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늘 흐렸던 건 너무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밤새 켜져 있던 가로등이 일 순간 꺼지면 주위는 한층 어두워져 마치 극장 계단을 오르며 어두워진 주변을 살피느라 이리저리 둘러보다 보면 동공이 커지며 빛을 찾아내고 있는 것처럼.
종이컵에 한가득 얼음과 물이 섞여 찰랑거리지도 않는 액체를 사 먹기 위해 줄을 서 있었어요.
여러 가지 맛이 있었던 것 같은데 대략 4가지 맛이었던 것 같아요.
사과 맛 슬러시를 주문했어요. 새끼손톱만 한 숟가락이 있는 빨대가 꽂혀있었죠. 친구들을 따라 걷다가 넘어져 버렸어요. 종이컵 안의 내용물이 길가에 다 쏟아져버렸죠. 컵 안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어요.
밤새 눈이 내렸어요. 눈을 쌓이게 할 만큼의 양이 아니었는지 바닥엔 수없이 넘어지고 쏟아져버린 사과 슬러시가 있었어요. 차마 밟지 못했던 그날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산책을 시작했어요.
하늘이 낮게 가라앉은 토요일 아침. 하루하루는 아주 연한 빛을 지닌 한지 같아. 손으로 끝을 잡고 양팔을 벌려야 모두 펼쳐질 수 있을 것 같았죠. 소소한 바람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더듬이가 있는 한지. 물론 풀에서 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지.
물을 먹어 윤기 나는 한지를 매일매일 몸에 한 겹씩 두르는 일인 거야. 토요일쯤 되면 움직이는 것이 불편해지거나 젖은 한지가 말라가며 통증이 느껴질지도 모르지.
어젠 아주 더할 나위 없이 하늘이 파랗고 햇살이 눈에 부셨지. 회사 직원 한 분이 귤피차를 주셨는데 작은 티백에 유기농으로 만든 거였지. 나는 속이 온통 하얀 머그잔에 차를 우려내며 오래전에 가본 제주도를 생각했지.
아마도 귤 농장을 체험하느라 들어가 본 과수원에선 귤의 향을 오랫동안 맡을 수 없었지. 냄새를, 향기를 오랫동안 맡을 수 없다는 건 크나큰 축복일 테지만.
물속에 담그기 전 티백을 이리저리 흔들어보았어. 눈 내리는 소리를 기억하는 귤이, 바람에 가벼운 돌멩이가 굴러와 가지에 닿는 소리를 기억하는 귤이 그 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지.
한 잔을 우려내고 다시 한번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내며 잔 안을 들여다보자 창밖에 쏟아지는 햇살이 두 번째 우려낸 귤피차와 비슷했지, 아! 말간 유리잔에 탔어야 했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어.
점심을 먹고 혼자 공원에 나가서 잠깐 몸에 겹쳐진 한지를 말리고 있었지. 아까 흔들었던 티백 속에 귤피들이 온 사방으로 쏟아져 흩어지며 손등에 목덜미에 정수리를 가볍게 치며 사라졌어.
퇴근하며 바라다본 노을은 첫 번째 우려낸 귤피차처럼 진하게 우러났어.
밤이 되자 문득 하루키의 고양이를 버리다-부제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생각났어. 무슨 이유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지만-뭐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번역을 했던 김난주의 표현을 빌자면 머뭇거림이 느껴졌다는 무수한 망설임과 조심스러움이 묻어 나는 글이었다는 하루키의 짧은 에세이가.
하늘은 저렇게 흐려 낮게 자리하고 창가에 머리를 부딪혀 죽는 빗방울 소리가 들리는데 일교차가 심한 날을 좋아하는 나는.
축복받은 날이라고 생각해.
게다가 토요일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