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 기 는.
지쳐 쓰러질 것 같은 금요일 아침입니다. 아니 눈을 뜨는 일에 이미 지쳐있는지도 모릅니다. 억센 손으로 가린 눈을 겨우 치워내고 뜹니다.
힘겹게 눌러졌던 눈꺼풀 위로 섬광 같은 빛이 점차 사라져 가며 사물이 제대로 보입니다. 낮은 천장아래 섬세하고 예민하며 청각이 무척 발달한 고양이 모란이 눈꺼풀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듣고 침대로 뛰어 올라옵니다.
이불을 힘차게 젖히고 노를 젓듯이 몸을 앞으로 한번 뒤로 한번 반동을 주며 세 번 만에 침대 위에 앉습니다. 양반 다리를 하고 앉으면 모란이 다리 사이를 파고들어 물방울처럼 고여 듭니다.
컴퓨터가 켜진 것을 확인한 뒤 무선 마우스의 전원을 켭니다. 음악을 틀고 무선 마우스를 다시 바닥으로 내려놓습니다.
책상 위의 마우스를 떨어뜨려 어느 부속 하나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마우스를 움직일 때마다 들려옵니다. 아주 작은 소리는 때로 소리에 비해 턱없이 불안합니다.
겉옷을 입어도 차가운 계절이 파고듭니다. 느린 걸음으로 건널목을 건너고 아파트 상가를 지나 계속 걷습니다. 이 풍경은 어느 곳에나 있고 천 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것 같습니다.
문득 기다리다 지쳐 돌아섰던 수많은 길들을 떠올리며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제 아침은 모란이 유난히 집안을 휘젓고 지나는 바람에 모란이 다리에 치이지 않도록 발바닥을 바닥에 붙여 걷고 있었습니다. 머리를 거품으로 잔뜩 일으켜 놓고 얼굴에 비누 거품을 일으켜 앞이 보이지 않는 거울을 손으로 닦습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귀찮아서 미뤄둔 수염이 나를 더 못생겨 보이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작은 희망으로 그래도 못생겼지만 깔끔한 남자가 될 거라고 결정했습니다.
오른쪽 수염을 깨끗하게 밀고 있었습니다. 손끝으로 부드러운 살갗이 느껴졌습니다. 문 밖에서 모란이 날뛰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문을 열자 땅콩 껍데기를 모아둔 플라스틱 통 뚜껑이 열린 채 땅콩이 쏟아져 있고 모란은 신이 나서 냄새를 맡고 껍질을 흩어 놓고 있었습니다.
저리 가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천년동안 말해도 더 신이 나 날뛸 것이 분명한 모란을 바라다봅니다.
젖은 손으로 땅콩 껍데기를 쓸어 모습니다. 껍질이 금방 모이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린스를 하고 머리를 말립니다. 젖은 바닥을 다시 마른걸레로 훔쳐냅니다. 출근을 합니다.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울을 봤습니다. 그곳엔 오른쪽 수염이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른쪽 수염이 깔끔해진 남자는 왼쪽 수염이 더 지저분하게 보였습니다.
그 사람은 오른쪽으로 서서 여자 목소리를 내며 웃었습니다 왼쪽으로 서서는 남자 목소리를 내며 낄낄거렸습니다. 이렇게 해맑은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온종일 다른 때보다 더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근무했습니다.
누군가 부르면 오른쪽으로만 고개를 돌려 대답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화장실로 직행해 왼쪽 수염을 말끔하게 밀었습니다.
아마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일로 목에 담이 온 것 같습니다.
흐리고 쌀쌀한 금요일 아침입니다. 무던한 얼굴을 거울로 보며 웃습니다.
사진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