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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지 않는 용기

바이킹이 가르쳐준 감정의 기울기

by 적적


S는 참 이상한 친구였어. 전국의 바이킹을 다 정복했다느니, 어느 유원지든 마지막 코스로 꼭 바이킹을 타야 한다고 떠들고 다녔거든. 그냥 허풍이려니 넘길 법도 한데, S가 그 얘기를 할 때면 이상하게 말 사이에서 오래 묵힌 쇠 냄새 같은 게 새어 나오는 것 같더라고. 취향이라고 하기엔 뭐가 더 있고, 사연이라고 하기엔 또 너무 애매하더라고.


대구 어느 유원지의 바이킹도 훌륭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월미도 바이킹이라면서 기를 쓰고 설명하곤 했어. 크기나 규모는 다른 데랑 별반 다를 게 없는데, 딱 하나, 안전바가 달랐다나 봐. 보통 놀이기구가 주는 불안은 기계가 낡아서가 아니라, 거기에 매달린 사람들의 감정이 더 낡아서 오는 거라는데, 월미도 건 그게 아니었대. 허술한데, 그 허술함이 묘하게 공포의 문턱을 낮춰준다고 하더라.



그 안전바가 말이지, 잡아도 잡은 것 같지가 않고, 놓아도 놓은 것 같지가 않아.



S는 그렇게 말했어. 그러고는 특유의 쓸쓸한 웃음을 흘렸지. 뭔가가 한 번 크게 쏟아져본 사람의 웃음 같더라.

S는 ‘쏟아짐’이라는 말을 자주 썼어. 몸이 기울어지는 게 그냥 각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속 어딘가에 숨겨둔 문이 스르륵 열리는 느낌이라나 봐. 근데 또 그걸 자세히 말하진 않더라고. 늘 감정의 중심을 비켜 걸어가는 사람처럼 주변만 돌았어. 월미도 안전바는 사람한테 묻는 구조였어.



붙잡을래, 아니면 그냥 놓아도 괜찮을까?



대부분은 본능적으로 꽉 붙잡지. 흔들릴까 봐, 쏟아질까 봐, 떨어질까 봐.

근데 S는 달랐어. 그냥 손을 떼고 탔거든.

바이킹이 정점까지 치솟고, 바람이 목덜미를 후려치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는데도 S의 손은 허공에 둥둥 떠 있었어. 겉보기엔 용기 같았는데, 좀 더 보면 오래전부터 뭔가의 고삐를 놓아버린 사람의 태도 같기도 했어.



잡고 있으면 더 무서워. 이상하지 않아? 잡는다는 건 뭔가 통제가 된다는 착각을 주거든. 근데 월미도 바이킹은 그 착각을 확 부숴버려. 차라리 손을 떼면, 몸이 기울 때 마음도 같이 기울어서 덜 아파.



S는 그렇게 말했어.



바이킹이라는 건 원래 일상의 축을 확 무너뜨리는 기계잖아. 무중력의 한순간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뭘 무서워하는지 아주 정확히 보여주는 구조물이더라고. 추락이든, 노출이든, 아니면 붙잡고 있던 것들이 사실 별 의미 없었다는 사실이든. 그런 면에서 월미도의 허술한 안전바는 묘하게 정직했어.



여기 너를 완전히 지켜줄 장치는 없다.


이렇게 말하는 듯했거든. 그래서 스스로의 무게는 스스로 버텨야 한다는 거지.



한참 지나고서야 알겠더라고.

S가 왜 전국의 바이킹을 탐닉했고, 왜 그걸 마지막 코스로 남겨두었는지.

S에게 바이킹은 그냥 놀이기구가 아니었나 봐. 감정의 경계에 슬쩍 다가가는 의식 같은 거였나 싶어. 오래 묵힌 두려움을 꺼내 확인하는 검증 절차라거나, 아주 잔혹하지만 정확한 치유법 같은 거였던 것 같아. 매달려 있지도, 완전히 놓이지도 않은 그 안전바는 S의 내면과 꽤 닮아 있었거든. 어디에도 제대로 기대지 못하면서도 계속 뭔가를 향해 흔들리는 그런 상태 말이야.


월미도 밤바다는 다녀온 사람은 알 거야. 밤이 되면 바다는 더 이상 바다처럼 굴지 않잖아. 검은 숨소리 같은 파도와, 유원지 조명 아래서 실컷 흔들리고 웃고 비명 지르는 사람들. 그 흔들림 속에서 S는 가장 솔직해진다더라. 흔들리는 동안만큼은 어떤 감정도 숨을 데가 없다는 거지.



그래서 허술한 안전바는 이상한 은유가 돼.

안전을 보장하는 장치가 아니라, 불완전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치가 되는 거지.

사람들은 그 불완전함을 붙잡고 버티는데, 붙잡을수록 더 불안해져.

근데 또 손을 뗀다는 건 더 무서운 일이라서 끝까지 움켜쥐는 거지.

하지만 S는 손을 뗐어.

그가 놓은 건 쇠막대가 아니라 오래 묶어둔 감정의 매듭이었을지도 모르겠더라고.



감정도 그래.

너무 꽉 잡고 있으면 안 보여.

손을 좀 놔야 드러나는 형태들이 있더라고.

기울어지는 찰나에야 보이는 것.

S는 어떤 바이킹에서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어.

그건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겁이라는 걸 훨씬 예전에 이미 다 겪어본 사람의 조용함 같았거든.

허술한 안전바 위에서 그는 공포랑 싸우지도 않았고, 도망치지도 않았어.

그냥 받아들였다고 해야 하나.

어쩌면 그 태도가 세상의 어떤 사랑보다 정직한 항복일지도 모르겠더라.

S는 가끔 이런 말을 했어.



안전바를 잡지 마.



그 말이 단순한 행동 지침이 아니었단 걸 이제는 알겠어.

흔들릴 때 억지로 붙잡지 말라는 말이었나 봐.

흔들림이 때론 더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거든.

불안정함을 없애는 대신, 그 불안정함 속에서 나란 존재가 어떻게 기울고 다시 돌아오는지 보여주는 거겠지.

S는 그 단순한 기계 위에서 그걸 배웠대.

흔들리며 엉덩이가 바닥에서 살짝 떨어질 때

바닥이 드러난다는 걸.



그리고 그 바닥이 생각보다 훨씬 더 단단하다는 걸.

손을 놓아도.

기울어져도.

쏟아질 듯 흔들려도.

그 순간에도 존재는 사라지지 않더라고.

그러니까



안전바를 잡지 마.



흔들림이 알려줄 거야.

붙잡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말이야.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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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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