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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Feb 28. 2024

한 장의 사진과 여러 가지 생각들 - 12

Leica MP, Summicron-DR 50/2.0, Fuji Superia 400

어린 시절 집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어, 그나마 TV에서 나오는 만화영화(지금은 애니메이션이라 이야기 하긴 한다.)만을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동네 공중파 전파가 썩 좋지 않았는지, 대부분 채널은 잘 나오지 않았고 그나마 MBC - 11번과 KBS - 9번이 잘 나올 뿐이었다.

가끔 날이 좋은 날은 KBS -7번이 나오긴 했지만, 어차피 선택지는 3가지 중 하나였고, 9번은 어른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나왔으니, 주로 11번을 보며 시간을 때우곤 했다. 아침 7시 반에 나오는 “뽀뽀뽀”를  보다가 등교를 하곤 했는데, 학교에서 집이 가까운 친구들은 9번에서 나오는 “하나 둘 셋”도 보곤 했으니 이건 순전히 선택의 문제일 뿐이었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약 30분 정도지만 우리들만의 시간이 펼쳐졌다. 11번에서는 5시 반 ~ 6시까지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틀어주곤 했는데, 그 마저도 뉴스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계실 땐 드문 드문 볼 수밖에 없었다. 많이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 머릿속을 맴도는 건 “메칸더 V”와 ”실버호크“였다.

인기 있는 만화영화가 방영이 되면, 아이들의 복장은 그 만화영화 캐릭터로 도배가 된다. 가방부터 시작해 아티스 운동화에는 그 캐릭터가 그려진 운동화를 판매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티셔츠부터 시작하여 100원짜리 조립식 장난감까지 모든 것들이 도배가 된다.

하지만 그 가방과 옷에도 분명 서열은 존재했다. 좀 여유가 있는 친구들은 TV에서 광고가 나오는 아티스 운동화나 가방을 사서 다녔지만, 여유가 부족한 친구들은 시장에서 비슷하게 그려놓은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메칸더 V의 방패 모양이나 로봇의 모습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아니면 이름이 “매칸더 로봇“ 이런 식으로 저작관을 살짝 피해 갔다. 그 시절 어머니는 돈이 부족했는지 시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메칸더 V 가방을 사 오셨는데, 어딘가 이상해 보였던 그림이 결국은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었고, 나도 모르게 그 가방을 소홀히 대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라면 한 개 가격이 100원(안성탕면) 아니면 200원(신라면) 하던 시절이었으니, 만 원짜리 가방은 어머니에겐 정말 큰돈이었다. 시장에서 나름 큰 가게에서 힘들게 사 주셨지만, 버클형도 아닌 지퍼형이라서 그랬는지…… 어린 마음에 짝퉁이란 생각에 소중히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딸아이가 포슬핑을 좋아해 이것저것 많이 사주곤 한다. 요즘은 워낙 프린팅 기술이 좋아져, 이게 짝퉁인지? 정품인지? 구별이 안 가지만 - 단지 포슬핑이 그려져 있단 것 하나라 행복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 당시 내가 더 철이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메칸더 로봇이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거면 그뿐이었고 - 그걸 사기 위해 고생했던 어머니를 생각했어야 하는데, 그땐 그저 친구들과 다르단 생각에 너무 철없이 생각했던 모습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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