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침대에 앉습니다. 몸을 덮어주던 이불을 개어 침대 한쪽에 두고 다시 침대에 앉습니다. 고양이 모란은 그렇게 앉아 있을 거라면 내 머리를 쓰다듬으라며 손바닥 안으로 머리를 들이밉니다. 그렇게 머리를 밀고 들어온 힘으로 눈꺼풀이 들립니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던 것 같은데 고작 2분이 흘렀습니다.
물 쓰듯이 아침 시간 2분을 사치스럽게 써 버렸으니 서둘러 집을 나섭니다.
풍요롭기만 한 권태, 좌석은 모두 예약되어 입석으로 갈 것을 결정해야 했던 어느 새벽 매표소 앞에서의 망설임과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엔 너무 늦을 것이 확정된 시간 말이죠.
내릴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 곳을 목표로 향해가는 중입니다.
12월 버스터미널에 있습니다.
버스 앞문이 열리고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서 있던 사람들이 내리기를 잠시 기다립니다. 고속버스 짐칸이 열리고 혼자 떨어져 낯선 짐들과 함께 있던 케리어, 박스, 보따리들이 주인을 만나 얼굴이 환해집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눈물을 흘리는 종이상자도 있습니다.
아무도 타고 온 버스를 뒤돌아보거나 되돌아온 길을 되새기지 않은 채 돌아가야 할 곳으로 서둘러 떠나갑니다.
대합실은 목적지며 경유지이기 합니다.
다시 집으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옵니다. 산책을 2분 줄였습니다. 건널목을 지나며 아무런 표정이 없는 중학생 사내아이 입가에 피어난 마른버짐을 힐끗 바라다봅니다. 건조하고 차가운 대기에 대해 문득 생각하고, 그렇게 눈에 보이는 일상의 증상들을 생각합니다.
오늘도 햇살 없는 흐린 아침으로 시작합니다. 서둘러 들어가 문을 닫아버린 화장실 문 앞으로 모란이 웁니다. 구슬프게 서럽도록 웁니다. 아마도 내가 사라지고 저렇게 우는 존재를 본 적도 없고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나온 나에게 배를 내보이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거리며 환영의 표시와 만족감을 온몸으로 팔랑거립니다.
평온하며 별다른 일 없는 12월의 어느 아침입니다.
한 문장에서 떼어낸 활자는 의미가 희박할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 문장으로부터 떼어낸 활자를 지금부터 새기러 갑니다.
의미는 중첩되며 쌓여갑니다. 내리는 눈도 쌓여가며 명암이 생길 것입니다.
뜨거운 커피가 마시기 적당하도록 시 몇 편을 소리 내 읽었고, 커피를 마시며 행마다 보이지 않는 나만의 밑줄을 긋습니다. 아침 산책로를 걷습니다. 완전히 불이 꺼진 상가들을 지나치며 어둠 속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탁자나 의자의 쓸쓸한 자세를 따라 해보기도 합니다.
어제는 회사에서 연말 회식을 하였습니다. 새로 생긴 커다란 뷔페였습니다. 뷔페를 가지 않는 이유는 턱없이 부족한 섭취량 때문입니다. 어제는 제법 많이 먹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부지런했습니다. 회사 회식은 모두 말하는 사람들뿐입니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어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장소, 사라져 버리지 않는다면 아무도 알 수 없는 장소, 거대한 보릿자루처럼 함께 다니며 많은 말들을 들었습니다.
수많은 말을 듣고 났는데 단 한 마디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대화하지 않으며 마주 앉아 서로의 얘기를 하는 사람들,
따뜻한 곳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좀처럼 춥지 않은 이유가 터무니없이 따뜻했던 실내온도 때문이란 걸 알게 됩니다. 잠시만 서 있어도 손끝이 쩌릿쩌릿한 날씨였는데 말이죠.
영화는 1945년 살바도르 달리와 월트디즈니가 공동 제작을 시도합니다. 그 후 2003년 로이 디즈니에 의해 완성된 작품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화면을 계속 바라다봅니다. 마음이 미묘한 질감이나 입안으로 생경한 감정의 식감이 느껴지면.
운전면허를 따고 도로 연수를 받자마자 눈을 감으면 운전을 했다는 그녀는 온종일 차를 몰고 다녔습니다. 가고 싶은 곳을 다니는 택시 기사처럼 시내를 쏘다녔다고 했습니다. 전화하면 늘 운전 중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고 싶었던 곳은 눈 오는 날의 자동차전용극장이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부탁받은 그는 서커스 극장 같은 곳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 자동차 주파수를 맞추고 영화 대신 앞차의 남자와 옆 차의 여자가 서로 입술을 맞추고 서로를 어루만지는 그 이상의 야릇한 장면들을 보느라 영화제목도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극장을 나서며 계속 헛기침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