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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Nov 17. 2024

밤은 어디에서나 찾아온다.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연재 타이틀은 "퇴직에 대처하는 우리 모두의 자세"였다. 그 시절, 나름 호황이라 불리던 시기에 구조조정을 하던 한 대기업의 일상을 바라보았으며, 그 모습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난 그 시절, 내 목소리만 열심히 짖어대던 대기업의 한 명의 팀장 중 하나였으며, 고작 내가 대리고 있던 팀원들 몇 명을 지키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마지막까지 팀원들의 자리를 알아봐 준 뒤, 마지막으로 HR은 나와 면담을 하자고 했을 때 정말 이런것이 일상이구나 라는 자괴감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던 HR팀의 심주임은 막상 구조조정 대상자로 분류가 되니 그 사람에게 어떤 자괴감이 들게해야 제발로 나갈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아는 듯 했다. 때론 동정을, 때론 분노를, 때론 욕설을 퍼부으며 자신이 정해진 2일이라는 시간 안에 나가길 바라는 모습. 결국 그는 성공했고, 그 대기업의 계열사가 완전히 폐업처리가 되었음에도 몇 안남은 사람 중 하나가 그 심주임 이었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그러한 일이 일어나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회사의 구조 때문일까? 아니면 정치라는 이름 아래에서 만들어낸 하나의 폭력이었을까? 그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끝 까지 주욱 생각해 보니, 그 일은 비단 회사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대학에서도 벌어졌고, 군대에서도 벌어졌다. 특히 군 시절 툭 하면 학사장교 출신을 괴롭히던 사관학교 출신 작전장교는 모 부대 여단장이 되었으며, 최근 뉴스에도 그의 부대가 오르내릴 정도로 시끄러운 곳의 부대장이 되어 있었다. 대학 시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잘 쓴 레포트든 논문이든 그 논문의 저자의 혜택을 받는 것은 마침 OO학부의 학과장 따님이었고, 그 따님은 언젠가 모교 홈페이지를 들어가니 최연소 전임강사가 되었다는 내용의 홍보자료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사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불공평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일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우리가 올라가지 못하는 유리천장은 존재하며, 이미 운동장은 기울어진 후 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 안에서 공정하게 노력하고 싸우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쉽게 글러브를 던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치 노장의 타이슨을 공격하던 제이크 폴이 비난도 받지 않고, 대 선배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함께 표현해야 했던 그 경기와는 사뭇 달랐다. 단지 이미 판이 정해진 싸움에서 그 판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열심히 지켜봐야 하는 것이 나와 같은 흑수저의 역할일 수 밖에 없었다.

 사실 흑수저의 삶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때론 흙수저라는 이야길 하긴 하지만, 난 그 이론에 반대한다. 흙수저는 자신의 천장을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자포자기 하는 삶을 일컫는 말이다. 그나마 흑수저는 자신에게 주어진 색을 벗어나기 위에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니 그 현실의 비참함을 벗어나고자 몸무림치는 절박한 사람들의 현실을 보며 때로는 웃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하는 것은 그저 흙수저라는 삶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절박함 때문에 무엇이든 다 하겠다고 하던 데프콘을 보며 웃던 사람들도, 절박함에 무엇이던 다 하던 지상렬의 모습은 한 편으론 비난을 했다. 결국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다시 한 번 투영해 보며, 회사든, 학교든, 군대든 그 모든 것을 다 대입해 보면, 결국 정해진 삶에 순응하고자 하는 사람 - 그리고 그 순응하고자 하는 삶을 다시 규정하고자 하는 사람 - 마지막으로 그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졌다는 것을 다시 알아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결국 회사에서 짤리는 것도 선착순이고 정보 싸움이었다. 그나마 윗 사람에게 어느 정도 순응을 한 사람은 회사에서 정해진 재원 중 일부인 위로금을 단 돈 1만원이라도 더 받아낼 수 있었다. 그나마, 그 정보마저 없는 사람들은 위로금이 아니라 실업 수당 마저도 받을 수 없는 비참한 현실에 내몰릴 수 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이야기 하지만, 생존과 결부된 그 모든 것 조차 정치의 논리였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직후, 회사의 모습에서 조금 더 확장해 보기로 했었다. 그리고 그 부조리는 학교에서 부터 시작했다는 결론을 통해서 "진흙탕에서 뒹구는 들개들"을 쓰게 되었다. 사실 그 글의 결론은 학교라는 진흙탕을 뒹굴던 들개가 군대라는 조직을 가게 되고, 그 곳에서 부조리에 항거하다 자살한 동기를 바라보면서 느꼈던 느낌을 하나의 이야기로 쓰고 싶었다. 그 동기는 OO부대의 급양관이었고, 마침 수 많은 선배들이 급양 비리를 일삼고 있음을 알아 그 비리를 언급했을 때 따돌림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단 사실. 그리고 그 항거를 도저히 이어 나갈 수 없자, 번개탄에 불을 붙여 논 상태에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단 사실. 그리고 그 결과는 급양 비리를 덮기 위해 동기의 자살이라는 사실을 최대한 숨기고, 국가유공자란 타이틀을 쥐어주며 이 모든 사실을 덮었단 사실. 사실, 자살의 원인을 파해치는 순간,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와는 다르게 현실은 여전히 비참하기만 했으며, 그때 연루된 사람들은 여전히 군 고위직에 머물러 있었다.

그 이야기의 끝은 멀찌감치 사회에서 그 사건을 접해들은 한 이름 없는 기자가 기사화 하였으나, 결국 몇 줄 안되는 기사로 끝이 났다는 결말이었지만, 현실은 기사화 조차 되지 않았다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느 글이든 이야기의 끝이 존재하지만, 아직 난 그 마무리를 읽어보진 못했다.

아무래도 현실은 여전히 끊임없이 싸우며 투쟁해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려 8시간 동안 얼차려를 주었던 훈련소 훈육대장은 지금 모 부대 대대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 40kg 군장 이상으로 혹독한 가혹행위를 했으나,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엄한 훈육대장이란 미화가 되었으며, 잊혀진 사람들에겐 그 고통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또 한 사람은 중대장 시절, 자신의 소대원과 선임 하사를 괴롭힌 끝에 그 둘은 온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 자살을 했다. 하지만, 그 중대장은 지금은 참 군인이라 하며 TV에 종종 나오곤 한다. 역시 잊혀진 존재들에겐 끊임 없는 고통마저 영겁의 세월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건 비단 군대의 현실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내가 겪은 이상으로 스텔라가 겪게 되었다.


불과 10살.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이 글은 밤이 찾아온 순간의 이야기 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겪은 밤에 대한 이야기가, 불과 10살 초등학교 4학년 학생도 비슷한 고통을 느껴왔음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물론, 그 상황에 대해 관심 없이 넘어가는 것이 대부분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밤은 찾아온다.

그리고 그 밤은 분명 극복하면 이겨낼 수 있는 새벽으로 다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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