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미묘케 06화

아주 조금씩 증발하며.

빗방울과 소금쟁이, 발을 디딜 때

by 적적

오늘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아스팔트 위를 바라다봐줘요.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땅 위에 대기하고 있던 무수한 이유들이 위로 솟구쳐 내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회색 하늘 아래, 아스팔트 바닥은 이미 수많은 발자국과 바퀴 자국, 지나간 이야기들의 검은 윤곽으로 채워져 있다. 그 위로 빗물이 고이고, 작은 바다가 생긴다. 그 바다의 수심은 손톱만큼 얕지만, 그 표면 위를 미끄러지듯 건너는 소금쟁이들에게는 전 생애를 건너는 것과 다름없다.



소금쟁이들은 발끝으로만 세상과 접촉한다. 그 가느다란 다리가 물 위를 누를 때마다, 원형의 파문이 번진다. 파문은 금방 사라질 것 같으면서도, 사라지기 전까지는 끝없이 퍼진다. 그 원 안에는 기원과 종착지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 발걸음이 만든 진폭 안에서, 모든 시작은 이미 끝의 방향을 품고 있다.



그것은 종종 바다로 향한다고 믿으며 움직이지만, 실제로는 증발로 향하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은 늦게 온다. 대부분의 연인은 처음 만났을 때, 서로가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목적지에 대한 상상은 늘 과장되거나 부정확하다. 그러나 그 무지야말로 출발의 원동력이 된다. 소금쟁이에게 아스팔트 위의 웅덩이는 바다이고, 그 바다는 항로다. 그것이 사실은 태양의 열기 앞에 곧 사라질 작은 물자국 일지라도.



늘 표면 위를 걷는다. 깊이에 닿는 순간, 더 이상 사랑이 아니게 되는 경우가 많다. 너무 깊이 가라앉으면 움직임이 멈춘다. 파문은 표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관계는, 더 이상 깊어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표면 위에서 계속 발걸음을 옮긴다. 발끝이 만드는 미세한 흔들림이 전부인 세계. 거기서 속도를 높이면 더 빨리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파문을 남길뿐이다.



비는 멈추지 않는다. 아니, 잠시 멈춘 듯 보여도 다른 곳에서 계속 내리고 있다. 사람의 마음도 비슷하다. 한쪽에서 그쳤다고 해서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다. 다른 누군가, 다른 풍경 속에서 여전히 내리고 있다. 사랑이 끝났다고 믿는 순간에도, 그 사람의 표면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파문이 번지고 있다.


아스팔트 바닥 위에 고인 물은, 도시의 불빛을 뒤집어 담고 있다. 가로등의 황금빛, 신호등의 녹색, 지나가는 차량의 붉은 브레이크 등이 뒤섞여 있다. 소금쟁이는 그 빛을 밟으며 나아간다. 빛 위를 걷는다는 건, 사실 그림자를 밟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찬란하다고 믿는 순간에도, 그것은 누군가의 부재를 비춘 빛일 수 있다. 그 부재는 표면 아래 숨어 있다가, 파문이 가라앉을 때 슬그머니 드러난다.



어떤 관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표면 위에서만 존재한다. 서로의 발끝이 닿는 순간에만 진짜였던 사랑. 그 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빠르게 증발한다. 그러나 표면 위를 걷는다는 건, 결코 얕다는 뜻이 아니다. 얕음 속에도 치명적인 무게가 있다. 파문은 얕은 곳에서만 퍼지지만, 그 원의 넓이는 깊이와 상관없이 무한하다.



증발은 물의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순환의 시작이다. 사랑이 끝난 자리에서 다른 사랑이 시작되는 것처럼. 다만 증발의 속도는 비정하다. 어떤 웅덩이는 하루 종일 남아 있다가 저녁의 서늘한 바람 속에 사라지고, 어떤 웅덩이는 몇 분 만에 바닥을 드러낸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어떤 관계는 오랫동안 증발하지 않고 남아 있다. 표면에 고인 채, 다시 비를 기다린다. 또 어떤 관계는 처음부터 너무 얕아, 해가 비치기 무섭게 사라져 버린다.



소금쟁이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다. 발끝이 만드는 미세한 떨림이 곧 방향이고, 파문이 곧 지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랑 속에서, 다음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명확히 아는 경우는 드물다. 방향은 늘 뒤늦게 이해된다. 나중에야, 모든 파문이 한 점으로 모여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점이 바로 증발의 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빗속의 소금쟁이를 오래 바라보다 보면, 그 발걸음이 더 이상 전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것은 표면 위에서의 연기와 같다. 앞으로 나아가는 척하면서,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고 있다. 사랑도 그렇게 움직인다. 방향이 없는 움직임이 때로는 가장 아름답다. 목적지가 없는 여정이야말로, 도착이라는 종말을 유예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모든 유예는 결국 끝난다. 해가 구름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아스팔트 위의 바다는 빠르게 축소된다. 소금쟁이의 발끝 아래서, 빛이 반짝이던 수면이 검은 바닥으로 변한다. 그 변화는 소리 없이, 그러나 치명적으로 진행된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서로의 눈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게 되는 순간처럼.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날이 올 거라고 믿지 않는다.



