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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온동물의 체온

어느 햇살 아래서도 몸을 데우지 마라.

by 적적

꺼둔 전열기들은 아침에 일어나니 더욱 차가운 체온이 느껴집니다. 모란은 그런 차가운 사물들에도 아침 인사를 하느라 목덜미를 부드럽게 비벼 대며 돌아다닙니다.


맨발로 걷는 거실 바닥도 한기로 가득하지만, 이리저리 거실을 돌아다니며 창밖으로 보이는 건너편 아파트 지붕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눈을 바라다봅니다. 따스한 물 한잔을 탁자에 내려놓습니다.

의자에 앉자 모란은 기다린 의자가 잘 도착했는지 부서진 곳은 없는지 이리저리 살피다 얼른 뛰어올라 앉습니다.


최저기온은 영하 4까지 내려간다고 합니다. 뭐 기온이 내려가는 수많은 이유를 설명 들은 것 같은데 겨울이니까 그렇겠죠.


모란이 숨겨 둔 물건을 찾아 밤새 이리저리 굴리며 다닙니다.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머릿속으로 정전기가 일어납니다. 벙어리장갑을 찾아 온 집안을 뒤집니다. 지난번 집안이 거지소굴 같다며 수감된 장갑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어쩌면 겨울 동안 집안 어딘가에 있다가 여름쯤 발견되는 건 아닐까요


모란은 열어놓은 장롱 앞에서 문을 열 때마다 그 포근하고 따스하고 어두워 몸을 숨기기 쾌적한 곳을 쏜살같이 파고 들어갑니다. 손을 휘저어도 나올 생각도 없이 꼭꼭 숨어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동자로 환히 웃는 것입니다.


이 시간의 햇살은 맨발로 돌아다닙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뒤꿈치가 선홍빛으로 물듭니다.

건널목 옆 헌 옷수거함 곁에 커다란 너무 커서 헌 옷 수거함에 들어갈 수 없는 갈색곰 한 마리가 녹색 수거함에 기대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저 곰을 두 손으로 힘겹게 안고 한 남자가 신호를 기다립니다.

남자는 곰인형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지 이리저리 곰을 다시 끌어안습니다. 손에 쥔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한동안 녹아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맨다리를 드러내고 검은 롱패딩을 입은 여자예요. 그녀는 곰인형의 주인이라는 걸 금방알 수 있어요.

아직 덜 마른 머리며, 조금 진해 보이는 화장이며. 슬리퍼를 신고 발등이 차가운 붉은색입니다. 여자가 인형을 보고 크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요. 그녀는 뒤따르는 남자 앞으로 걸으며 계속 뒤돌아 봅니다. 멈추지 않고 남자에게 말을 겁니다. 사람들이 곰 인형을 쳐다보는 것이 행복해 보여요.


여자가 손을 마구 흔들면 남자는 더 느리게 움직이며 휴지를 건네는 동안 여자는 난처한 얼굴로 흐르는 것을 손으로 막으며 다른 손으로 곰인형을 움켜쥡니다. 그녀가 씻고 나와 발가벗은 몸을 곰인형 뒤에 숨깁니다. 남자가 웃습니다. 모든 것은 달라졌어요.

지쳐있는 갈색 털을 만져보자 햇볕에 따스해지고 있습니다.


저 햇살 아래 얼마나 놓여 있으면 몸이 따스해질 수 있을까요


살아있다면 살아있는 것은 저 햇살 아래 놓여 몸이 따스해질 수는 없는 거예요.


살아있으니 너무나 춥고 그래서 몸을 움직여 체온을 올립니다.


정온동물의 운명 같은 거죠.


아침 산책을 너무 짧게 돌고 온 것을 아쉬워하며 출근길을 멀리 돌아갑니다.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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