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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Sep 18. 2024

23. 익숙하지만 낯선


다음 날, 카페 사장에게 재석과의 통화 내용을 털어놓았다. 그는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얘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성호 씨가 죽기 전에 재석 씨에게 문제의 ‘그 사진’을 보냈다는 거죠?”

나는 대답 대신 어제 재석에게 받은 메시지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사장은 실눈을 뜨고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본 그 사진이 맞네요. 빛바래고 희미해서 확실히 식별이 안 되는 느낌까지 똑같으니 출처는 같을 것으로 보이고요.”

“성호도 일간지를 본 것일까요?”

“확실치는 않지만 그랬을 확률이 제일 높죠.”

“이걸 보자마자 우리 셋이라고 생각한 게 제일 이상하지 않아요? 희미해서 식별도 잘 안 되는데?”

“그럼 자기는 그 사진을 보고 왜 본인들의 사진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게…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자기 자신의 사진은 얼굴이 확실히 식별이 안 돼도 알아보는 것이 가능하다. 게다가 그 장소나 테니스 경기 등의 배경이 경험과 일치하니… 잠깐, 아니지. 난 소설 속 인물이 아니다. 게다가 그들과 함께 파리에 갔던 경험은 오직 소설 안에만 존재한다. 그런데도 난 그게 우리 세 명이라고 알아봤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


“… 사진을 본 순간 그게 나와 녀석들이라고 믿어 버렸는데, 지금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처음 봤을 때는 그게 우리라고 확신했거든요. 소설 속 내용이 마치 실제 경험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하지만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확신은 점점 떨어지고 이제는 그게 어이없는 착각이었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이상하죠? 설명이 잘 안 되네요.”

“이상하긴 하네요. 내 말은, 소설을 쓴 본인은 그럴 수 있어요. 소설을 쓰면서 장면을 상상하며 썼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 그런 착각이 가능할 수도 있죠. 그런데 성호 씨도 보자마자 그 사진 속 세 명의 인물이 자기들이라고, 소설 속 자기들인지 아니면 실제의 자기들인지는 몰라도, 여하튼 자기들이라고 확신한 거잖아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요?”

이 타당한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성호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누가 대답할 수 있을까? 유일하게 대답할 수 있는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사장은 애초에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었다는 듯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있었다. 나는 해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싶어졌다.

 “이제 성호와 이 사진에 관련된 사실을 알 수 있는 길은 사라져 버렸어요. 유일한 다리가 끊긴 셈이죠. 재석이 녀석은 이 사진에 대해 좀 더 숙고해 보고 만나서 얘기하자고 하는데 생각을 더 해 본들 얻어낼 게 있을까요?”

“성호 씨가 이 사진에 대해 재석 씨에게 남긴 다른 단서는 없나요?”

“‘이게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해’라는 문자와 함께 보냈대요.” 나는 일부러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카페 사장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지도 않고 잠시 침묵하며 눈만 이쪽저쪽으로 굴렸다. 나는 까닭 모를 초조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검지 손가락으로 찻잔을 만지작 거린 후에야 이윽고 한 마디 했다.

“슬프네요.”

“왜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게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 것도 같아요.”

그 말에 나 역시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막상 나는 성호가 어떤 마음으로 이 사진과 그런 문자를 보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재석 씨와는 만나볼 건가요?” 사장이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아직 모르겠어요. 아직은 만난다고 해도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저, 부탁 하나 해도 돼요?”

“네?”

“재석 씨를 만나는 가정 하에, 우리 카페에서 두 분이 만나면 안 될까요?”

“안 될 게 뭐가 있어요? 저는 너무 좋죠!”


카페 사장이 기분 좋은 듯 눈으로 웃으며 두 손바닥을 마주 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장이 이 이야기에 이토록 진심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는 동시에 어딘지 으스스한 기분이 든 것이다. 매일 드나들던 집에서 갑자기 낯선 기운을 느끼고 소름이 돋는 듯한, 그런 종류의 으스스함. 나도 모르게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그리고 그 기분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사장과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가 마시던 테이블을 치우기 시작했다. 때마침 아무도 없던 카페에 다행히 단체 손님이 들어왔고, 사장이 퇴근 준비를 시작하는 것을 보고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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