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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Sep 22. 2024

25. 그는 누구인가.



카페 사장에게서 으스스한 느낌을 받은 이후로 나는 의식적으로 그의 행동거지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사는 여성이라는 것 외에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정확한 나이조차 모른다.. 처음에는 삼십 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사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기도 했다가 그다음 순간 바로 삼십 대 초반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댁은 대체 몇 살이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사람을 대할 때 나이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막상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니 모든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사장은 자신의 얘기를 하는 법이 없었다. 우리가 꽤 가깝게-오직 나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인간 관계도 잘 몰랐다. 카페 근처에 고양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이 있고, 집 앞과 카페로 찾아오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다는 것이 내가 사장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사장의 인간관계는 몰라도 동네 고양이들과의 관계는 조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의 휴대폰에는 고양이들 사진이 가득 저장되어 있어 보였는데, 굳이 그걸 내게 보여주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가 내 글을 읽은 적이 있다는 것도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 중에 하나였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금방 망해버린 잡지의 보잘것없는 글과, 그 글을 쓴 기자의 이름을 읽은 지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기억하는 사람이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내 글을 기억해 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 전부다. 어쩌면 제일 이상한 것은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짧게 스쳐 지나갔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한 없이 이상하고, 굳이 신경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면 또 대수롭지 않은 내용들이 사장에 대한 정보의 목록을 채웠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사장에 대해 의심스러운 생각을 갖는 것은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도 이 카페에 일자리를 구하러 ‘내 발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나이 많고 관련 직종 경험도 없는 나를 선뜻 직원으로 채용하고 친구처럼 대해주는 배려심 깊은 사장에 대해 의심스러운 생각을 품다니! 하지만 더 이상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린 후에도 사장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관찰하고는 했다.


이후로 사장에게서는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우리는 교대 시간에만 잠깐, 길게는 한 시간 정도 함께 일을 했고, 가끔 나의 얘기를 들어주느라 조금 더 그 시간이 지체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 정도의 시간 안에서만 함께 시간을 보냈다. 사장은 표정이 풍부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손님을 대할 때 가끔 친절하게 웃는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표정과 함께 억양이라든가 감정 상태 또한 늘 일정한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존재가 주는 안정감이 카페의 분위기를 만들어나간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가 가장 다채로운 표정과 억양을 보여줄 때는 나의 얘기를 들을 때였다. 평소의 모습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줬다. 그의 반응 때문에 나도 더 신나게 얘기를 늘어놓을 수 있었다. 재석이를 카페로 부르겠다는 말에 기뻐하던 모습이 으스스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도 사장이 평소에 보여주던 평온함과의 간극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딱히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거나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사장은 나만큼이나 고립된 사람이고, 자극 없이 평화로운 일상이 삶의 전부로 보였다. 그러니 내 이야기가 매우 짜릿한 흥분을 안겨줬을 수도 있다.


생각이 이 정도에 이르자 오히려 카페 사장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의심을 품기 전보다 오히려 더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그의 행동거지를 관찰하는 일도 서서히 그만두게 되었다. 실은 행동거지랄 것도 없었다. 그의 행동은 늘 일관성이 있었고 보는 이에게 평온을 안겨주는 안정감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에 품었던 경계와 의심이 완전히 풀렸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잠시 갈등을 겪으면 이후로 찾아오는 평화의 시간이 더욱 감미롭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효과였을 것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카페 사장을 관찰하는 내 시선을 사장 역시 역으로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 시선을 거둔 후 그 역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마음을 놓았다는 것을 나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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