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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Nov 24. 2024

시식회(詩食會)를 시작합니다.

우리 검색되지 않은 이름을 지녔어도.  한연희

밀주


한연희



너무 오래 웅크린 자세는

몸에 좋지 않아요


그 몸을 어디에 둘까요


북쪽에서 내려올 소식을 기다리는 내내

커다란 통에 담긴 몸을 생각했다


욕실은 김이 서려 희뿌옇다

휘어진 척추를 어루만지다 보면 무덤은 거기에 있다

물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며

바닥에 닿아 소리를 냈다


춥.다.춥.다.


누구를 기다리는 일은

기대를 자꾸 거는 일은

끝나지 않고

더 어깨를 구부러뜨리게 되고


북쪽에서는 기다리는 내내 술을 빚는다고 했다

커다란 통에는 몸이 아니라

쌀과 누룩과 꿀과 그 밖의 것이 뭉쳐

발효되며 소리를 낸다


춥.다.외.롭.다.


인간이 잠들자 출몰하는 귀신들은

몰래 만드는 술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찾아온다


통에 들어가 마시고 눌러앉아 살면서

그 술에 영험함을 깃들게 한다


예전에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북소리가 들리더구나

술이 잘 익은 통에서는 말이다

귀신이 울고 웃는 소리가 둥둥 울려 퍼지더구나


네가 인간이라면 여기에 널브러져 있진 않겠지

여린 것은 돌봄이 필요한 거란다


잔에 따른 흰 술을 바라보면서

겨울 냄새를 맡으면서

점점 더 웅크려 앉는 내게


어서 와주세요

누구라도 곁에 있어

어깨를 보듬어주세요

몸을 끌어안아주세요


구수한 술냄새가 납니다 당신

또한 인간이지 않은지


매년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자들을 기리는

제사상에는 움푹한 곳이 있다


거기 술잔을 들여다보면

대체로 맛 좋은 귀한 술일수록

모여든 많은 넋이 보이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깨를 감싸 안듯

술잔을 드는 당신


아직은 혼자가 아니에요


[출처] 희귀종 눈물귀신버섯 문학동네. 2023.08


시식평

알고 있겠지만,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 어디 서도 검색된 적이 없는 사람 흔적을 남긴 곳마다 피어날 수 있는 사람 수분 만으로 번식할 수 있는 감정들.

그 무르고 축축하고 입안으로 크록스를 신고 돌아다니는 버섯의 식감을 좋아하지 않았어.

그래 네 말이 맞아. 그 맛을 어떻게 모를 수 있겠어 어린애 같다는 거 알아. 하지만 자꾸만 입 밖으로 신고 있던 신발을 팽개쳐버리는 걸 어떡해.

그리고 어느 날 버섯을 썰어 데운 프라이팬에 구워 먹었어! 소금과 참기름을 섞은 장에 찍어서 말야 그 풍미가 얼마나 깊고 식감은 어찌나 아련한지 한 달 동안이나 버섯을 먹었다니까. 누구도 그렇게 먹어보라고 했던 적이 없었다는 게 원망스러울 정도였어.


가끔 아침에 일어난 자리를 뒤돌아보면 유령 같은 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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