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퇴장하지 않는다
물결처럼 스쳐 갔다.
흩날림은 늘 무언가의 끝이자 시작이었다.
하나의 막이 내리고, 자리에 조명이 켜진다. 꽃들은 마지막 커튼콜을 받으며 허공에 손을 크게 들어 올렸다 반대편으로 내리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남긴다. 이름 모를 관객들이 셔터를 눌러댔다. 셔터음은 박수 소리 같기도 했고, 어떤 작별의 의식 같기도 했다. 벚꽃, 목련, 개나리, 진달래. 순서대로 빛나고, 순서대로 퇴장했다. 무대 위의 별들이 잠시 반짝이고는 사라지는 것처럼.
살짝 부푼 공기. 꽃의 미세한 분말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코끝을 간질이는 그 낯선 감촉. 그러나 누구도 그 정체를 정확히 설명하진 못한다. 향기와 기억과 기압의 교묘한 결탁. 누군가는 그걸 봄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것을 지나감이라 부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흩날렸다. 벚꽃 잎은 주저 없이 떨어졌고, 바람은 그걸 유난히 천천히 데리고 다녔다. 꽃잎을 데리고 유랑하는 순회공연단처럼. 골목의 낡은 벽을 배경 삼아, 간이 무대를 차리고,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한낮의 허공에 빛이 찢기듯 흩어질 때, 그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짧고 화려한 클로즈업.
누군가는 봄이 한 편의 영화라고 했다. 거대한 스크린에 투사된 자연의 필름. 봄꽃들은 늘 조연이었다. 언제나 배경으로 불리며, 인물의 감정을 보조했다. 그들은 자리를 지켰다. 새벽에도, 폭우에도, 일상의 무심한 시선 속에서도. 그렇게 피고, 져가며, 매해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하는 듯했다.
매번 이름을 묻게 되는 꽃들도 많았다. 도로변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혼자 피어난 꽃. 누군가의 발에 밟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가로등 불빛 아래서 빛나기도 했다. 봄은 정해진 무대에서만 공연되지 않았다. 오히려 봄은, 사람들이 무대라 부르지 않는 곳에서 더 자주 시작됐다. 붓질 하나 없는 회색 벽에도 그림자는 어김없이 드리워졌고, 그 그림자의 경계에서 작고 미세한 생명이 고개를 내밀었다.
꽃이 진 자리에 남는 것은 침묵이었다. 가지 위의 벌거벗은 자국. 잎도 없고 열매도 아직은 없는, 다만 ‘없어진 자리’만이 선명한 풍경. 마치 누군가의 퇴장을 방금 목격한 무대 뒤편처럼 어수선했다. 가끔은 그 공허가 더 아름다웠다. 무엇이 사라지고 남겨진 자리는 때때로 더 많은 것을 말한다.
봄꽃들은 침묵하는 방식으로 퇴장한다. 목소리 없이, 감정 없이,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단지 피었던 기억만 남긴다. 감상자들은 아쉽다고 말하고, 그 아쉬움은 언제나 봄의 본질이 된다. 만개는 짧고, 기억은 오래간다. 그래서 누군가는 기다림에 중독되고, 또 누군가는 아예 기대하지 않기로 한다.
스쳐 가는 존재들은 늘 매혹적이다.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들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반짝임은 지속될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서 마주치는 모든 반짝임에 감정이 개입된다. 봄의 시퀀스는 그 감정을 의도적으로 자극한다. 때맞춰 핀 꽃, 딱 알맞은 타이밍의 바람, 기가 막히게 투명한 햇빛. 모든 장면이 정확하게 배치된 편집본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착각하기 쉽다. 이 모든 게 누군가의 연출일지도 모른다고.
연출자는 없다. 봄은 스스로 움직인다. 시간의 리듬에 따라 자연은 피고, 지고, 다시 피기를 반복한다. 관객은 그저 앉아 있을 뿐이다. 감동은 반복되지만, 감정은 늘 달라진다. 두 번 같은 봄은 없고, 한 번 본 장면을 다시 보는 일도 없다. 그건 영화가 아니라, 공연에 가깝다. 단 한 번만 상영되고, 필름도 남지 않는, 그날의 생생함만 남기는 무대.
따뜻한 햇볕 아래 사람들은 사진을 찍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잡기 위해. 하지만 사진은 꽃을 담을 수 없다. 꽃을 담는 순간, 그건 더 이상 꽃이 아니다. 그건 멈춘 시간이고, 죽은 인상이다. 봄은 움직이는 것, 바람과 함께 흔들리는 것, 말없이 질색이 번지는 가지 위의 기척이다. 멈춰진 이미지 속에서는 결코 그 살아있는 것을 옮겨올 수 없다.
어쩌면 봄은 늘 떠나는 중이었다. 피어난 그 순간부터 이미 떠나가고 있는 계절. 봄꽃들은 정지하지 않고, 감정을 묶어두지도 않는다. 오히려 스쳐 가고, 덧없고, 미세하게 사라지는 방식으로 존재를 각인시킨다. 그게 그들의 방식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모든 것을 보여준다.
봄꽃들의 상영관은 폐관했다. 커튼은 내렸고, 객석은 비었다. 바닥엔 몇 장의 꽃잎이 흩어져 있었다. 사람들이 일어난 자리, 남겨진 기척. 언젠가 다시 열릴 것이다. 다른 장면, 다른 구성, 그러나 익숙한 공기의 밀도로. 그땐 또 다른 감정으로 맞이할 테다.
끝났다고 말하기엔 아직 남은 향이 있다. 떠났다고 말하기엔 아직 눈앞에 잔상이 있다. 봄은 그렇게, 무언가를 남긴다. 그것이 기분인지, 기억인지, 혹은 감정의 찌꺼기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다시는 똑같은 장면은 없다는 사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더 아쉬운.
봄꽃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자리를 바꾼 것이다. 어딘가의 나무 아래,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 속에서, 다음 막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봄이 조용히 퇴장한 자리, 아직 채 식지 않은 공기 속에서 어느덧 여름이 입장하고 있다. 철 지난 포스터가 바람에 찢기듯 흔들리고, 새로운 조명이 무대를 물들인다. 수국, 접시꽃, 백일홍, 여름의 주연들이 서서히 각자의 대사를 꺼낸다. 더운 숨결이 골목을 타고 흐르고, 나무들은 초록의 볼륨을 높인다. 봄이 남긴 공백은 그대로 여름의 서사가 된다. 꽃들은 계절을 바꿔 이어지고, 상영관은 닫히지 않는다.
이 쇼는 멈추지 않는다. 다만 계절이, 조명이, 그리고 등장하는 꽃의 이름이 바뀔 뿐이다. 지금, 여름이 첫 장면을 열고 있다. 관객의 눈은 아직 봄에 머물러 있지만, 무대는 이미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