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미묘케 02화

귀가먼저 알아차리는....

매미와 귀뚜라미 사이, 3분미만의 계절

by 적적

아침부터 매미가 울었다. 아니, 눈을 뜨기 전부터 그 울음이 방 안 가득 들어와 있었다. 꿈속에서조차 그 소리는 단단한 껍질을 두드리는 듯 귀를 울렸다. 간밤에 들었던 귀뚜라미 소리가, 매미의 울음이 잠시 쉬는 간극에 부드럽게 걸려 있었다. 그 간극은 얇았다. 숨 한 번 길게 들이쉬면 사라질 만큼 가벼웠지만, 그 짧은 순간에만 존재하는, 다른 어떤 시간에도 닿지 않는 틈이었다.


그 소리가 실제였는지, 아니면 뇌가 만들어낸 잔향이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계절의 환청이라 해도 좋았다. 여름과 가을이 서로의 피부를 스치듯 맞닿는 순간, 귀뚜라미와 매미는 같은 공기를 나누었고, 그 공기 속에 묻은 온도를 귀가 먼저 알아차렸다. 낮과 밤이 소리로 포개지는 계절, 그 틈이 바로 지금이었다.



한때는 이런 소리를 밀어내듯 살았다. 귀를 덮는 대형 헤드폰, 숨을 막는 비트, 도시의 소음을 잊게 하는 음량. 걷는 동안 모든 계절은 음악의 리듬에 맞춰 조각나고, 그 조각들은 목적지도 없이 흩어졌다. 그러나 요즘은 소리에 몸을 맡긴다. 방음벽을 허물고, 계절이 쏟아져 들어오게 둔다. 도시의 한편에서, 수건 한 장 두른 채 풍욕을 하는 사람처럼, 무방비한 채로.



매미의 울음은 뜨겁다. 그러나 그 뜨거움은 불쾌함이 아니라, 오래 묵힌 차를 마실 때처럼 혀끝을 덮는 열감에 가깝다. 그 속에서 귀뚜라미의 울음은 서늘하다. 여름 끝자락의 저녁, 목덜미에 스치는 첫 바람처럼. 뜨거움과 서늘함이 번갈아 귀를 적신다. 그 사이에서만 들리는 미묘한 공명, 그것이 계절의 숨결이었다.



도시의 빌딩 숲 사이로 바람이 드나드는 길목이 있다. 그곳에는 매미 소리가 벽에 부딪혀 울리고, 골목 어귀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달아오른 콘크리트를 식힌다. 같은 하늘 아래 있지만, 서로 닿을 수 없는 두 소리가, 인간의 청각 속에서만 잠시 만난다. 그 만남은 현실이 아니라 환영 같아, 손을 뻗으면 금세 흩어진다. 그러나 그 순간이야말로 계절의 무게가 가장 묵직해진다.



길 위에 떨어진 은행 잎이 아직 초록일 때, 한쪽 모서리만이 노랗게 물든다.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는 것들이 있다. 계절은 결코 한쪽으로만 기울어 존재하지 않는다.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은 동시에 진행되고, 그 교차점이야말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가장 밀도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알아보는 감각은, 소리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흔히 계절을 색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더 오래 남는 것은 소리다. 첫 장마가 퍼붓는 소리, 겨울 골목에 퍼지는 장작 타는 냄새와 함께 들려오는 불꽃의 파직임, 봄 새벽에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의 울음. 그 소리는 계절의 표면이 아니라 속살에 가깝다. 손으로 만질 수 없지만, 귀로는 더 깊이 파고든다. 그리고 가장 섬세한 소리는 계절의 틈, 즉 변화의 순간에 있다.



틈은 언제나 짧다. 그래서 귀는 자주 놓친다. 매미가 우는 한낮, 그 울음이 사라지는 0.5초의 정적, 그 사이에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한다. 낮과 밤의 교대가 청각 속에서 이뤄진다. 그런 틈을 듣는 순간, 세계는 더 이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지 않는다. 한쪽은 식고, 한쪽은 데워진다.



이 도시는 거대한 스피커 같다. 사람들의 발자국, 차량의 브레이크음, 에스프레소 머신의 증기, 광고 방송, 멀리서 들려오는 공사 소리. 그 사이를 파고드는 자연의 소리는 더 선명하게 들린다. 소음 속에서 오히려 더 분명해지는 작은 소리. 틈이 그렇다. 소리의 겹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순간, 그 틈은 계절의 얼굴이 된다.

