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숨는다.

기억하기 위해 부재하는 방식으로

by 적적

길모퉁이에서 사라진 고양이처럼, 감정은 예고 없이 사라진다. 어딘가로 스며들어 흔적을 감추고, 한참 후에서야 그 존재가 부재로서만 인식된다. 감정은 늘 그 자리에 있는 듯하면서도, 막상 찾으려 하면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숨어 있다. 혹은, 숨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스스로를 잊고 남겨진 채 그 자리에 멈춰 있다.


감정은 선명한 언어로 정의되지 않는다. 기쁨, 분노, 슬픔, 혐오, 불안 따위의 단어들은 마치 다섯 개의 납작한 구멍처럼 제 아무리 정교하게 뚫려 있어도, 그 사이로는 자주 넘쳐흐른다. 감정은 형태가 없다. 분류되길 거부하고, 체계를 비웃으며, 임의로 변형되고 흘러 다닌다. 눈물이 슬픔일까. 웃음이 기쁨일까. 고개를 끄덕이는 몸짓이 수긍인지 체념인지, 말없이 돌아선 등이 증오인지 보호인지. 감정은 정체를 감춘다. 그래서 감정은 숨바꼭질을 한다.


감정은 발화 이전에 존재한다. 언어가 오기 전, 침묵 속에서 자라난다. 어떤 감정은 수년 전, 지하철 계단을 오르다가 마주친 낯선 이의 옅은 미소에서 자라났다. 혹은, 공사장 소음이 잠시 멈춘 오후의 적막한 시간 속에, 혹은 입술 끝에 맺혔다 사라진 말 한 조각 속에서 태어난다. 감정은 그렇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사람이라는 숲에 스며들어 자란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밤 갑작스레 그 얼굴을 드러낸다. 설명할 수 없는 불면으로, 이유 없는 심장의 고동으로, 혹은 전혀 엉뚱한 타인의 말 한마디에 눈물이 터지는 방식으로.



때로 감정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감정은 퇴색하지 않는다. 오래전 읽은 편지의 문장은 흐릿해져도, 그 문장을 읽을 때 느꼈던 울렁거림은 여전히 손등 아래 얇은 혈관처럼 선명하다. 감정은 물질적이면서도 비물질적이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온몸에 남는다. 심지어 그것이 그 감정이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살아내는 경우도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편함, 설명되지 않는 거리감, 반복되는 실수, 불안한 침묵의 습관. 그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감정일지도 모른다. 혹은, 숨었다는 사실조차 잊힌 감정의 마지막 조각이다.


어떤 감정은 집을 떠난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흔히 그것을 치유라 부르지만, 실상은 종종 단절이다. 감정은 입구 없는 감옥이다. 닫힌 감정은 썩는다. 무시된 감정은 형태를 바꿔 타인을 해친다. 억압된 감정은 병이 된다. 그러나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는 스스로의 감정을 죽인다. 그것이 이기심인지 자기 보호인지, 그것조차 판단할 수 없는 상태로. 감정의 죽음은 조용하다. 비명도 없다. 장례도 없다. 단지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끝났다는 냄새만이 감도는 정도다.

가장 오래 숨어 있는 감정은 대개 사랑이다. 아니, 사랑이라고 명명되지 못한 감정이다. 명확하게 전달되지 못한 감정은 공간에 머무른다. 사라지지 않은 채, 계속해서 그 자리를 돈다. 오래전 이별의 말속에도, 사라지지 않은 감정이 있다. 미안하다는 말은 미안하지 않다는 뜻일 수 있다. 괜찮다는 말은 괜찮지 않다는 절규일 수 있다. 감정은 말보다 느리다. 말이 지나간 후에도 감정은 거기에 남는다. 그리고 잊힌 채로,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킨다.



문득,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선 순간, 누군가의 체취와 닮은 향이 스친다. 오래전 누군가가 웃으며 건넨 문장 하나가, 갑자기 기억에서 솟구친다. 마음속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열이 번진다. 그것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던 감정이다. 발화되지 못한 감정, 목적지를 잃은 감정, 퇴장하지 못한 감정. 스스로 숨은 채, 혹은 숨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아직도 거기 있는 감정이다.



