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잎을 다시 입지 않지만….

남긴 흔적, 팽개쳐진 주름들.

by 적적

가지 끝에 매달린 꽃은 자주 고개를 들게 만든다. 그들은 올려다보게 하기 위해 그렇게 피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개 들어 하늘까지 보게 만드는 꽃들, 하늘 아래 목소리도 없이.


능소화는 다르다. 시선을 위로 끌어올리는 대신 바닥을 보게 만든다. 그 꽃은 땅에 떨어질 때 가장 또렷하다. 오렌지빛이 햇살보다 먼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날, 그 곁을 지나치는 일은 무언가에 눌려 작아진 몸을 잠시 멈춰 세우는 일과 같다.


흙바닥 위에 펼쳐진 능소화의 꽃잎은 치마를 닮았다. 겉으로 보기엔 부드럽고 나풀거리지만, 그 안에는 감정의 자락이 숨겨져 있다. 엄지손가락보다 크고, 중지엔 어울리지 않으며, 약지의 굵기와 길이에만 꼭 들어맞는 어떤 존재. 작고 무방비하며, 세상과의 접촉이 아직 서툰 존재가 입었을 법한 옷. 그런 치마를 생각하게 만든다. 길모퉁이, 정류장 주변, 골목 어귀, 오래된 교회의 담장 밑 같은 곳에서 문득 발견되는 능소화는 아무렇게나 내팽개쳐 둔 형태로 발견된다.



그 치마들은 바람에 뒤집히거나 쓸려가거나 그대로 납작해져 있다. 말려 올라간 자락에는 무릎이 있었을 것이다. 무릎은 말한다. 머뭇거리거나 달리거나 숨거나. 모든 움직임은 무릎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능소화는 자신이 피어난 이유보다 떨어질 이유를 더 조용하게 설명한다. 누군가 벗어둔 치마처럼 바닥에 남겨진 꽃잎 하나는, 떠남의 서사를 고요하게 남긴다. 그건 절정보다 도망이 더 어울리는 이야기다.



꽃은 이유 없이 피지 않는다. 다만 그 이유는 보는 이에게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능소화가 벽을 타고 올라가, 장마가 지나가고, 그 끝에서 무심히 바닥으로 떨어질 때, 세상은 그 피어남보다 더 오랫동안 낙하의 풍경을 기억한다. 피어 있는 꽃은 현재지만, 떨어진 꽃은 과거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누군가와 마주쳤다가, 혹은 누군가를 외면하다가 벗어놓은 치마 같은 그 꽃잎은 더 이상 꽃이 아니다. 그것은 증거이자 단서다.

능소화는 피고 지는 방식이 유난스럽지 않다. 요란하지 않고, 스스로의 무게에 스러진다. 그 조용한 퇴장은 다른 꽃의 죽음보다 더 사람을 붙잡는다. 굳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암시한다. 누가 이 꽃잎을 벗어두고 어디로 갔는지, 어째서 그렇게 급하게 옷을 벗었는지, 왜 바람이 아닌 꽃잎이 먼저 자리를 떴는지.



오렌지빛은 쉽게 바래지지 않는다. 땅 위에 떨어진 지 오래된 능소화는 색을 간직한 채로 천천히 마른다. 마르면서도 본래의 결을 숨기지 않는다. 뻣뻣해진 치맛자락, 눌린 주름, 빛의 흔적. 그 모든 것이 사라지기보다는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곧 다시 돌아올 것처럼, 그 치마를 입고 이 거리를 다시 걸을 것처럼.



그러나 대부분 돌아오지 않는다. 벗어놓은 치마를 되찾기 위해 되돌아오는 이는 드물다. 그것은 어떤 결단과 동시에 발생한 실종이다. 그런 실종은 흔히 상실이 아닌 성장의 다른 이름이다. 치마를 벗고 어딘가로 떠난 이는 새로운 몸짓을 배우고 있을 것이다. 어제의 옷은 오늘의 걸음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능소화는 어김없이 치마를 벗고 떠난다.



계절은 재현되지 않는다. 다만 유사하게 흘러갈 뿐이다. 그리하여 매년 발견되는 능소화의 치마는, 어쩌면 같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들이다. 매번 처음처럼 벗어놓는, 다른 무릎, 다른 발목, 다른 떨림. 그것들이 같은 벽을 타고 올라가 같은 방식으로 떨어질 뿐, 그 안에 담긴 급함과 설렘은 매번 다르다.

내팽개쳐진 치마, 재촉하는 마음, 잊힌 약속, 예정된 이별. 능소화는 그 모든 감정을 발설하지 않은 채로 두고 간다. 꽃잎이 아니라 감정의 덩어리처럼 바닥에 남겨진다. 가끔은 빗물에 젖어 무게를 얻기도 하고, 더러워지거나 찢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무엇도 그 치마가 처음 벗겨졌을 때의 의미를 바꾸지는 않는다. 그것은 여전히, 어떤 여자의 첫 번째 실종이다.



