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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흔들리며 현상되고 있는 거야.

by 적적

폴라로이드 사진기



아버지는 즉석 사진기였지

어머니는 몇 장의 인화지를 지니고 계셨어



찍으면 버려지거나, 현상되었어

인화지인 채로 모두 위-잉 소리를 내며 세상에 태어난 거야

어둠 속에서 길러진 창백한 아이였어


흔들리는 건 명확해진다는 거야

바래지는 시간이나 먼지가 엉켜 현상되는 거지

성급한 지문으로도 훼손되기도 하고


가장자리를 잡고 흔들면

공기 중에 기억을 흡착시켜

흔들리던 풍경이 모두 제자리를 잡고

바람까지 드러나면


이제 느리게 사라지기 시작해

시간의 흐름은 변색과 다르지 않은 일이었어



너의 어느 끝을 조심히 잡고

나의 끝 부분을 잡은 손길이


찍어 흔들리던 한 장이었어


수 천장의 사진 중


누구나 동굴 하나를 지녔다고 생각하거든. 석순처럼 쌓여있는 책들을 바라다보며 바닥을 향해 자라는 종유석을 쳐다보면서 가만히 생각해 느리게 흐르는 물방울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석주가 되기를 바라

거대해지기를 희망해.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자라는 방향을 멈추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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