해가 기울 때, 매미 소리는 급격히 줄어든다. 울음의 끝은 날카롭게 잘리지 않고, 서서히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 빈자리에 귀뚜라미가 들어온다. 그러나 귀뚜라미는 절대 매미의 볼륨을 흉내내지 않는다. 그 울음은 늘 낮고 단정하다. 마치 이미 계절의 뒷면에 서 있는 것처럼, 결코 앞서 나가지 않는다. 그 절제가 틈을 만든다.

어떤 계절은 색보다 소리로 먼저 시작한다. 아직 나뭇잎은 초록인데, 어느 날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한다. 그 순간 여름은 이미 절반쯤 물러난 것이다. 반대로, 매미가 울기 시작하는 날은 달력의 여름보다 훨씬 이르다. 소리는 계절을 당기거나 미룬다. 귀가 먼저 계절을 알아차리고, 눈은 한참 뒤에 따라온다.



사람의 감각은 모두 시간차를 갖는다. 냄새가 가장 먼저 남고, 소리는 그 다음에 머문다. 시각은 가장 빠르게 사라진다. 그래서 틈의 계절을 기억하려면 눈보다 귀를 믿어야 한다. 귀가 포착한 0.5초의 정적이, 눈이 보지 못한 계절의 교차를 증언한다.



창문을 열어둔 채 잠이 든다. 밤이 깊어지면 매미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대신 귀뚜라미가 방 안을 채운다. 그러나 새벽, 해가 떠오르기 직전, 매미는 다시 운다. 그때 귀뚜라미는 물러난다. 서로의 울음은 절대 겹치지 않는다. 계절의 틈은 공존이 아니라 교대다. 그러나 그 교대가 이뤄지는 찰나, 두 소리는 겹쳐 들린다. 그것이 환청이든, 실제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순간 귀가 계절을 붙잡는다는 것이다.



모든 틈에는 감정이 깃든다. 매미에서 귀뚜라미로, 뜨거움에서 서늘함으로, 낮에서 밤으로, 청춘에서 노년으로. 전환은 언제나 소리를 동반한다. 누군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채 지나가고, 누군가는 평생 그 소리를 잊지 못한다.



그 계절은 틈 사이에 있다. 그 틈은 손끝으로 만질 수 없지만, 한 번 포착되면 그 존재감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매미의 마지막 울음과 귀뚜라미의 첫 울음이 얇게 겹쳐지는 순간, 공기는 미묘하게 흔들린다. 그 흔들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피부가 먼저 알아차린다. 땀이 식기 시작하는 감각,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의 온도, 숨을 들이마실 때 폐 속으로 스며드는 냄새—이 모든 것이 한 번에 방향을 바꾸는 찰나다. 여름의 향이 뒤로 물러나고, 가을의 냄새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그 짧은 교차점에서, 계절은 가장 선명한 색과 음을 발산한다.



그 틈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얇고, 가벼우며, 잡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빠져나간다. 그러나 그 짧음이야말로 계절이 우리 감각에 남기는 방식이다. 오래 머무는 것은 쉽게 무뎌지지만, 순간적인 것은 오랫동안 맴돈다. 마치 한 번 스친 향이 평생 기억 속에 남듯이. 매미와 귀뚜라미의 울음은 결코 완벽하게 합쳐지지 않는다. 대신 서로의 경계에 이르렀을 때, 아주 얇은 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진동한다. 그 진동이 귀를 울리고, 귀는 그것을 마음속 깊은 곳까지 내려보낸다.



어쩌면 계절이란 본래 완성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전환 중인 상태일지도 모른다. 여름이 완전히 여름인 순간은 없다. 이미 그 속에는 가을이 조금씩 스며들고, 가을 속에는 다시 여름의 잔향이 남아 있다. 틈은 바로 그 스며듦의 자리다. 눈은 쉽게 속는다. 달력은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귀와 피부는 속지 않는다. 낮과 밤이 교대하는 찰나, 온도와 냄새가 바뀌는 순간, 매미와 귀뚜라미가 동시에 울 것 같다가도 끝내 겹치지 않는 그 기묘한 시차 속에서만, 계절은 자기의 본색을 드러낸다.


그래서 그 틈을 경험한 사람은 계절을 날짜로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매미가 마지막으로 울고 귀뚜라미가 처음으로 울던 날의 공기, 그 공기 속에 스며 있던 체온, 가슴 깊숙이 차오르던 미묘한 쓸쓸함으로 기억한다. 그 틈은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은 길다. 한순간에만 존재하지만, 평생을 두고 되짚게 되는 시간. 계절이 머무는 곳은 결코 한낮의 광장이나 한밤의 골목이 아니라, 그 둘 사이의 미세한 간격, 아무도 머물 수 없지만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가는 경계선이다. 그리고 그 경계에 귀를 기울인 사람 만이.



계절이 건네는 가장 은밀한 인사를 받을 수 있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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