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미묘케 18화

낙뢰와 침묵사이

감정을 태우지 않고 빛으로 남기는 방법

by 적적

도시는 언제나 번개를 불러들이는 거대한 도체였다. 여름 장마철,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 하늘 아래, 고층 빌딩의 옥상마다 솟아 있는 피뢰침은 흑백의 선명한 드로잉처럼 드러났다. 그것들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뾰족한 금속, 마치 무심히 하늘을 향해 치켜든 손가락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는 구리선이 건물의 벽과 기둥을 따라 내려와 땅속 깊은 곳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땅은 전류를 삼키는 거대한 바다였고, 그곳에 축적되는 것은 위협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안정감이었다. 피뢰침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그것은 하늘이 내리는 빛을 받아내는 잠시의 통로일 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수많은 숨결을 보호한다.



마음에도 그런 장치가 필요하다. 정면으로 떨어지는 감정의 낙뢰를 흡수하고, 조용히 흘려보내는 장치. 어떤 감정은 너무 날카로워 직접 맞닥뜨리면 피부와 뼈마저 검게 그을릴 만큼 위태롭다. 사랑의 집착이 그렇고, 상실의 충격이 그렇다. 피뢰침 없는 건물이 불길 속에 무너지는 것처럼, 감정을 배출할 장치가 없는 마음은 쉽게 잿더미가 된다.



어린 시절의 피뢰침은 기묘한 물건이었다. 그 가느다란 쇠막대가 무엇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번개가 떨어진다면 순식간에 녹아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원리는 단순했다. 피뢰침은 번개를 막는 것이 아니라, 번개가 흘러갈 길을 안내하는 것. 맞서는 대신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후에는 소리 없이 흘려보내는 것. 그 원리를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감정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을.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사랑에 빠진 순간, 감정은 번개처럼 떨어진다. 그것은 불시에, 예고 없이, 어떤 표정이나 목소리에 의해 발화된다. 그 낙뢰는 눈꺼풀을 덮고, 폐부를 흔들며, 혈관 속을 은밀히 불태운다. 피뢰침이 없는 마음은 그 즉시 감전된다. 눈빛은 과열된 전구처럼 깜박이고, 손끝은 보이지 않는 전류에 젖는다. 피뢰침 없는 사랑은 언제나 파괴적이다. 상대의 작은 무심함조차 감당하지 못해 전부 무너져버린다. 그러나 피뢰침을 가진 사랑은 다르다. 불시에 쏟아지는 감정을 흘려내고, 그 흔적만 남긴다. 그 흔적은 검게 그은 화상 자국이 아니라, 몸속 깊은 곳에 새겨진 섬세한 문신처럼 남아 마음의 지도를 다시 그린다.



장례식장에서 신발이 흙에 젖는 장면은 번개가 지나간 흔적과 닮아 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순간, 감정의 낙뢰는 가차 없이 떨어진다. 그 순간 인간은 전류에 휘말린 나무처럼 흔들린다. 어떤 이는 울부짖으며 땅에 매달리고, 어떤 이는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인다. 그 침묵조차 하나의 피뢰침이다. 눈물을 흘려 흙으로 내려보내거나, 무거운 침묵으로 전류를 삼키지 않는다면, 그 자리는 광기로 무너질 것이다. 무덤가에 세워진 쇠막대처럼, 피뢰침은 하늘을 받아내고 남겨진 사람들을 지켜낸다.



그러나 감정의 섬광은 슬픔과 상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쁨 또한 벼락처럼 떨어진다. 갑작스레 찾아오는 환희, 설명할 수 없는 희망의 전율은 오히려 더 눈부시다. 그러나 그것조차 지나치게 강렬하면 오래 머물 수 없다. 기쁨이 흐를 길이 없다면, 희망은 쉽게 과열되어 절망으로 바뀐다. 눈부신 순간조차 피뢰침을 통해 흘려보내야만 오래 남는다. 그렇게 할 때 기쁨은 타버리지 않고 빛으로만 남는다.


도시의 밤을 바라보면 옥상마다 보이지 않는 구조물들이 어둠 속에 숨어 있다. 피뢰침은 마치 감정의 숨은 장치처럼 조용히 존재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누구도 그것 없이는 안전할 수 없다. 마음의 피뢰침도 마찬가지다.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글이 그렇고, 음악이 그렇다. 누군가에겐 낡은 노트북의 희미한 화면이, 또 다른 이에게는 깊은 밤 켜두는 라디오가 피뢰침이 된다. 과열된 감정이 그 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그곳에서 소리 없이 사라진다.



사랑과 증오는 전류의 양극처럼 맞닿아 있다. 한쪽이 고조되면 다른 쪽도 불가피하게 살아난다. 피뢰침 없는 사랑은 증오와 혼합되며 폭발한다. 질투가 바로 그 대표적 예다. 질투는 애초에 애정이 전도된 불빛이다. 낙뢰는 빛과 소리로 세상을 흔들지만, 질투는 감정을 분노와 절망으로 변질시킨다. 그러나 마음의 피뢰침이 있다면, 질투 또한 전류의 일부로 흘러간다. 그것은 무너뜨리는 대신 관계를 지탱하는 균열로 남는다. 금이 간 벽처럼, 오히려 그 균열이 관계의 실체를 드러내기도 한다.


삶의 모든 순간은 낙뢰로 가득 차 있다. 불쑥 다가온 이별, 예기치 못한 실패, 설명할 수 없는 고독. 그 모든 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와 같다. 그것은 피할 수 없다. 다만 피뢰침을 세워 감정이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피뢰침 없는 삶은 불안하다. 작은 감정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그대로 쏟아내다 보면 결국 자신을 잿더미로 만든다.



하늘은 언제나 번쩍인다. 예고 없는 구름 사이에서, 돌연 터지는 섬광처럼 감정도 불시에 다가온다. 마음의 피뢰침은 그 순간 비로소 작동한다. 눈물로, 침묵으로, 혹은 짧은 말로. 때로는 창문을 열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는 일조차 피뢰침이 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감정이 흐를 길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시의 피뢰침은 낮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고 번개가 내리칠 때, 그것은 홀로 서서 하늘을 향한다. 마음의 피뢰침 또한 대부분의 시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감정의 낙뢰가 떨어질 때, 그것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 덕분에 마음은 무너지지 않고, 감정은 흘러간다.



피뢰침은 결코 영웅적이지 않다. 수많은 번개를 받아내고도 묵묵히 서 있을 뿐이다. 마음의 피뢰침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고백이나 눈부신 장면 대신, 그저 버텨내고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바로 그 침묵 덕분에 감정은 견딜 만한 것이 되고, 사랑은 파괴 대신 변주를 얻는다.



어쩌면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피뢰침을 세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번개는 언제라도 떨어지고, 감정은 언제라도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나 피뢰침이 있는 마음은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흘러가고, 흔적만 남는다.


그 흔적은 소리 없는 불꽃처럼 남아 마음의 어둠을 밝힌다. 그것은 길을 잃은 발걸음을 이끄는 희미한 등불이 되고, 불시에 찾아오는 번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표식이 된다.



마음을 태우지 않고, 빛만 남긴다.




그리고 그 빛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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