빗방울들은 여전히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 빗방울들이 닿을 표면이 없다. 파문은 사라졌고, 소금쟁이는 발걸음을 멈춘다. 모든 사랑의 끝에는 이렇게 잠깐의 정적이 있다. 그 정적은 해방일 수도, 상실일 수도 없다. 그저 표면이 사라졌다는 사실만이 남는다.



이 비가 완전히 그치기 전, 아직 남아 있는 몇 방울의 웅덩이와 몇 마리의 소금쟁이가 있다. 그들은 여전히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그것이 증발이라는 종착역을 향하는 걸 모른 채. 어쩌면 그것이 사랑의 마지막 형식일지도 모른다. 끝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것. 끝내 닿지 못할 바다를 향해, 발끝으로 표면을 누르며 파문을 남기는 것.



글을 쓰는 일도 소금쟁이의 발걸음과 닮아 있다. 하얀 종이나 화면 위는 아직 비가 오지 않은 아스팔트처럼 텅 비어 있다. 거기에 첫 문장이 떨어지는 순간, 아주 작은 웅덩이가 생긴다. 그 웅덩이는 처음에는 미약해 보이지만, 그 위를 건너는 단어들이 파문을 만든다. 그 파문은 의미를 번지게 하고, 번진 의미가 다시 다음 문장을 불러온다.



문장을 쓰는 순간은 언제나 표면에서 일어난다. 생각의 깊은 곳에는 형체를 갖지 못한 감정들이 잠들어 있지만, 글로 옮겨질 때 그것들은 물 위로 올라와 얇은 막을 이룬다. 파문이 번지는 동안만 그것들은 살아 있다. 그러나 모든 문장은 완성되는 순간, 그 표면의 떨림을 잃는다. 독자가 읽는 순간부터, 그 파문은 다시 증발로 향한다.



사랑을 기록하는 문장은 특히 그렇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장면을 붙잡는 시도지만, 붙잡는 순간부터 사라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마치 빗방울을 손바닥에 담아 두려는 것처럼. 잠시 머물지만 곧 열기에 녹아 사라진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사람은 다시 종이 위로 손을 뻗는다. 그 사라짐이야말로 기록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문장이 너무 깊이 내려가, 표면 위에서 사라져 버릴 때가 있다. 그것은 독자가 발을 디딜 수 없는 곳, 파문이 닿지 않는 곳이다. 너무 깊은 문장은 사랑이 숨겨진 가장 내밀한 장소처럼, 닿으려 하면 할수록 멀어진다. 반대로, 너무 얕은 문장은 쉽게 쓰이지만 쉽게 잊힌다. 그래서 좋은 글과 오래 남는 사랑은 모두 적당한 표면 위에서만 존재한다. 파문이 번질 만큼 얕고, 그러나 쉽게 마르지 않을 만큼의 깊이를 가진 자리.



비가 내리듯, 글도 내린다. 한꺼번에 쏟아질 때도 있고, 오래 가뭄을 겪다가 겨우 한 줄이 떨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모든 문장은 언젠가 마른다. 남는 건 파문의 기억뿐이다. 그 기억은 독자의 마음속 어딘가에 얕게 고여 있다가, 다른 문장이나 다른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다시 흔들린다.



소금쟁이가 아스팔트 위에서 표면만을 건너듯, 글쓰기도 결코 완전한 진실에 닿지 못한다. 글은 진실의 표면을 스치며 그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그 흔적이 바로 은유다. 은유는 진실을 직접 말하지 않지만, 그 주위를 원형으로 감싸며 더 넓게 퍼져 나간다. 사랑도, 글도, 증발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표면에서 서로의 무게를 시험한다.



비가 그치기 전에 도착해야 하는 문장이 있다. 그것은 파문 속에서만 읽을 수 있는 문장이다. 너무 늦으면, 표면은 말라붙고, 거기에 적힌 모든 단어가 갈라져 버린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은, 사랑처럼, 타이밍의 예술이다. 너무 일찍 쓰면 아직 웅덩이가 고이지 않고, 너무 늦으면 증발로만 기억된다.


마지막 문장을 쓰는 순간은 소금쟁이의 마지막 발걸음과 같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표면 위를 한 번 더 누른다. 그때 만들어진 파문은 누구에게 닿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닿는 순간, 사랑과 글은 동일한 형태로 완성된다. 끝을 모른 채 계속 쓰는 것. 그리고 그 끝이 닿는 순간.




아무도 모르게 증발하는 것.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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