그러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순대를 먹는 모습이 나오지 않는 건 그 시절에 그 음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순대와 순댓국은 서민의 음식이 되었다. 아니 국밥 자체가 서민 음식이 되었다. 소뼈를 고은 곰탕이나 돼지국밥, 순대국밥이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도 어찌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어느 순간엔가 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먹어 시간을 아끼고자 하는 그런 용도로 변했으니 말이다. 소뼈를 오랜 시간 삶고, 고기를 오랜 시간 삶을 정도의 시간적 여유도 없는 서민들에게는 이 세상에선 다시는 먹을 수 없는 그런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서민들이 순대국밥을 먹긴 했지만, 그건 순대를 삶은 물에 밥을 말아먹었을 뿐이지 순대를 넣은 지금의 국밥을 먹었다는 의미는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국밥은 조선의 패스트푸드로서, 그리고 서민들의 배를 채워주는 음식으로 변하게 된다. 아마 가마솥에 푹 끓여 국물과 고기 건더기 조금 얹어 밥을 말아먹으니 만들기도 간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렴하게 한 끼를 먹는 음식 중 하나가 국밥이었다. 국밥 한 그릇에 깍두기와 양파,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으며 한 끼 든든하게 먹는 의미가 강했다. 그래서 종로 낙원상가 근처의 국밥집은 다 저렴했다. 없는 돈을 모아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잔을 하던 어르신들의 모습을 종종 보며 사진을 찍으러 다니던 때가 기억에 남는다. 분명 5천 원 정도면 한 그릇 먹을 수 있고, 소주 한잔을 마셔도 돈 만원 안 되는 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얼마 전에 찾아갔을 때 순대국밥 한 그릇의 가격이 깜짝 놀랄 정도로 올랐을 때 과연 서민의 음식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낙원상가 순댓국 한 그릇이 1만 2천 원. 소주 한잔 먹으로 해도 1만 5천 원으론 부족했다. 돈 만원에 따뜻한 국밥에 마음의 위안이 되는 소주 한 잔을 채우던 그 시절. 그 옆에 2천 원 국밥집도 있었으나 이젠 만원이 넘는 금액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 어르신들이 소주 한 잔 하는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여전히 탑골공원과 낙원상가 주위에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은 있었으나, 소주 한 잔 하는 어르신들은 계시지 않으니 다시 국밥은 서민의 음식의 티를 벗어나려 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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