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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사람이 살고 있다.

나도 누군가 간절히 부르는 이름이었다.

by 적적

할머니 댁엔 커다란 항아리가 아주 많았어요 아이 다섯 명쯤 들어가고도 남을 항아리들.

그리고 모기장 머리띠를 두른 항아리, 뚜껑을 들 수 없던 항아리들 말이죠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항아리의 손잡이를 밟고 머리를 깊숙이 넣어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죠.

엄마·아빠와 떨어져 할머니 댁에 맡겨져 있을 때니까 엄~마하고 부르죠. 서로 교차하고 항아리 속을 진동하는 소리.

흘러내리 머리카락과 입안과 콧구멍에 파장을 일으켜 엄마라는 단어가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멀리 친척 집에 가던 날 손잡이를 조심히 밟고 항아리 속으로 몸을 조심히 넣었어요. 가슴까지 차오르는 깊이였어요.


항아리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항아리만큼 하늘이 보였어요.


우물 안 개구리를 떠올렸어요. 그리고 부르고 싶은 사람 이름을 불러보았어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여동생 이름을 하나씩 그러자 항아리 안으로 엄마가 아빠가 여동생이 찾아와 내 살갗을 어루만졌어요 우린 손을 잡고 마주치는 파장만큼 원을 그렸어요.

수없이 손길이 교차하고 이름이 진동하며 사라져 갔어요.


무릎을 팔로 감싸고 앉았어요. 비릿한 간장 냄새가 났어요. 엉덩이가 젖는 줄도 모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과 간장 향에 취해 잠이 들었어요


항아리 밖으로 진동이 느껴져요. 힘없이 부르는 소리 그리고 마당을 빠른 걸음으로 다니느라 항아리 바닥에 고인 간장의 일렁거리는 잔물결 소리.


수많은 소리들이 항아리 밖에서부터 안으로 파고들어 진동하며 파장을 일으켰어요. 눈을 뜨자 뚜껑 밖으로 별이 보였어요. 다리를 펴려 하자 다리에 쥐가 나서 다리를 펼 수가 없었어요.

항아리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보자 마당엔 아무도 없었어요. 혼자서 항아리 밖으로 몇 번을 뛰어오르려다 포기하고 달빛 아래 항아리 속에서 어른들을 기다렸어요


사람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어요. 나를 번쩍 들어 꺼내 주었어요. 할머니는 간장 냄새가 난다며 씻기고 아무 말 없이 자리를 펴주었어요. 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을 한없이 바라보았어요.

오징어 먹물처럼 비린 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물기 가득하고 밀가루 반죽 같은 구름이 이스트처럼 부풀어 오르는 밤입니다.

항아리에 들어가지 않아도 생각나는 이름을 부릅니다. 밤공기가 진동하고.



이름은 파장을 일으키고 몸에서 비린내가 납니다.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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