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칭저울이 기울어집니다.
오래전 혹독한 글쓰기를 했습니다. 시 한 편을 쓸 때까지 걷습니다. 행간을 적어 내려갑니다. 연이 채워집니다. 그 연을 교차로에 서서 고치고 시 한 편이 완성되면 그 지점에서 다시 집을 향해 돌아오곤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불안감에 멈춰서 버립니다. 길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날도 있습니다. 두계절이 지나도록 쉬지 않고 했습니다.
급격히 살이 빠지고 단단한 표피를 드러냅니다. 속살이 보이더니 파편을 튀기며 부서져 버립니다. 그럴만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새로워질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은 속절없이 깨졌으며 한동안 통원 치료를 받아야만 할 만큼 몸이 부서져 버렸습니다.
길이 글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 멈춥니다.
가만히 몸을 일으킵니다. 가만히 몸을 일으키는 이유는 모란이 덮고 있는 이불 위에서 잠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침대에 붙은 몸을 떼어내는 일이 조금 버겁기 때문입니다.
햇살은 집안에 포장을 풀지 못한 이삿짐 같습니다. 이제 박스를 뜯고 햇살을 꺼내 찬장에, 옷장에 정리해야 합니다. 모든 일이 귀찮아 일단 커피 한 잔을 탑니다. 새로 이사 온 동네 산책을 나갑니다.
혼자 사는 남자의 이사 온 첫날 같습니다.
익숙하게 건널목을 건너고 골목을 지납니다. 다시 익숙한 가게 간판을 올려다봅니다. 건너편 약국의 간판을 교체하느라 인도를 가로막고 선 차를 피해 차도를 걷습니다
이 환한 아침에 형광등 불빛을 모두 켜 놓은 간판 내부를 올려 다 보며 서 있었습니다. 내부는 별반 다를 것이 없고 거대한 고생대 생물처럼 수많은 갈비뼈를 지니고 있습니다.
몸은 제법 홀가분해졌습니다.
그런 하루하루가 지금 생각나는 건 산책로를 비튼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낮은 하늘과 차가운 대기가 만난 화학 작용으로 환기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글 쓰는 일은 딱히 할 말도, 갈 곳도 없는 친구를 만나는 일입니다. 거친 털을 지닌 검은 곰이 하품을 하며 입 밖으로 나오는 걸 바라보는 일.
미지근한 물에 몸을 맡깁니다. 흐르는 물속에 녹아내려 하수구 속으로 사라지기를 잠시 희망해 봅니다.
전투적으로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집으로 돌아갈 일만 생각하고 금요일을 먹어 치웁시다.
까짓 출근 해서 이 동네 최고의 미친놈이 누군지 알려주러 갑시다.
적적이 아닌 것처럼.
가장 적적에 가까운 것처럼.
햇살은 퇴근 후에 정리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