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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의 포물선

먼저 머릿속으로 통증을 상상해

by 적적

아침에 눈을 뜹니다. 시계를 보며 지난겨울 다녀온 정선에서 보낸 토요일 아침을 떠올려봅니다. 지금쯤이면. 지금 이 시각이라면…. 그런 시간을 점자를 손으로 더듬듯이 촘촘히 읽어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위치한 집에선 바람이 사방으로 불어옵니다.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가면 그래 널 날려 보내주나 라며 불어왔습니다.

아마도 일요일 늦은 밤 안산에 내렸을 때의 바람도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떠오른 것은 그 집. 마당 꽃망울이 가지 끝마다 달려 바람을 맞고 선 나무 한 그루.

어떤 나무인지 형에게 물어보니 심기만 했지 이름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우린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며칠 뒤 형은 얼어붙은 자목련꽃을 보내주었습니다.

수요일은 추웠고 목요일은 더 추웠고 아침은 조금 더 견딜 만해졌습니다. 친구 하나가 어깨가 아프다며 통화를 했습니다. 옷을 입는 것조차 고통스럽다고 팔을 들어 올리거나 팔을 밖으로 빼내는 행위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통증으로 그 통증이 잦아드는데,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통증도 사로잡기 힘든데 통증을 감추기 위해 들숨을 몰아쉬며 최대한 팔을 뒤로 젖혀 빠르게 앞으로 빼며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 행동은 제법 연기력이 필요합니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연기를 한다는 건 평온의 세계에선 당연한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잘 숨겨둔 통증을 묻는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너무 통증이 심해지면 어딘가로 숨어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잠시 다녀가신 어머니가


너 팔 아프니?


라고 묻자 너무나 순순히 ‘네’라고 대답해버렸고 합니다. 남아있던 가족들의 무심의 혐의를 뒤집어씁니다. 결국 아내의 손을 잡고 어린아이처럼 병원에 갔었다고 합니다.

다시 통화를 하며 어깨의 안부를 묻습니다. 나이가 드는 건 어쩌면 구체적인 안부를 묻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어깨나 허리 더 나이가 들면 무릎이나 다른 곳들의.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떤 날은 덜 아프고 어떤 날은 다른 날보다 더 아프다 이런 상태를 나아간다고 해야 하는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어떻게 하면 아픈지 아니까 그 상태를 피하게 되고 그러니 덜 아픈 상태인 것 같다. 먼저 머리로 팔의 궤적을 가늠해 본 뒤 팔을 움직이면 훨씬 통증이 덜하더라. 사는 것도 그런 것 같다.


병원에서 같은 말을 계속하는데 가끔 의사 얼굴에 남은 궤적만큼 팔을 휘둘러 한 방 먹이고 싶다.

토요일 아침입니다. 여전히 추운 날씨입니다. 전날보다 한 겹의 옷을 더 입고 산책을 다녀옵니다. 꽃망울에 돋아있던 사진 속의 솜털들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정선의 아침에서 돌아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실내 온도와 실외온도의 기온 차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도 통증 없는 평범한 날이 되기를….




견딜만한 통증에 여념 없기를….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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