길가에 쌓인 능소화의 꽃잎은 정오보다 새벽에 더 잘 어울린다. 그건 불이 꺼진 무대의 커튼 같기도 하고, 공연 후의 텅 빈 객석 같기도 하다.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 남겨진 한 벌의 옷. 그것은 노래보다 침묵을 말한다. 무대보다 무대를 떠난 배우처럼. 능소화의 치마는 그래서 더욱 선명하다. 비어 있는 자리만큼 명확한 존재는 없다.



능소화는 바닥에 누워 있다. 피어 있는 꽃은 경계의 의미를 띤다. 그러나 지고 나면, 그 꽃은 경계를 지우고, 벗어놓은 치마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무수히 갈라진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종종걸음으로 달리다가 어딘가에 걸려 넘어진 순간, 치마가 들렸고 웃음이 터졌으며, 그 틈에 세상이 틈입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치마를 벗기 위해 치마를 입었던 것일 수도 있다. 벗기 위한 복장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태도의 선언이다. 능소화는 벗기 위해 피어난다. 벽을 타고 오르고 햇빛을 받아 물이 오르고, 그 결과물은 마침내 그 벗어남에 있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피어나는 것보다 벗어나는 것이 더 크고 중요할 수도 있다. 어떤 생은 시작보다 끝에서 더 많은 의미를 품는다.



그래서 능소화는 떨어질 때 절정을 맞이한다. 그것은 추락이 아닌 의도된 이탈이다. 꽃잎 하나하나가 말한다. 다녀올게,라는 인사를 하지 않은 채, 가버리는 것에 대하여.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굳이 설명하지 않은 채로 사라지는 방식에 대하여.



능소화의 치마는 기억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스쳐 가길 바란다. 문득 마주쳐서, 잠시 멈춰 서서, 그 오렌지빛을 응시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누군가의 것이었음을 추측하게 만들고, 어쩌면 그 자리에 서서 아직 남아 있는 온기를 느끼게 한다. 치마를 입었던 존재는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상상하게 한다. 상상은 감각을 깨운다.



바닥에 깔린 능소화 위를 지나가는 걸음들. 그 위로 바람이 스치고, 그림자가 진다. 누군가는 쓸어버리고, 누군가는 피해 간다. 그러나 그것을 다시 주워 입는 일은 없다. 능소화는 벗겨진 채로 그대로 남겨진다. 그것이 그 꽃의 방식이다. 스스로를 흩뜨리고, 흩뜨려진 상태로 의미를 남기고, 의미마저도 조용히 빛바래게 한다.

그 치마는 결국,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다른 식으로 다시 쓰인다. 능소화는 옷이 아니라 기억이고, 향기이자 감정의 파편이다. 어느 날, 전혀 다른 계절의 한 모퉁이에서 그 색을 다시 볼 때,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누구의 것이었는지를. 혹은 누구의 것이 아니었는지를.



능소화는 다 입고 있던 것들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그것은 꽃이 아닌 사건이다. 지나가던 계절의 붕괴, 몸에 붙어 있던 명확한 무늬의 이탈,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다른 질서로의 이행이다. 다시 입혀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바닥에 옷을 남긴 채 떠나는 방식. 그곳에 남은 것은 부재가 아니라 흔적이다. 어지럽고 어설프게 벗어놓은 치마 한 벌이, 도무지 끝나지 않는 한 장면처럼 계절의 구석에 남겨진다.



바람이 스쳐도, 빗방울이 떨어져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거기 있었다는 사실이, 그 자리에 아직 눌려 있기 때문이다. 다시 피지 않아도 좋다. 다시 입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 치마가 있었던 자리를 떠올릴 수 있다면, 능소화는 그걸로 충분하다. 이름 없이도 인상은 남는다. 무대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장면처럼,

그 집 앞, 기억 속의 능소화를 찾아서 온 세상을 헤맨 듯이.


그 꽃은 떨어진 뒤에야 자신을 완성한다. 말하지 않고, 남기지 않고, 끝까지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능소화는 피는 순간보다, 지는 방식으로 더 오래 기억된다. 마지막 자락이 무너지는 찰나, 세상은 조용히 접힌다. 접힌 채 남겨진 치마의 주름 하나가, 언젠가 누군가의 감정에 고요히 달라붙는다. 설명 없이 존재하는 것들만이, 설명을 넘어선다. 능소화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지며, 모든 것을 말해버린다.



능소화는 매년 같은 방식으로 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지지도 않는다. 다만 그것을 보는 눈이, 매해 조금씩 변할 뿐이다. 치마를 본다는 것, 그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 안쪽을 건드리는 일이다. 어떤 감정은 벗겨진 옷에서 시작된다. 어떤 서사는 사라진 존재에서 비롯된다.



능소화는 피는 꽃이 아니라.



벗는 꽃이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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