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들.
은가루가 흩어지는 걸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라앉아요. 손끝에서 떨어진 조각들이 제멋대로 날아가는데도, 그 순간이 오히려 어떤 질서의 앞자락처럼 느껴지는 거죠. 은 세공사의 작업대 위에서 반복되는 일들은 늘 비슷하지만, 그 비슷함 속에만 있는 미세한 떨림이 있어요. 그 떨림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아주 조용하게 한 번 숨을 들이쉬는 것 같아서요.
은가루는 예고 없이 흩어져요. 누가 뒤에서 살짝 건드린 것처럼 튀어 나갈 때도 있고, 마음속의 아주 작은 균열이 금속 위로 번져 나온 것처럼 퍼질 때도 있죠. 기침처럼 갑자기 튀기도 하고, 손끝의 리듬을 따라 조용히 떨어지기도 해요. 그런데 그런 우발을 이상하게도 무서워하지 않아요. 은가루는 원래 흩어지는 게 일이고, 그 흩어짐을 다시 부드럽게 모아 오는 게 당신의 일이니까요.
온종일 반복하는 일들은 겉으로 보면 그냥 단순해요. 모양을 만들고, 흩어진 조각을 다시 모으는 일. 하지만 그 단순함 안쪽에서만 보이는 장면들이 있죠. 칼날을 살짝 세워 은의 결을 따라가면, 은은 아주 작은 소리를 내요. 마치 오래 말하지 못한 말을 은밀하게 털어놓는 것처럼요.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금속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된 이야기 속을 천천히 더듬어가는 사람 같아져요.
깎아낸 빛은 조용한 파편이 되어 작업대 위에 누워 있어요. 대부분 사람은 그걸 그냥 먼지처럼 털어내겠죠. 그런데 당신은 그러지 않아요. 그걸 다시 모아 하나의 순환 안으로 데려와요. 당신의 손끝 아래서는 버려지는 게 없어요. 흩어진 것들은 불에 들어가면 다시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된 것들은 또다시 깎여 흩어지고, 그 작은 세계는 그 반복으로 돌아가요.
어쩌면 당신이 다루는 건 은이 아니라, 흩어진 마음인지도 몰라요. 사람 마음도 하루에 몇 번씩은 은가루처럼 흩어지잖아요. 지나가는 말 한마디 때문에, 문득 스친 표정 하나 때문에, 멀리서 들려온 발자국 같은 기척 때문에요. 그럴 때마다 당신은 은 세공사처럼 손끝을 모으죠. 흩어진 마음을 조용히 쓸어 담아, 다시 불같은 자리로 들여보내고, 새로운 형태로 굳히는 일을 해요.
물론 그 과정이 늘 잘 되는 건 아니에요. 모으려 해도 모아지지 않는 조각들이 있고, 겨우 모은 가루들이 다시 흩어져버리는 날도 있어요. 그래도 그 모든 걸 포기하지 않아요. 흩어짐과 회복 사이에서 왕복하는 일 자체에 이미 충분한 의미가 있다는 걸 몸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불길 속에서 은이 녹아 흐를 때, 당신은 늘 잠시 멈춰요. 그 순간만큼은 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형태가 사라진다고 해서 존재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뜨겁게 흐르는 은은 잠시 모양을 잃었을 뿐, 이유까지 잃은 건 아니니까요.
그 흐름을 바라보는 당신의 얼굴엔 이상한 평온이 있어요. 마치 삶의 파편들이 잠깐 하나의 강이 되어 흐르는 걸 지켜보는 사람처럼요. 그 강은 금방 지나가지만, 지나간 뒤엔 다시 단단해진 덩어리가 손바닥에 내려오고, 당신은 그걸 바라보며 또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그 시작의 순간을 당신은 유난히 좋아하죠. 아직 아무도 모르는 형태가 조용히 숨 쉬고 있고, 어떤 선도 무늬도 없는 백지 같은 금속이 당신을 일으켜 세워요. 결국 당신이 붙잡는 건 완성된 모양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흐르는 시간이에요. 흩어지고 모이고 다시 흩어지는 그 리듬.
그래서 당신은 매일 작업대에 앉아 은가루를 털어내고, 다시 모으고, 다시 깎아요. 사람들은 당신의 완성된 작품을 보고 반짝인다고 말하겠죠. 그런데 당신은 알고 있어요. 그 반짝임이 결국 모아낸 잔해들의 총합이라는 걸. 흩어진 것들을 끝까지 되찾으려 했던 시간이 만든 빛이라는 걸.
어쩌면 이미 마음속으로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삶에서 반짝이는 것들이란 대체로 흩어졌다가 되돌아온 조각들에서 나온다는 걸요. 당신은 오늘도 그 조각들을 모으고, 그 조용한 반복 속에서만 들리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어요.
그게 아마 당신을 살게 하는 작은 믿음일 거예요. 흩어진 것을 다시 모으면, 또 한 번 시작할 수 있다는 조용한 믿음이요.
하늘이 은빛이에요.
그냥 그렇다고….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