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11화

무릎 아래 다른 세계

이제 흔적만 남은 감각의 문 하나를 들고 있었다.

by 적적

그녀들의 무릎을 들여다본다. 무릎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곳엔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던 순간,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섰던 결기, 소리 없는 울음 같은 진동이 각인된다. 오래된 떨림이, 마치 기억 속에 숨겨둔 흉터처럼, 그 자리에 고여 있다. 그런데 그녀의 무릎엔 아무것도 없었다. 빈 캔버스처럼 반들반들하고, 창백하도록 말끔했다. 처음엔 부러웠다. 상처 하나 없는 그 깨끗함이.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되었다. 그녀 어머니는, 딱지를 떼려 할 때마다 손등을 때렸다고 했다. 대나무 회초리로. 조용히, 그러나 무섭게. 딱지는 그대로 남았지만, 그녀는 점점 조용한 사람이 되었다. 말을 삼키는 법을 먼저 배운 아이. 규칙을 먼저 따르게 된 사람.



그녀는 늘 조용했고, 온순했고, 착했다. 누구에게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거절이라는 단어는 입가에조차 머물지 않았다. 그 무릎처럼, 아무 흉도 없이 얌전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서글펐다. 무릎에 상처 하나 없이 자란 사람은, 자기만의 고통을 손으로 떼어낸 적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나는 내 무릎을 문지르며 생각했다. 그녀의 착함은 백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눌린 살처럼 퍼석한 감정의 딱지일지도 모른다.



무릎 위, 마른 피딱지 하나. 암갈색으로 굳은 그 조각엔 단지 상처만이 아닌, 눌린 비명이 박혀 있다. 바닥에 얼굴을 박던 순간의 멍한 충격, 눈물 대신 삼킨 욕지거리, 허벅지 사이로 스치듯 지나간 굴욕의 잔향까지, 모두 응고된 채 얹혀 있다. 표면은 유리조각처럼 단단하고, 가장자리는 조심스레 들어 올리면 금세 부스러질 듯 들떠 있다. 손끝으로 문지르면 사포처럼 까끌한 감촉이 느껴진다. 일상의 표면 아래 짓눌려 있던, 삐걱대는 시간의 잔해.

누구는 그걸 떼어내기까지 숨을 씹으며 망설인다. 망설임 끝에 손끝이 조심스레 접근한다. 숨을 멈추고, 때론 격정적으로. 마치 폭발 직전의 숨죽인 정적처럼, 조각은 침묵 속에서 몸을 웅크린다.


손끝이 닿는다. 굳은 가장자리, 들뜬 모서리. 보이지도 않을 만큼 얇은 그 틈을 따라 손톱을 밀어 넣는다. 처음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잠시 후, 조각은 미세하게 흔들리며 떠오른다. 피와 피부 사이의 접착면이 은밀하게, 서서히 벌어진다.



긴장감이 손끝에 고인다. 아프지는 않지만, 뭔가 따끔하다. 그 따끔거림은 경계의 통증, 현실과 기억의 경계를 가르는 느낌이다. 무릎 아래 말라붙은 그 조각은 단순한 상처의 껍질이 아니다. 그것은 사건의 종결이자, 또 다른 감각의 출입구다. 감당하지 못했던 시간의 잔해가 말라붙어 있던 것.



그 순간.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통증과 쾌감 사이의 아찔한 진동. 피딱지가 천천히, 마치 속살을 밀고 나오듯 떨어져 나갈 때의 감각은, 낡은 자물쇠가 삐걱이며 열릴 때의 그 '찰칵'보다도 더 음란하고 세밀하다. 거부하는 듯하면서도 받아들이는, 그 얇은 경계에서 손끝이 스며든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오직 혼자만이 알고 있는 비밀의 쾌락. 들키면 안 되는 흥분, 금기를 어긴 자만이 느끼는, 이상할 만큼 달콤한 짜릿함.



그 기묘한 감정은 단순히 피부의 껍질이 벗겨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 조각 안에 갇혀 있던 오래된 감정들—참았던 울음, 삼켜진 분노,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내디딘 땅이—이 함께 떨어져 나간다. 딱지가 분리되는 찰나, 정제된 감각의 입자들이 감정을 뚫고 올라온다. 그것은 감각이 아니라 거의 기억에 가까운 떨림. 언어 이전의 신호. 오래전 나의 일부가 지금의 나를 다시 찾는 듯한 진동.



바싹 마른 피딱지가 ‘툭’ 하고 중심부에서 들릴 때, 아주 미세하게 살결이 찢어진다. 아프다기보다, 처음 느껴보는 자극. 살짝 짜릿하고, 약간은 죄책감을 동반하는 쾌감. 그 짧은 감촉에 낯선 감정이 날카롭게 따라온다. 숨을 멈췄다가, 다시 고른다. 이건 단순한 ‘스릴’이 아니다. 그것보다 더 은밀하고, 촘촘히 채워진 감각. 설명할 수 없고, 다만 통과되는 감정의 미로.



떼어낸 자리엔 공기가 닿는다. 시리도록 민감한 피부가 그 접촉에 반응한다. 따끔하고, 서늘하다. 바로 그때, 시간이 무음으로 멈춘다. 어딘가에서 아주 오래된 음악이 울리고, 알 수 없는 풍경이 시야에 퍼진다. 그 순간, 나만이 아는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

떼어낸 조각은 손바닥 위에 있다. 마른 종잇장처럼 납작한, 갈라진 기억의 껍질.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가만히 들여다본다. 마치 무언가를 해독하듯. 손가락 사이에 끼워, 조용히 바람 속으로 날려 보낸다. 조각 너머의 이야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껍질을 내가 떼어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몸은 조금 가벼워진다.



세계는 그렇게, 천천히 이동한다. 껍질을 떼어낸 존재는 이전과 다르다. 원래의 위치로는 돌아갈 수 없다. 상처를 지나치려는 몸의 결심이 끝내 어떤 문을 열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확신. 내 안의 어떤 지형이 은밀히 변했다는 직감.

무릎엔 더 이상 딱지가 없다. 다 나은 줄 알았던 자리. 아주 가끔, 오래전에 떼어낸 그 감각이 다시 떠오른다. 공기 중의 냄새, 이마를 타고 흐르던 땀, 떨리던 손끝. 잊었다고 믿었던 것들이 살아난다. 그때의 나는 울음을 삼켰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그러나 무릎은 기억하고 있다.



깊은 밤, 불 꺼진 방 안. 혼자 앉은자리에서 내 손이 다시 무릎을 문지른다. 딱지는 없다. 통증도 없다. 다만 기억만 남아 있다. 오래전, 한 세계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사라졌다. 그것이 처음이었는지, 마지막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조용히 피딱지를 떼고 있다. 나이도, 이름도 없는 존재. 규칙이 정해지기 전의 순수한 감각. 아무도 보지 않는 틈에서, 작은 조각을 벗겨내며 또 한 번, 세계를 이동시키고 있다.

그 이동은 매번 다르지만, 언제나 확실하다. 세계는 그 조각 아래 숨어 있다. 떼어낸다는 건, 그것을 다시 꺼내겠다는 신호다. 그것은 어떤 존재만이 아는 통증이자, 어떤 시간만이 허락하는 개입. 그게 바로, 무릎의 피딱지를 떼는 진짜 이유다.



피딱지는 저절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떼어내는 자만이 알 수 있는, 감각의 문이다. 그 문이 열릴 때, 그 너머의 세계는 이전과는 조금 다르다.


지금, 그 다른 세계의 문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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