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무덤.

되돌릴 수 없음이 만드는 무게.

by 적적

창문 유리에 매달린 빗방울들은 처음엔 단순히 무게를 견디는 중인 것처럼 보인다. 표면 장력이 사소한 의지처럼 투명하게 번들거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안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생긴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심장이 천천히 박동을 시작하듯, 빗방울 내부에 작은 결이 번져간다. 그 결은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말, 숨겨진 표정, 아직 소리를 얻지 못한 울음과 비슷하다.


창밖의 하늘은 이미 오래전부터 회색이었다. 그러나 그 회색은 죽음의 색이 아니라 부화의 색이었다. 빗방울 속에서 알 수 없는 유기체가 깨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물질이 아니라 감정의 번데기였다. 이 번데기는 아직 껍질을 뚫을 힘을 갖지 못했다. 대신, 체온도 없는 유리창에 기대어 조용히 발육했다.



방 안의 공기는 느리게 흐른다. 가구들은 자신의 그림자 안으로 조금씩 침잠한다. 책장은 먼지를 잉태한 채 숨죽여 서 있고, 벽지는 미세하게 갈라진 틈을 통해 오래된 시간의 냄새를 내뿜는다. 빗방울이 창문을 타고 내려오다가 다른 빗방울과 합쳐질 때, 무언가 완성되는 듯한 착각이 든다. 합쳐진다는 건 단순한 양의 증가가 아니라, 기억과 기억이 겹쳐져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행위다. 두 방울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 각자의 투명함은 새로운 모양을 얻게 된다. 그 모양은 오래된 꿈의 형상과 닮았다.



비의 날에는 소리의 결이 다르다.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 유리에 부딪히는 소리, 먼 곳에서 울리는 천둥의 낮은 호흡. 이 모든 소리가 한데 엮여, 방 안에 하나의 거대한 고치가 형성된다. 사람들은 그 고치를 눈치채지 못한 채 움직인다. 그러나 고치는 확실히 존재한다. 이 고치는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를 가르는 경계이며, 빗방울들의 번데기가 안에서 자라난다.



어떤 번데기는 부화해 나비가 되지 않는다. 날개를 얻지 못한 채, 오히려 더 무거운 형태로 변한다. 그것은 조용히 바닥에 내려앉아, 돌처럼 굳은 채 세월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나 모든 번데기가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몇몇은 깨질 때 섬세한 빛을 발산하며 공중으로 흩어진다. 그 빛은 말로는 옮길 수 없는 감정의 색채를 띤다. 불안과 설렘이 동시에 머무는, 오래된 첫사랑의 목소리 같은 색이다.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은 언제나 중력을 거슬러 머무르려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버틴다. 마치 어떤 사랑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끝을 미루려 하는 마음처럼. 물방울이 결국 흘러내리는 순간, 그 안에서 자라던 번데기는 결말을 맞는다. 어떤 번데기는 깃털처럼 가볍게, 어떤 번데기는 돌덩이처럼 무겁게 떨어진다. 떨어진 자리에는 미세한 자국이 남는다. 손가락으로 문질러도 사라지지 않는 얼룩. 그 얼룩은 마치 오래된 사과 껍질 속에 남은 씨앗처럼, 다른 날의 비가 오기를 기다린다.



방 안의 시계는 고장 난 것처럼 느리게 움직인다. 초침이 한 칸 움직일 때마다, 빗방울 속 번데기는 조금 더 자란다. 그 자람은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공기의 밀도가 변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숨을 들이마실 때, 공기가 조금 더 무거워진다. 그 무게는 기억의 무게와 닮아 있다. 시간이 지나도 가벼워지지 않는 감정이 있다. 그것은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더 깊어지고, 때로는 더 차갑게 굳는다.



어느 날, 창가에 앉아 있던 고양이가 빗방울을 바라본다. 고양이의 눈동자는 유리 너머의 세계와 방 안의 세계를 동시에 비춘다. 그 눈 속에서 번데기들이 뒤척인다. 마치 감정이 다른 감정을 자극해 깨어나는 순간처럼. 고양이는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갑자기 창틀을 떠나간다. 남겨진 빗방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방 안의 공기는 이전과 달라져 있다. 떠난다는 행위가 남기는 흔적은 때때로 존재 그 자체보다 깊다.



비가 멎으면 번데기들의 일부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습기가 사라진 유리 위에서 그들은 마른 껍질처럼 갈라지고, 투명함을 잃는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햇빛이 들어오는 오후, 그 갈라진 자리에 미세한 무늬가 드러난다. 그 무늬는 마치 오래된 편지의 잉크처럼 번져 있다. 읽을 수 없지만, 의미는 존재한다. 의미가 의미로서 존재하지 않을 때조차, 그것은 여전히 누군가의 심장을 건드릴 수 있다.



밤이 되면 창밖의 어둠이 유리를 덮는다. 빗방울은 더 이상 빛을 반사하지 못하고, 번데기의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부화는 계속된다.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장은 때로 가장 강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동안,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날개를 준비한다. 날개는 빛을 보지 않아도 자란다. 빛은 단지 출발을 알릴 뿐, 성장은 그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어 있다.



다음 날 아침, 창문에는 더 이상 어제의 빗방울이 없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속의 미세한 변화다.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문득, 이유 없이 가슴이 무거워지거나, 혹은 가볍게 들뜨기도 한다. 그것은 전날의 번데기가 이미 어딘가에서 날아올랐기 때문이다.



빗방울이 창가에 붙어 있을 때, 그것은 단순히 떨어질 시간을 기다리는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부화하는 알이며, 마음속의 번데기다. 그 번데기는 누군가의 숨결, 시선, 혹은 지나가는 바람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언젠가,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거나, 혹은 영원히 깨지지 않은 채 투명한 무덤이 된다.



모든 빗방울은 떨어진다. 그러나 모든 번데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번데기는 떨어진 자리에서 자라난다. 보이지 않는 날개를 품고, 언젠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날아오른다. 그 순간, 방 안의 공기는 한순간에 바뀐다. 아무 말도 없지만, 모든 것이 달라져 있다. 그것이 빗방울이 남기는 진짜 흔적이다.


모든 빗방울은 무심하게 떨어진다. 그 떨어짐에는 서사도, 감정도 없다. 그러나 그 속에서 자라난 번데기는 인간의 기억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번데기는 무게가 없다. 그럼에도 그것은 사람의 시간을 기울게 한다. 그것은 사랑처럼, 끝난 순간에야 비로소 형체를 갖는다. 살아 있는 동안 사랑은 투명하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자라는 동안,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어느 날 문득, 한 사람의 몸짓이나 목소리가 변하는 것을 보고서야 알게 된다. 사랑이 이미 다른 형태로 부화했음을.



번데기는 완성 그 자체보다 완성을 기다리는 동안의 무게로 존재한다. 기다림은 한 사람의 내면을 어둡게도, 환하게도 만든다. 어둠과 환함은 순환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겹친다. 낮과 밤이 완벽히 나뉘지 않는 새벽처럼. 번데기의 날개는 부화와 동시에 빛을 향해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빛이 없는 곳으로, 아직 열리지 않은 문 속으로 스며든다. 그것이 완전히 드러나는 순간은, 이미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다.



창가에서 사라진 빗방울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부재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를 위한 비워짐이다. 인간은 종종 잃는 것을 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잃음은 끝이 아니라 번역 불가능한 변형의 시작이다. 번데기는 한 번 부화하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 되돌릴 수 없음이 바로 존재의 진짜 무게다. 결국, 빗방울이 남기는 것은 물방울의 흔적이 아니라



한 존재가 결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강인한 날갯짓이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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