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 정서를 파고들어 살갗이 돋는 순간.
아침 공기가 얇은 얼음막처럼 피부를 덮는 순간, 숨소리가 유리 위에 맺힌 입김처럼 가볍게 사라졌다. 가로수 잎사귀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햇빛은 여전히 희끄무레했으나, 그 안에는 경계가 숨어 있었다. 뺨을 스치는 공기는 서늘했고, 그 속에 스며든 기척은 쓸쓸했다. 두 감정이 동시에 느껴질 때, 세계는 한 겹 더 깊어진다. 그것은 단순한 날씨의 변화나 기분의 차원이 아니었다. 온도와 정서가 맞물린 채, 어느 한쪽도 완전히 해소되지 못하는 심연이었다.
서늘함은 대개 피부의 감각에서 시작된다. 기온이 내려가면 근육은 자동으로 수축하고, 팔뚝의 털이 가늘게 곤두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공기가 차가운 것 이상으로, 존재 자체가 스산해지는 때다. 쓸쓸함은 반대로 심리의 결에서 출발한다. 어떤 부재나 결핍이 마음 한가운데 구멍을 내고, 그 구멍의 깊이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그런데 서늘함과 쓸쓸함이 만나면, 감각과 정서가 한 몸이 된다. 차가움이 마음을 파고들고, 마음의 빈자리가 차갑게 얼어붙는다.
도심의 한 모퉁이에 버려진 공터에는, 여름이 남긴 녹색의 흔적이 이미 바래 있었다. 금이 간 콘크리트 틈새로 자라난 풀잎들이 바람에 눕고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위로 작은 종이 조각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아무도 줍지 않는 종이 한 장이, 도시의 무심함 속에서 오래도록 흘러 다니고 있었다. 그 종이가 구르는 방향을 바꾸는 것은 오직 바람뿐이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들, 그리고 그 손길의 부재가 만든 공백이야말로 쓸쓸함의 원형에 가깝다.
서늘함의 기원은 더 복잡하다. 그것은 단순한 냉기나 그림자에만 있지 않다. 예기치 않은 침묵 속에도 서늘함은 있다. 한동안 이어지던 대화가 돌연 끊기고, 서로의 시선이 어딘가 허공을 떠돌 때, 그 틈새에서 서늘함이 스며든다. 이때의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이 되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격리한다. 말의 부재가 단순히 고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요 속에서 차가운 틈을 만든다.
쓸쓸함은 종종 시간과 얽혀 있다. 오래된 물건이 그렇다. 벽에 걸린 시계가 멈춘 채로 방치된 방은, 단지 시간을 잃은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부재가 각인된 풍경이다. 그 멈춘 순간에, 살았던 기척과 숨소리가 함께 봉인되어 있다. 서늘함은 그 봉인된 시간 속을 걸을 때 찾아온다. 손가락 끝으로 시계의 유리를 스쳐도, 그 안의 시간은 깨어나지 않는다. 고요가 아니라 정지. 그 정지 속에서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는다.
서늘함과 쓸쓸함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계단이 놓여 있다. 첫 번째 계단은 눈으로 본 풍경이 만든다. 두 번째 계단은 귀로 들은 소리, 혹은 들리지 않는 소리에서 시작된다. 세 번째 계단은 몸의 감각이 개입하며, 네 번째 계단에 이르면 기억이 발화한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무의식적이다. 한쪽 끝에서는 서늘함이, 다른 끝에서는 쓸쓸함이 기다린다. 그러나 이 둘은 계단의 양 끝이 아니라, 사실 같은 층위에서 서로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바닷가 마을의 가을울은 이 심연의 전형을 보여준다. 파도 소리는 여전히 밀려오지만, 그 울림은 비어 있는 골목길을 더 깊게 메운다. 바람은 바다에서 불어와 소금기와 습기를 함께 실어 나른다. 피부에 스며든 바닷바람은 단순히 차갑지 않다. 뼛속까지 가닿는 그 감각은, 어쩐지 오래된 작별 인사처럼 느껴진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닻은 녹이 슬어 있었다. 배를 기다리는 사람도, 배에서 내리는 사람도 없는 풍경. 그 고요 속에서 바다는 끝없이 말을 건네지만, 들리는 건 그 속의 공허뿐이다.