사람은 자주 자신의 감정에 무지하다. 감정은 사전적으로 습득되지 않는다. 타인의 감정을 해석하는 훈련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다. 감정은 스스로를 속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경험이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는 순간, 감정은 숨어든다. 스스로 용서했다고 말하는 순간, 감정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래서 감정은 의식이 꺼진 밤, 혹은 방어가 무너진 새벽에야 슬며시 얼굴을 드러낸다.



아이들은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는다. 그러나 사회적 동화는 감정을 훈련시킨다. 감정은 예절과 역할, 기대와 체면 속에서 수련된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어른스러운 일이라 배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감정을 숨기는 법만 배운다. 감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는 드러낼 수 없게 된 것이다. 숨은 감정은 다른 방식으로 고개를 든다. 갑작스러운 피로, 반복되는 실수, 이유 없는 분노로.



누군가는 감정을 전시한다. 과잉된 감정은 감정을 모욕한다. 진짜 감정은 자주 미세하다. 정교하게 휘어진 입꼬리, 한 박자 늦은 대답, 문장과 문장 사이의 침묵. 그곳에 감정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정은 자주 부재 속에 존재한다.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감정, 말해졌어야 할 감정이 말해지지 않았을 때의 공백. 감정은 그 틈 사이에서 살아 숨 쉰다.



숨바꼭질은 끝나는 게임이다. 그러나 감정의 숨바꼭질은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찾기를 멈추고, 누군가는 찾으려 하지 않으며, 누군가는 감정이 숨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정은 그 자리에 남는다. 발견되기 전까지, 그 존재조차 부정당한 채. 감정은 숨었고, 감정은 아직 거기에 있다.



언젠가 누구도 찾지 않은 감정이 우연히 발견될 때, 그것은 종종 잊고 있었던 자신의 일부와 마주하는 일과 같다. 눈을 감고 들여다본 어떤 장면이, 사실은 오래전 감정의 흔적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감정은 떠난 것이 아니라, 단지 스스로를 감추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발견되는 순간,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라진 감정은 없다. 모든 감정은 단지 어디엔가 숨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그 자리는 기억이 아니며, 마음도 아니다. 그것은 공기 중에 오래 머물다 잊힌 목소리이며, 감정이 머물다 간 의자의 온기 같은 것이다. 감정은 물질이 아니라 흔적이다. 그러나 그 흔적은 진흙 속 뼈처럼 분명하다. 시간은 그것을 지우지 못하고, 의식은 그 존재를 완전히 외면하지 못한다. 그것은 언젠가 돌아올 비명처럼, 우연을 가장한 질서처럼,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감정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만 숨어 있지 않는다. 공간에 남고, 사물에 스며들고, 관계의 기류 속에서 움직인다.


때로는 눈빛 하나, 냄새 하나, 손끝에 닿는 감촉 하나가 감정을 불러낸다. 이미 오래전 끝났다고 믿었던 감정이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나타나, 자신을 알아보라고, 아직도 거기 있다고 말한다. 아무 말도 없이.


감정은 언어가 도달하지 못한 땅에서 태어나, 언어가 미치지 못하는 방식으로 피어난다. 그것은 설명되지 않고, 단정되지 않으며, 정복되지 않는다. 감정은 명확해지기를 거부한다. 다만 존재하기를 원한다. 자신이 한때 분명히 있었다는 사실만을 기억되길 바란다. 그래서 감정은 숨는다. 숨는 방식으로 말하고, 숨어 있는 것으로 저항한다. 그리고 그 침묵과 부재 속에서, 오히려 가장 분명한 신호를 보낸다. 그것은 눈에 띄지 않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이름 붙여지지 않은 장면이다. 마치 도달하지 못한 안부처럼, 보내지 않은 편지처럼, 끝내 입에 담지 못한 진심처럼. 감정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누구도 보지 않더라도, 누구도 찾지 않더라도, 거기 있다. 그리고 언젠가, 모든 감정은 반드시 발견된다. 그 감정이 누군가의 삶을 통과해 나아갈 운명이라면, 언젠가 그 사람의 등을 스치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 순간까지, 감정은 스스로를 감춘 채, 완전한 침묵으로.



자기 자신을 증명한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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