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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반복의 결

by 적적

불규칙적인 생활을 규칙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벽에 걸린 시계가 손목의 맥박과 동기화되지 않은 채 흘러간다. 아침의 햇살은 매일 다르게 창틀에 스며들지만, 일어나서 창문을 여는 동작은 하루도 빠짐없이 동일하다. 시선은 빛과 그림자의 경계에서 잠시 머물다가, 벽돌 사이로 스며드는 먼지를 따라 흘러간다. 먼지는 떠다니다가 어느 순간, 공기 속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 순간, 시간은 잠시 잊힌다.



불규칙함 속에서 규칙을 만들어내는 행위는 매번 같은 절차 안에서 다른 결을 발견하는 일과 닮았다. 커피를 내리는 순간, 온도가 조금 달라져도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열의 강도는 동일하고, 컵을 잡는 손가락의 각도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컵 속 액체는 매번 다른 빛을 머금는다. 그것은 단순한 시각의 차이가 아니라, 공기의 온도, 습도, 심지어는 전날 읽은 글의 여운까지 스며든 결과이다. 하루의 시작을 규칙으로 감싸 안으면서도, 그 규칙 속에는 예측할 수 없는 불규칙이 숨어 있다.



책상 위의 물건들은 일정한 질서 속에 놓여 있지만, 그 사이사이의 공백은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연필은 기울어진 각도를 바꾸고, 공책은 같은 자리에 있지만 페이지가 열리는 방향은 바람에 따라 달라진다. 물컵 속 얼음이 녹는 속도, 먼지가 모이는 패턴, 그리고 창밖 나무의 그림자가 벽에 드리우는 각도까지, 모두 미묘하게 다르다. 규칙적이라는 단어가 지시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반복이 아니라, 반복 속에서 미묘하게 흔들리는 차이를 포착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점심시간, 불규칙적인 일정 속에서도 정해진 메뉴를 먹는다. 같은 종류의 음식이라도 맛은 일정하지 않다. 재료의 숙성도, 조리사의 손길, 냄새의 방향, 심지어 옆 테이블 사람의 숨결까지 음식 맛을 바꾼다. 맛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맛의 변주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는 행위다. 그렇게 불규칙한 시간을 규칙으로 묶어두는 것은, 혼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혼란 속에서 일정한 선을 찾는 일이다.



오후에는 창밖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긴다. 걷는 속도와 발걸음의 힘은 매번 다르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일정하다. 골목을 지나는 바람의 방향,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 자동차 소음의 높낮이까지 매번 변하지만, 규칙적인 귀가라는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 그 길 위에서 불규칙한 것들은 규칙 안으로 스며들어 나만의 질서를 만든다.



밤이 되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창문을 닫는다. 불규칙한 감정이 규칙적인 시간 속에 흘러들어 온다. 어떤 날은 슬픔이 창틀 사이로 스며들고, 어떤 날은 소음이 가슴을 두드린다. 그러나 그 감정들을 맞이하는 방법은 매번 동일하다. 기록하고, 정리하고, 숨기지 않고 바라본다. 규칙적인 행동 속에서 감정은 불규칙하게 반응한다. 불규칙한 감정을 규칙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불규칙적인 생활을 규칙적으로 사는 방식이다.



잠들기 전, 시계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시간을 흘린다. 그러나 하루 동안의 경험, 공기의 밀도, 빛의 방향, 손끝의 감각은 동일하지 않다. 규칙적인 생활이라는 것은 반복 속에서 변화의 흔적을 감지하고, 불규칙을 조용히 품어 안는 일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작은 차이들이 하루를 살아있게 만든다.


불규칙적인 생활은 결코 혼돈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규칙이 만들어내는 틀 안에서 드러나는 변주, 미묘한 리듬, 감각적 진동을 드러낸다. 불규칙과 규칙 사이를 오가는 이 미세한 긴장은 하루를 생생하게 만든다. 일정한 행동을 반복하며, 매번 다른 감각과 감정을 경험하는 과정 속에서 삶의 밀도가 쌓인다. 규칙적이라는 틀 속에 불규칙한 삶을 담는 순간, 시간은 단단해지고, 순간은 예리해진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하루가 모두 스며든다. 낮 동안 지나간 바람, 느껴진 촉감, 들었던 소리, 맛본 음식의 잔향까지, 모든 불규칙이 하루라는 규칙 안에 섞인다. 규칙적이라는 말이 지시하는 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반복 속에서 감각과 경험을 주목하고, 불규칙 속에서 질서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불규칙적인 생활을 규칙적으로 산다는 것은, 매 순간을 기록하고, 관찰하며, 예민하게 느끼는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 삶은, 표면적으로는 차분하고 반복적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늘 새로운 순간과 감각으로 가득 차 있다. 불규칙은 규칙 속에서 반짝이고, 규칙은 불규칙 속에서 힘을 얻는다. 이 교차 속에서 매일의 시간은 밀도 있고, 감각적으로 살아 숨 쉰다. 불규칙적인 하루를 규칙적으로 사는 것은, 결국 변화와 반복, 예측과 우연, 질서와 혼돈을 동시에 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매번 다른 하루가.



변함없이 반복된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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