도시의 가을은 또 다르다. 지하철역의 출입구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발소리는 급하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건 활기보다 냉기다. 모래알 같은 발걸음들이 서로 부딪히지만, 시선은 결코 맞물리지 않는다. 표정 없는 얼굴들이 서로를 스쳐 지나가고, 그 마찰에서 나오는 열은 오래가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의 간격은 몇 센티미터에 불과하지만, 그 틈은 얼음보다 더 차갑다.
서늘함과 쓸쓸함이 맞물리는 순간은, 종종 언어의 경계에서 일어난다. 어떤 말은 발화되는 순간부터 이미 차갑다. 의미보다 먼저 온도와 질감이 전해진다. 반대로 어떤 말은 발화되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가,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울린다. 발설되지 않은 말들이 쌓이는 곳에는, 어쩐지 한기가 감돈다. 그 한기는 직접적인 상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말해지지 않은 것들의 무게에서 비롯된다.
심연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서늘함과 쓸쓸함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작동하며, 한쪽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다른 쪽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둘이 겹쳐지는 지점에서는 시간조차 무뎌진다. 분침은 여전히 움직이지만, 그 움직임이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 공기 속의 먼지가 천천히 가라앉듯, 감정은 가라앉다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문다.
한때 생생했던 모든 색은 빛을 잃고, 한때 따뜻했던 모든 소리는 멀어진다. 남은 것은 감각의 잔향이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불현듯 되살아난다. 서늘함과 쓸쓸함 사이의 심연은 바로 그 잔향 속에서 형성된다. 피부로 느낀 냉기와 마음속 결핍이 서로를 증폭시키며, 그 속에서 세계는 낯설게 변한다. 낯섦은 곧 깊이이며, 깊이는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이 심연을 건너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다만 건너는 동안, 그 감각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발밑의 바닥이 단단한지, 혹은 부드러운 모래인지 알 수 없는 길을 걷는 것과 같다. 걸음을 멈추면 서늘함이, 계속 걸으면 쓸쓸함이 따라온다. 그 어느 쪽에서도 완전한 안도는 없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만, 서늘함과 쓸쓸함은 서로를 알아본다. 그리고 그 인식이야말로, 이 심연이 품은 가장 은밀한 온도다.
그 심연의 가장자리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빛이 머물러 있다. 그것은 낮의 빛도, 밤의 빛도 아닌, 경계의 빛이다. 손끝으로 잡으려 하면 곧바로 흩어지고, 눈으로 오래 바라보면 그 자리에 없던 그림자가 따라온다. 서늘함은 그 그림자의 온도를 닮았고, 쓸쓸함은 그 그림자의 모양을 닮았다. 둘은 겹치면서도 결코 하나가 되지 않는다. 한 겹의 얇은 막이 그 사이를 가르고, 그 막은 바람이 스치면 물결처럼 흔들린다. 바람이 멎으면 다시 고요해지지만, 그 고요 속에는 미세한 떨림이 남는다.
사람의 눈은 그 떨림을 잘 알아채지 못하지만, 몸은 먼저 반응한다. 심장이 잠시 속도를 늦추고, 숨이 길어진다. 그 순간, 심연은 더 이상 멀리 있지 않다. 발밑의 그림자가 조금 길어지는 것만으로도, 그곳은 문처럼 열리고, 안쪽의 공기는 저마다의 냄새와 색을 품고 있다. 어떤 냄새는 오래된 종이처럼 바스러지고, 어떤 색은 오래된 유리처럼 흐려진다. 그러나 모두가 서늘하고, 모두가 쓸쓸하다.
그 두 감각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얇아져, 마침내 빛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결로 변한다. 심연은 그 결을 따라 흘러가며, 존재의 가장 깊은 틈새에 스며든다. 언젠가, 그 틈새를 다시 마주하는 날이 온다 해도, 서늘함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쓸쓸함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그때는, 그 둘이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의 그림자였음을, 그리고 그 그림자가 심연을 이루는 유일한 모양이었음을.
부드럽지만 냉정하게 깨닫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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