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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Aug 31. 2023

이유많은 아마추어 생활

꽃과 사진

오늘 아침 오랫동안 벼르던 일을 했다. 카메라에 접사형 렌즈를 꽂고 마당으로 통하는 부엌문을 열고 나섰다. 아침에 온 비로, 아주 좋은 날씨는 아니지만, 생각을 실천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캐논 카메라 접사렌즈를 예전에 샀다. 그리곤 크게 사용하지 않았다. 렌즈중에서 저렴한 축에 드는 것이어서인지, 포커스 맞추기가 어렵게 느껴졌었다. 꽃들이 지기전에 한번은 담아봐야했다.


그랬는데 아니나다를까, 결과물이 좋지않았다. 이 렌즈 이름이 무엇인가? 하며 보다가 깜짝 놀랐다. 접사렌즈가 아니라, 살때 포함되어 있던, 사진사들이 "막무시"하는 렌즈를 달고 나갔던 것이다. 이름하여 18-55mm 표준렌즈는 오랫동안 쓰다가 빼어놓은지 오래된 렌즈이다. 


이런 내 정신, 카메라가방에 들어있는 접사렌즈를 생각해내곤 다시 바꾸어끼고 나가서, 똑같은 꽃들을 똑같은 포즈로 다시 담아왔다. 그래서 조금 달라졌을까? 이번 렌즈는 캐논 마이크로 35mm 단렌즈이다. 표준렌즈로 담아온 48장중 첫번 보기에서 12장이 남았고, 두번째 보기에서 7장이 남았다. 그것도 4장은 사실적으로 표현된 것이고, 그나마 살려둘 사진은 3장이었다. 두번째 단렌즈에서는 첫 43장 찍은 것에서 30장이 남았고, 이제 두번째 걸러내려고 하는중인데, 사진 앱이 멈추었다. 나의 맥컴퓨터 사진앱은 자주 얼어버린다. 그건 그렇고, 단렌즈에서는 적어도 마음에 드는 사진 한장은 건진 것 같다.




사진은 오랫동안 취미랍시고 가까이 두고 있다가 한동안 더이상 찍지 않았다. 핸드폰 사진이 편리하고 잘나와서이기도 하고, 열심히 챙겨다니는 것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었다. 찍는 것에 몰두하는 것보다, 현장의 분위기에 어울리니 자유로웠다. 그런데 최근에 동생으로부터 조카 결혼식 피로연 사진을 부탁받았었다. 난 못해!! 했지만, 크게 돈쓰고 전문가를 고용하고 싶지 않고, 결혼식 사진은 전문가가 찍은 것 있으니, 피로연 사진은 그저 "적당히" 찍으면 될것 같다면서 부탁해서, 나의 주문은 "실내촬영은 사진기보다 오히려 핸드폰이 잘 나올수 있으니 여러 사람이 같이 촬영한다면, 한번 해보겠다" 했었다. 사진기를 들었다 뿐이지, 보조 촬영을 한다는 생각으로 임했었다.


그랬는데 나는 농담으로 들었는데, 그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진담으로 들었는지, 멀리 시골에서 출장온 전문사진사로 내가 소개받고 나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소박한 자리이긴 했으나 공적인 자리여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중요한 순간을 담아달라는 당부를 내가 하지 못했고, 동생이 따로 부탁한 사람은 흘려듣고 찍지 않았고, 조카의 귀한 날이 감사해 열심히 촬영하던 동생이, 딸들에게 엄마가 너무 나대지 말라는 잔소리를 듣고는 주춤하는 등,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겹쳐있었다.


나는 피로연 가기전에 몇개의 동영상을 보면서, 이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나름 고민했다. 오래전에 누군가의 부탁으로 결혼식 보조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는데, 그를 위해 프레쉬까지 구입하고, 촬영했던 적이 있는데, 사진색이 누렇게 떴던 경험이 있는지라 그것이 큰 걱정이었다. 동영상의 사진강사는 굳이 프레쉬를 터뜨리지 말고 촬영하는 법을 알려주어서 이번에 그렇게 했다. 위에서 언급한 표준렌즈는 가져가지 않고, 10-18mm 광각렌즈와 50mm 단렌즈를 주로 사용했다. 강사가 추천하는 24-70mm 줌렌즈는 내게 없어서 그것을 검색했더니, 2천달러 정도의 가격이 나왔다. 나는 카메라에 대한 투자를 나의 한도까지 했던 지라, 그런 것을 구비할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런 부탁을 받으니, 그 렌즈만 있으면 도전해볼만 하겠다는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장내를 휘젓고 다닐 정도의 전문가의 마음도 없고, 이모로서 장난스럽게 임했던 자리였기 때문에 행사가 끝난후 제대로 된 사진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됐었다. 


