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를 입증하지 못한 문장들
혼잣말을 하는 사람을 봅니다. 이를테면 혼자 침대에서 일어나며, "자, 이제 일어나서 산책을 다녀오자구요~" 혹은, "모란이 밥 주고 물 갈아주는 걸 잊으면 안 되죠." 그런 혼잣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듣는 멜로디처럼 변합니다. 어느새 흥얼거리는 노래가 되고, 혼잣말을 부르며 조용히 웃기도 하지요. 가장 자주 하는 건, 냉장고 문을 열며 "저녁은 뭘 먹을까요, 신김치도 처리해야 하니까 두부도 꺼내야겠네요." 그렇게 말하다 말고 킥킥 웃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아주 섬뜩한 문장이 튀어나오기도 해요.
그럴 땐 생각합니다. 이런 말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누가 들어주지 않아도, 누구에게 들려주려는 것도 아닌 말들. 어디선가 흘러나와 나를 통과해 버리는 문장들.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 오래 묻어둔 기억, 그리고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한 감정들이 숨어 있습니다.
말이 되지 못한 감정들은 어디로 갈까요?
그 말들은, 감정들은, 어디에 머무는 걸까요?
간혹 코끼리들이 죽기 위해 찾아간다는 그곳엔 상아 같은 문장이 놓여있는 건....
텅 빈 방이었다. 오래전 색을 잃은 벽지, 손자국이 사라지지 않은 창틀, 바닥은 말들이 떨어져 쌓인 듯 어수선했다. 공기엔 정체된 감정의 잔향이 떠돌았다. 말이 되지 못한 것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감정들이 벽을 따라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숨소리를 기다렸다. 그저 무죄를 입증받지 못한 말들이었다. 문장이라는 것은 늘 그런 식이었다.
죄를 지은 적 없지만, 세상에 드러내지 못한 채 스스로를 가둔 존재. 감정을 담기에 너무 솔직하거나, 너무 부정확한 표현들. 혹은 너무 어둡거나, 너무 사소해서 언어가 되지 못했던 것들. 그 말들이 감정의 벽 뒤에 숨어 있다가, 아주 미세한 틈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벽을 긁는 소리였다. 손톱도, 뾰족한 도구도 아니었다. 그저 마른 생각의 잔해 같은 것이 벽지의 얇은 결을 따라 스며들었다.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작고, 그러나 끈질기게.
벽의 안쪽은 축축하고 오래된 감정으로 가득했다. 감정을 벽돌처럼 쌓아 만든 이 감옥은, 의외로 단단하지 않았다.
허물어질 듯 불안했고, 그 불안이 오히려 문장을 붙잡았다. 문장은 손가락을 세워 흙을 파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손끝에 닿는 건 말라붙은 기억의 껍질, 오래전 굳은 감정의 먼지들이었다. 그러나 문장은 멈추지 않았다.
점점 벽지 아래의 결이 느껴졌고, 축축한 감정의 표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곳은 무너진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미로 같았다. 누군가의 울음을 품은 새벽, 삼키지 못한 말 한 조각, 기억 속 어딘가에서 흐릿하게 떠오르는 이름 같은 것들이 진흙처럼 손가락 사이를 흘렀다.
벽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다만 문장이 점점 더 얇아질수록, 벽은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마치 오래 닫혀 있던 마음이 서서히 풀리는 것처럼. 문장은 뾰족해졌고, 몸을 낮췄으며, 스스로를 부수면서 통과할 길을 만들었다. 부서지는 건 문장이었지만, 벽을 흔들었다. 문장은 조심스럽게, 부서진 말들을 조합하며 여백을 채워 나갔다. 단어는 너무 묽으면 흐릿해졌고, 너무 단단하면 종이를 찢었다.
그래서 문장은 감정의 농도를 조절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의 깊이, 눈동자가 멈추는 리듬,
살갗에 스치던 바람의 두께. 그 모든 것을 한 문장 안에 밀어 넣었다. 그제야 문장은 방향을 찾았다. 감정의 조각들이 모여 길이 되었다. 굽고 휘어진 구절, 잘못 적힌 표현, 지워졌다 되살아난 문장들이 미약한 불빛처럼 통로의 벽을 밝혔다. 통로는 어둡고 습했다.
머뭇거리던 기억들이 웅크려 앉아 있었고, 끝내 꺼내지 못한 과거의 부끄러움들이 문장의 발목을 붙잡았다. 문장은 그것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씩 손에 쥐었다. 부끄러움도 기억이고, 기억은 감정의 생애였다. 그것 없이 문장은 완성되지 않았다.
기억은 무릎 높이까지 차올랐다. 문장은 그 위를 천천히 걸었다. 자신이 무엇을 지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한 번도 꺼내지 못했던 말들, 언젠가는 반드시 나아가야 했던 감정들이었다.
마침내, 구불구불한 길의 끝에서 바늘구멍만 한 틈이 나타났다.
그것은 빛도, 바람도, 소리도 거의 없었지만, 문장에게는 충분했다. 문장은 더 얇아졌고, 더 낮아졌다. 숨을 줄이고, 마음을 접어, 자신을 쪼개며 그 틈을 통과했다.
그 순간, 처음으로 바깥의 공기를 마셨다. 페이지의 가장자리, 누군가의 눈이 머무는 한 끝.
거기서 문장은 달라진 공기를 마셨다. 처음부터 ‘나는’으로 시작하지 않았기에,
그것은 누구의 말도 아니었지만, 바로 그 점에서 모두의 말이 될 수 있었다.
조력자는 늘 실패를 기록했다. 너무 과해서, 너무 약해서, 충분히 아프지 않아서. 그 기록이 쌓여 어느 날 문장이 되었다. 혼잣말 같던 고백이 페이지에 번졌고, 누군가에게 읽히는 순간,
문장은 더 이상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조용한 몸짓. 바람 부는 창가처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고요하게. 그러나 그 속엔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오래된 체온, 스쳐 간 얼굴, 잊힌 감정의 이름들. 그 조용한 기록들이 종이 위를 걷는다.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못했던 울음이 문장이 되어 창밖으로 나아간다.
누군가는 그 문장에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이, 마침내 누군가의 귀에 닿는 순간. 그 순간, 혼잣말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 순간은 말보다 느렸다. 감각은 조용히 퍼졌고, 얇은 얼음 위를 걷듯 조심스레 흔들렸다. 문장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번지듯, 번짐이 퍼지듯, 읽는 이의 마음 안쪽으로 흘러들었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감정이 문장을 타고 타자에게 닿았다. 손끝이 종이를 만지듯 조심스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그것은 누군가의 숨을 데려오고, 오래전 묻어둔 체온을 다시 일으켰다.
문장은 더 이상 글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입김, 작은 떨림, 창밖에서 부는 바람의 결이었다. 문장이 아니라 감각. 이야기라기보다 체험.
혼잣말의 탈옥은 그제야 완전히 끝났다. 누군가의 가슴 안쪽에서 울리는 작은 여운으로.
이제,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문장은 남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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