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할 수 없는 시간의 각인에 대하여.
어떤 하루는 다 쓰고 난 종이처럼 바닥에 구겨져 버려도 상관없다. 그러나 어떤 하루는 한 번만 찍히는 인장처럼,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문양을 남긴다. 그 문양은 오래 닳지 않고, 심지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짙어진다. 달력의 칸 속에 단순히 체크 표시로 기록되지 않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늬의 각인이다.
그런 날에는 아침의 공기부터 달라진다. 창문을 열었을 때 들어오는 바람이 똑같은 계절의 것임에도 어딘가 낯설다. 익숙한 냄새 속에서 아주 미세하게 다른 향이 섞여 있다. 낯선 동네를 지나가다 맡는 이름 모를 꽃향기처럼,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확실히 존재한다. 그 순간 하루는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무언가를 새기려는 의도를 가진 의식처럼 느껴진다.
인장은 원래 권위를 위해 사용되었다. 문서를 공식화하고, 존재를 증명하며, 이의 제기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힘. 그러나 인간의 하루에도 그런 인장이 찍힐 수 있다. 그 인장은 다른 사람이 찍어주기도 하고, 스스로도 모르게 남기기도 한다. 우연히 마주친 한 사람의 눈빛이 될 수도 있고, 무심코 흘려들은 문장의 파편이 될 수도 있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도시의 골목을 걷다가 불현듯 다가온 순간이 있었다. 오랫동안 다니던 길인데, 그날따라 돌바닥의 색이 유난히 선명해 보였다. 몇 년간 그대로 있었을 표면인데, 그날 비로소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로웠다. 돌 위의 균열, 금속 냄새가 스민 빗물 자국, 구부러진 가로등 불빛이 교차하며 만든 그림자. 그것들이 갑자기 모든 감각을 압도하며 한 장의 도장이 되었다. '오늘'이라는 날짜 위에 또렷하게 찍혀 들어왔다.
사람의 기억은 대부분 흐릿하다. 수많은 날들은 동일한 톤으로 겹겹이 쌓인다. 그러나 인장이 찍힌 하루는 기억의 맨 앞자리에서 쉽게 밀려나지 않는다. 그 기억은 단순한 장면이 아니라, 이후의 삶을 규정하는 일종의 증명서처럼 기능한다. ‘그날 이후’라는 문장이 성립하는 순간, 인장은 제 기능을 다한다.
특이한 점은, 인장이 찍히는 순간에는 당사자가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덤덤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아주 미세한 결이 달라진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깨닫는다. 그 하루가 하나의 도장처럼 깊이 박혀 있음을. 이것은 사건의 크기와는 무관하다. 누군가의 죽음이나 화려한 축하식 같은 큰 사건이 아니어도 된다. 어쩌면 커다란 사건은 너무 커서 도장이 아니라 파도처럼 씻겨 나가 버린다. 오히려 일상의 작은 균열, 사소한 말 한마디, 예상치 못한 정적이 더 뚜렷한 인장을 남긴다.
가끔은 우연히 만난 문장이 인장이 되기도 한다. 오래된 책의 낡은 페이지에서 튀어나온 짧은 문장, 혹은 거리 광고판에 쓰인 흔해 빠진 슬로건조차도 문득 각인된다. 그 순간 읽는 이는 독자가 아니라 서명자가 된다. 그 문장은 허공에서 날아와 이마 위에 도장을 찍는다. 이후의 시선은 그 문장을 통과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인장이 찍힌 하루는 흔히 고통과도 맞닿아 있다. 불가피하게 겪게 된 상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순간, 손에 쥔 것을 내려놓아야 했던 밤. 그런 날들은 마치 법정에서 도장을 찍은 계약서처럼, 삶에 되돌릴 수 없는 조건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조건이야말로 한 인간을 다른 인간으로 바꾼다. 돌이킬 수 없기에, 그만큼 강렬하게 각인된다.
그러나 반대로, 인장이 찍힌 하루는 설명할 수 없는 환희의 형태로도 다가온다. 이유 없이 웃음이 터지고, 별다른 계기도 없는데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 공기 중의 입자가 빛나며 세상이 새로워 보이는 시간. 그것도 하나의 인장이다. 영원히는 지속되지 않더라도, 그 각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삶을 지탱해 준다.