사진을 로딩하고 꽃사진 지워버리듯, 포커스 안맞는 것 등을 몇개 지워버리고 주인공과 동생에게 보여주었더니, 좋아해줘서 다행이었다. 그러고나서 어설픈 사진사가 아니라 조금 더 잘하는, 그리고 필요하면 장비에도 투자하는 사진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조카의 결혼피로연, 애들아 소중한 가정 가꾸렴.


올해의 꽃은 실험의 산물이다. 지난 4월 꽃씨를 작은 종이컵에 심어놓고, 싹이 나는 것을 보면서 물을 조금씩 주라고 남편에게 부탁하고 한국여행을 갔는데,  실낱처럼 자라오르던 것들이 더 크지 못하고 죽어서 버렸다는 연락이 왔다. 루피너스 꽃씨였는데, 긴 아이스크림같이 생긴 그꽃은 그렇게 실패했고, 한국에서 돌아와 6월초쯤 땅에 직접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코스모스를 간격을 띄어서 심고, 죽은 나무밑동 근처에서 자라던 옥잠화를 다 파내고, 이곳에 알리숨을 심었다. 그것이 예쁘게 나고 있다. 또하나는 남편이 야생화 씨앗들이 든 씨앗 한상자를 샀다며 이것을 뿌려보자고 했다. 이름도 알수없는 씨앗을 뿌렸는데, 너무 많이 뿌려졌나 싶었다. "솎아내는 것"이 내게는 그중 하기 힘든 작업이다. 언제쯤, 어느만큼 솎아내야 하는지, 어떤 것을 해야하는지 등등, 커나가는 것을 "제거"해버리는 것이 마음에 불편함을 준다. 조금 솎아냈지만, 밑에서 못 올라오는 것이 많고, 자라는 것들도 비바람에 휘청이고 쓰러진다.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해서 그런것 같다. 내년에는 마구 뿌리는 것은 지양하고, 죽더라도 간격을 두고 심으리라 결심한다.


마당에 나가니, 양귀비꽃이 쓰러져있다. 그걸 뿌리째 뽑아서 잘라서 화병에 꽂았다. 꽃을 피우려던 봉우리가 있어서 좀 안타까워서 말이다. 며칠후 물을 갈아주고 밑동을 한번 더 잘라주고 나니, 몇시간후 꽃을 싸고 있던 외피가 떨어지고 빨간 봉우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씩 외피를 떨어뜨리고 꽃을 피우는 양귀비를 보면서, 뿌리가 뽑힌줄 모르고, 최선을 다해 생명활동을 하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본다. 이제 모두 잎이 떨어지고 버려야할 때가 왔다. 한지처럼 살짜기 주름잡힌 꽃이파리가 펴는 모습을 관찰하며 식탁에서 보내는 시간이 흥미로왔다.


8월 25일부터 8월 30일까지의 기록. 

우리집의 마당은 신경을 쓴다면 좋아질 일만 남은 상태다. 그 반대의 말도 통하긴 하겠다. 할일이 엄청 많은 그런 마당. 이제 1년차 이집 생활이니, 시간을 들이고, 품을 들이고 조금씩 시도해보려고 한다. 농사에 관심많은 언니의 도움도 받고. 나는 이번에 서산에서 사온 열무를 줄맞춰 심었더니 그것이 꽤 컸다. 이것을 수확해 열무김치를 담아야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상추와 고추, 그리고 깻잎이 먹을만큼 풍성하고, 토마토는 키워서 동네 다람쥐와 그밖의 작은 동물들의 먹이가 되었다. 딸기는 화분에 심었는데, 그것도 딸기의 잔해만 봤을뿐이다. 


아마추어의 삶, 전폭적으로 매달리지 않는 편의주의자의 삶이긴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전문가 소리를 듣고싶기도 하다. 그때를 향한 발걸음을 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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