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름을 불리고 싶지 않았는지도 몰라.
꼬마 여름은 할머니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선 언제나 여름이 낯선 사람처럼 다뤄졌고, 무언가를 빠르게 흘려보내야 한다는 듯 사람들이 웃고 움직였다. 웃음은 짧고, 땀은 길게 흘렀으며, 방 안엔 늘 선풍기 소리만 남았다. 그 집엔 여름의 자리가 없었다.
도착하는 날, 고모는 현관 앞에서 발을 닦으라고 말했다. 마당엔 호박넝쿨이 엉켜 있었고, 빨랫줄엔 아직 물기 어린 속옷이 흔들렸다. 여름의 손엔 작고 바퀴가 닳은 캐리어 하나뿐이었다. 그것을 끌고 방의 가장자리, 책장이 떨어져 나간 헌 책상 옆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곳이 여름의 자리였다. 방의 가장자리, 가족의 바깥, 말의 경계 바깥. 여름을 부를 땐 다정한 척하는 목소리가 먼저였다.
여름아~
그러고 나면 이어지는 말은 항상 같았다.
아이고, 더워 죽겠네.
부른 이름은 금세 식고, 던져진 말은 바닥에 박힌 파리채 자국처럼 오래 남았다.
거실 TV는 늘 뉴스를 틀고 있었고, 어른들은 죽은 정치인의 이름을 반쯤 입속에 담은 채 씹었다. 말은 흐물흐물했고, 대화는 중간에 끊기기 일쑤였다. 누구도 완전히 대답하지 않았고, 누구도 완전히 들어주지 않았다.
여름은 낮엔 마루에 앉아 있었다. 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 맺혔다. 다들 흘린 땀 위에 앉아서 있었다
사촌 언니는 핸드폰만 들여다보았고, 사촌 동생은 대나무 칼을 들고 달렸다. 고모부는 리모컨을 손에 쥐고 채널을 돌렸다. 어디에도 여름을 위한 자막은 뜨지 않았다. 밤이면 거미들이 천장에서 내려왔다. 책상 밑에 발을 숨기면, 거미줄이 발목에 닿았다. 여름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불을 켜도, 잡아도, 아무도 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전화기는 식탁 한가운데 놓여 있었지만, 온종일 울리지 않았다. 작년 여름, 엄마는 여름을 두고 혼자 돌아갔다. 귀가 닫히는 소리를 듣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닫히는 소리는 항상 늦게 도착했다. 현관문이 닫히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 소리가 들렸다.
그때부터 여름은 말 없는 사람들의 어깨를 읽는 법을 배웠다. 할머니는 가끔 부엌에서 뭔가를 볶았다. 들기름 냄새가 났고, 그것은 오래된 냄비 냄새와 섞여 부엌을 검게 물들였다. 할머니는 여름에게 가끔 말을 걸었다. 국을 퍼주고, 밥을 푸고, 조용히 등을 돌렸다. 여름은 그 등에다 소리를 걸어보고 싶었지만, 소리는 등 뒤에선 미끄러졌다. 여름의 방은 따로 없었다. 이불을 깔면 방이 되었고, 개면 사라졌다. 모서리에 무릎을 대고 벽을 바라보면, 여름은 그때 조금 편안했다. 벽엔 오래된 도배 자국이 있었고, 누군가 이름을 연필로 쓰다 지운 자국이 있었다.
그 이름은 '하람'이었고, 여름은 그것이 누군지 몰랐다. 하람은 여름보다 오래전에 이 집을 다녀간 이름 같았다. 더 이상 불리지 않는 이름, 지워진 이름,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름.
어느 날 마당에 구멍이 생겼다.
고양이가 묻힌 자리였다. 고모는 아무 말 없이 구덩이를 팠고, 사촌 동생은 멀찌감치 서서 울지 않았다. 흙을 덮고 나자 여름은 고양이의 이름을 생각했다. 이름은 없었다. 이름 없이 살다가, 이름 없이 묻혔다.
밤마다 여름은 자는 척했다. 불이 꺼지고, 어른들의 웃음소리가 멀어지면 방은 더 이상 방이 아니게 되었다. 천장은 늘 기운이 없었다. 바람도 없었고, 벽엔 아무런 소리도 닿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손끝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눈을 감으면, 방 전체가 여름을 뒤덮었다
한 번은 혼잣말을 했다.
여름아
그 말은 금방 사라졌다. 마치 밖에서 누군가 부른 것처럼.
며칠 뒤, 편지가 왔다.
엄마의 글씨였다. '잘 지내지? 조금만 더 있으면 데리러 갈게.'
편지의 끝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이름을 따라가고 싶었다.
이름은 편지지 한 귀퉁이에서 가만히 누워 있었다. 편지를 뒤집어 만지면 종이의 감촉보다, 글씨의 떨림이 먼저 느껴졌다.
그날 밤, 여름은 처음으로 꿈을 꿨다.
작은 방이었다. 아주 작은 방. 그 방엔 선풍기도 없고, 파리채도 없고, 웃음도 없었다. 대신 책이 있었고, 창문이 있었다. 창밖엔 나무가 있었고, 나무엔 이름이 걸려 있었다. 그 이름은 여름이었다. 오래전부터 그 나무엔 이름이 매달려 있었던 것처럼.
아침이 되어도 그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여름은 혼자 마당에 나갔다. 손에 작은 돌 하나를 들고, 나무 근처의 흙을 살짝 파냈다.
그리고 돌을 묻으며 속으로 말했다.
여름의 방.
그 말을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여름은 밤에 눈을 감고서도 천장을 잃지 않았다. 방은 여전히 작고, 이름은 여전히 쉽게 사라졌지만, 여름은 더 이상 모서리에서 벽만 보지 않았다. 여름의 방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말없이
그러나 지워지지 않게.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