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퀴나스에게.
내가 파리에 도착한 것은 매우 늦은 저녁이었다. 파리에는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혼자, 그것도 밤에 도착하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11월의 날씨 또한 쓸쓸한 기분을 돋우는 것 같았다. 이 시간에 도착하면 비싸도 택시를 타라는 여행 카페에서 본 조언을 충실하게 따랐다.
공항에서 급하게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는 15구에 있는 매우 작고 오래된 건물이었다. 입구의 벨을 누르니 체구가 큰 한인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니트에 청바지, 주먹만 한 귀걸이, 올려 묶은 부스스한 머리와 진한 향수냄새가 게스트하우스 사장의 첫인상이었다.
그는 내게 웃음기 없는 얼굴로 고개를 살짝 까딱하듯 인사하고는 여권의 사진과 내 얼굴을 한참 비교하며 등록을 하고, 방을 안내했다. 방은 7층 건물의 5층에 있었다. 아주 작은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고장이 났다며, 파리에서는 뭔가 한 번 고장이 나면 최소 한 달은 견뎌야 수리공이 온다는 말을 덧붙였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좁은 계단을 사장이 앞서 올라가고 나는 트렁크를 두 손으로 들고 뒤따랐다. 이곳의 1인실은 다른 게스트하우스의 2인 1실이라든가 다인실보다도 저렴했는데,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방은 정말 작았다. 그 작은 방에 작은 침대가 하나, 작은 옷장이 하나 있었고, 길쭉한 창문이 침대 머리맡 쪽에 나있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눕거나 침대에 앉는 일이 전부인 공간이지만 창문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좁지만 우리 호텔에는 쥐나 바퀴는 없다고 자신해요. 내가 한국에서 사 온 약으로 정말 열심히 방역을 했거든요. 그런 것들은 내가 못 견디니까.”
사장이 어딘지 모르게 거만한 말투로 말하고는 화장실을 안내했다. 4층과 5층이 공용으로 쓰는 세면실과 화장실은 역시 아주 작았다. 조명이 어두워서 얼마나 더러운지 얼마나 깨끗한지 한눈에 분간이 되지 않았다. 조식은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이후에 일어나면 커피와 티 정도만 마실 수 있다고 말해주고는 자신은 6층에 살고 있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였다. 나는 안내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사장이 턱끝을 살짝 든 상태로 고개를 까딱하며 화답했다. 저 인사는 프랑스인에게 배운 것일 테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방에 혼자 남겨진 나는 창문의 커튼을 옆으로 젖혔다. 창밖으로 에펠탑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눈에 들어온 것은 맞은편 건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건물들이 아름다우니 창밖으로 옆집이 보여도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스트하우스만큼이나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의 창가에 제라늄 화분이 놓여있었다. 언젠가 창가에 제라늄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첫날이 가고 있었다.
-은이.
은이 자매에게.
부탁을 들어주어 고마워.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는지 몰라. 한국어로 된 글을 읽는 것이 이렇게 감사한 일이라니!
벌써 다음 얘기가 궁금해서 조바심이 날 정도다.
여긴 개인 시간을 가지기 힘든 곳이야. 나처럼 수도원에 소속되어 사제가 될 준비를 하는 사람은 더욱 엄격한 금욕과 수련을 요구받지. 다행인 것은 아직 언어가 서투른데 말을 할 일도 거의 없다는 거야.
물론 라틴어 공부는 계속해야 하지만. 여기서의 삶에 있어 네 편지는 너무나도 큰 자극이 된다. 평생 무염식만 하다가 감자칩 과자를 한 봉지 먹는 기분이랄까.
시간이 많지 않아 긴 글은 쓸 수가 없다. 하지만 네 편지는 매우 소중하게 읽고 있다는 것만 알아둬.
아퀴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