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감싸 안는 것은 사람인가, 시간인가
어릴 적, 여자의 포옹을 받았다. 엄마의 포옹도 아니었고, 연인의 것도 아니었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오래전 어느 비 오는 날에 만난 낯선 여자의 팔이 내 어깨를 감쌌다. 비 온 뒤 차가운 바람이 스미던 봄의 끝자락. 어딘가 이상한 슬픔이 그 팔 안에 있었다. 이유도 모르고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눈물이 나지 않았지만, 몸이 먼저 기억했다. 그건 온기가 아니라 밀도였다. 울음을 유예한 채 오래도록 흔들리던 물결 같은 것. 감정이 아니라 구조. 말보다 깊은 무언가.
그날 이후로 종종 생각했다. 포옹은 기억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그 여자의 팔 안에서,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장면들을 떠올렸다. 어딘가에서 분명히 지나쳤던 것들인데,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 몸속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아마 그 여자 역시 그런 감각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여성의 팔이 어떤 슬픔을 감싸는 구조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여자들은 포옹할 때 더 천천히 숨을 쉰다. 마치 상대의 체온을 곱씹듯이. 그냥 안는 게 아니다. 무언가를 묻는다. 잃어버린 이름, 부서진 언어, 이별 이후의 공백 같은 것을. 물으면서 안는다. 그러니까, 그 포옹은 안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슬픔의 소리를, 혹은 무너진 심장의 혼잣말을. 말로 하면 다 흩어질 것을, 팔 안에서 조용히 듣는다.
남자의 포옹에는 구조가 있다. 계획이 있고, 목적이 있다. 어떤 도달을 향한 움직임. 위로든 욕망이든, 방향이 뚜렷하다. 그러나 여자의 포옹은 무방향성이다. 어디에도 도달하지 않지만 모든 곳을 거친다. 목적이 없다는 것이 더 슬프다. 오히려 그것이 진심이라는 증거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팔로 감싼다. 그래서 여자들의 포옹은 묵음이다. 웅크리고 있다.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결핍이 모이는 곳, 감정의 잔해들이 머무는 임시 거처.
어느 날 새벽, 술에 취한 친구가 말했다. “여자들은 서로 포옹할 때 울 수 있어서 좋아.” 무심하게 건넨 말이었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 문장은 한 겹이 아니었다. 울 수 있다는 건, 울음을 누군가 감당해 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 말 없이 안고, 무너지는 마음을 가만히 받는다는 뜻. 그것은 이해가 아니라 수용이었다. '괜찮다'는 말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동의.
기억을 되짚다 보면 언제나 여자의 포옹은 비 내리는 날과 닮아 있다. 날카롭고 흐릿한 공기가 그 팔 안으로 스며든다. 포옹이 끝나면 무언가 사라진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덜어진다. 무거움은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옮기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여자와 포옹한 이후부터였다. 마치 자리를 옮기는 고요한 슬픔처럼. 그건 치유가 아니었다. 정지. 잠시 머무름. 쌀을 이르고 가만히 그릇을 기울여 쌀알만 남기고 흘러가지 않게 막아주는 손길.
여자는 포옹으로 말을 남긴다. 그건 기록에 가깝다. 말보다 오래 남는 잔상, 팔의 각도, 이마를 스치는 숨결, 안과 밖이 뒤섞이는 온도. 어떤 사람은 평생 누군가의 포옹 한 번으로 구조된다. 생을 견딜 수 있는 밀도, 그 단 한 번의 감각만으로.
한 여자와 헤어진 뒤에도, 이상하게 그녀의 포옹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얼굴은 흐릿해졌고 목소리는 아예 잊었다. 하지만 그녀가 안았던 방식은 여전히 어딘가 남아 있다. 그렇게 안기면, 이 세상에 여백이 생긴다. 비좁던 삶에 문 하나가 생기는 것처럼. “그때, 너 많이 무너져 있었어.” 말 대신 남긴 팔의 압력. 그건 심장이 견딘 진동의 형태였다.
여자들의 포옹은 시간을 감는다. 아픔과 기쁨이 분리되지 않은 채 얽혀 있는 감정들을 부드럽게 밀어낸다. 남기지 않고 보내는 방식. 그런 포옹은 한 번 받고 나면 다시는 예전처럼 울 수 없다. 울음이 더는 경계 밖으로 흐르지 않게 되니까. 대신 내면 어딘가에 탱고처럼 느릿하게 맴돌며, 서서히 나를 안는다.
지하철에서, 병원 복도에서, 새벽 택시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포옹의 순간들 사이로, 나는 수많은 여성들의 고요한 침잠을 본다. 울지 않는 눈동자와 떨리는 손끝, 그리고 천천히 조여 오는 팔. 그 안에는 말해지지 못한 분실물들이 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간직된 역사가 있다. 인간을 가장 조용히 구조하는 서사다.
그래서 나는 종종 상상한다. 언젠가 내가 다시 무너질 때, 그 포옹을 다시 받을 수 있을까. 말없이 안아주는 그 팔을. 질문하지 않고 다만 받아주는 그 슬픔을. 여자들의 포옹은 기억의 마지막 언어다. 그것은 말보다 오래 살고, 고통보다 깊이 흐른다.
무게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무게를 감싸는 방식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어떤 이는 포옹으로 무게를 나누고, 어떤 이는 침묵으로 무게를 감춘다. 그리고 여자들은, 포옹으로 무게를 들여다본다. 슬픔을 안은 채, 끝내 말하지 않고, 그렇게 오래도록.
그 팔의 슬픔이 더 깊은 이유는, 단지 ‘여자’라서가 아니다. 그것은 결국, 더 많이 들어주고 더 많이 기다린 존재의 팔이기 때문이다. 말을 삼킨 시간, 이해를 유예한 순간들, 울음을 미뤄둔 계절들. 그 모든 것이 모여 만든, 하나의 구조. 여자들의 포옹은, 세계의 구조를 잠시라도 되살리는 유일한 제의다.
그리고 나는 그 구조를, 오늘도 그리워한다.
말없이, 안기고 싶어서.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