문제는 인장이 찍히지 않는 날들이다. 대다수의 날들이 그렇다. 수없이 흘러가지만, 다음 날의 파도에 금세 지워지고 만다. 그날 무엇을 했는지조차 흐릿하게 사라진다. 하지만 바로 그 무수한 무늬 없는 날들이 배경이 되기에, 단 하나의 도장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수천의 날들 속에서 단단히 박힌 하나의 각인. 그것이 인간의 시간을 비로소 서사로 바꾼다.
어쩌면 인장이 찍힌 하루는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야만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강제로 남기려 하면 모래 위의 발자국처럼 금세 지워진다. 하지만 전혀 의식하지 않은 순간에, 누군가의 손길처럼 스며와 불시에 도장을 남긴다. 그 인장이 찍히는 순간, 하루는 단순한 날이 아니라 삶의 증거로 변모한다.
돌아보면, 인장이 찍혀진 하루는 언제나 어떤 결핍에서 비롯된다.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던 허기, 설명할 수 없는 공허, 혹은 미묘한 불안. 그 결핍 위에 도장이 찍힐 때, 결핍은 더 이상 빈자리가 아니라 모양이 된다. 지워지지 않는 모양. 그래서 사람들은 때때로 결핍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갈망한다. 결핍은 인장을 위한 빈 공간이기 때문이다.
언젠가의 하루에 찍힌 인장은 오래도록 생명을 가진다. 다른 모든 기록이 퇴색되어도, 그것만은 여전히 선명하다. 그것은 삶의 어떤 증명서처럼, 손에 쥐지 않고도 존재를 뒷받침한다. ‘그날이 있었으므로 오늘이 있다’라는 명제를 조용히 떠올리게 한다.
결국 한 인간의 삶은 수많은 무늬 없는 날들과 몇 개의 인장이 찍힌 날들로 구성된다. 도장이 없는 날들이 흘러가며 인장의 날들을 떠받치고, 인장의 날들은 다시 그 무수한 날들의 의미를 정당화한다. 그 균형 속에서 인간의 시간은 단순한 연속이 아니라 문양을 가진 역사가 된다.
인장이 찍혀진 하루였어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것은 이미 하나의 구원이다. 무엇이 찍혔는지, 그 문양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하루 이후 시간은 이전과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인장이란 바로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한다.
인장이 찍힌 하루를 오래 돌아보면 그것은 단순히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으로 남은 자국처럼 작동한다. 그것은 증명서를 꺼내어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것, 누구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심장 안쪽에 확실히 새겨져 있는 것. 시간이 흐르고 풍경이 바뀌어도 그 하루는 끊임없이 되새김질된다. 마치 잉크가 마르지 않고 번져가듯, 다른 날들의 색채를 은근하게 물들인다. 그리고 언젠가 문득, 그 인장은 자신이 바라보는 사물의 방식이나 사랑하는 태도, 혹은 두려움을 견디는 방식 속에서 은밀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목소리의 억양에 스며들기도 하고, 걷는 걸음의 속도에 배어들기도 하며, 우연히 잡은 손끝의 온도 속에서 깜짝 고개를 들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는 단순한 하루가 아니라, 이후의 수많은 날들을 비추는 등불이 된다. 그렇기에 인장이 찍힌 하루를 안다는 것은 곧 자신이 어떤 그림자를 품고 어떤 빛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아는 일이다.
어떤 인장은 오래된 슬픔의 형태로 남아 세월을 따라 굳어지고, 또 다른 인장은 희미한 기쁨의 잔광으로 남아 불시에 가슴을 밝힌다. 결국 삶이란 그 희미하고 선명한 인장들이 겹겹이 포개진 지층일 것이다.
언젠가 다시, 불시에 “오늘”이라는 종이에 도장이 찍히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날 또한 조용히 품어야 한다. 설명되지 않고 다만 남겨지는 흔적으로서, 말없이 자신을 규정하는 힘으로서. 인장이 찍혀진 하루였어요,라는 문장은 그렇게 다시금 시간 속에서 번지고.
오래도록 잔향처럼 머물 것이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