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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May 28. 2024

다시 만난 "더 그렌"

바위길, 너를 찾아왔다

보여주고 싶었던 그 터널, 방공호라 불릴만한 바위길이 나타나지 않았다. 숲에는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 햇빛을 보려고 웃자라는 나무들로 빽빽했다.  곧게 자란 나무들 사이를 앞장서서 걸었다. 초반부터 조바심이 났던 건 아니다. 그러나 그전에 왔을때 길을 잃었던 적이 있었던지라, 아무리 가도 목표물이 나오지 않아, 이번에도 길을 잘못들었나 했다.


동행했던 분들은 숲속길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 보였다. 사실 그날은 산행에 최적의 날씨였다. 전날 30도 이상의 고온이 올랐던지라, 이날의 날씨는 의외였다. 세팀(부부) 모두 오랜만에 산행을 한다고 했다. 산행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그 길을 함께 걷게 된것만으로 충분히 가슴벅찬 일이었다.


우선 우리집 상황을 보자. 남편은 잘 걸으려고 하지 않았다. 걷고나면 엉덩이가 아프다고 했다. 무리해서 걷지않아야 된다고 해서, 산책도 최근에는 나 혼자 갈때도 많았다. 그런데 이번 산행은 남편의 제안으로 급물살을 타게 됐다. 나는 "The Glen"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그리움이 확 피어올랐다.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그곳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산행은 혼자 할수 없는 일이어서 그 꿈을 접고 있었나 보다. 

(The Glen Side trail : 178865 Grey Rd. 17, Shallow Lake, Ontario)


지리산에서 나무를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는 임교수님은 지리산 산소년이라고 부르기에는 머리가 희어져버린 골든 시니어지만, 표정은 해맑으시다. 베리 언니(사는 곳이 베리여서)는 "내가 과연 걸을 수 있을까?" 그 생각만으로 머리속이 가득하다고 했다. 본격 산타기에 들어가기 전부터 얼굴이 상기되고, 이마에 땀이 맺혀있다. 두분은 기대 때문에 잠이 일찍 깼다고 한다.


이번에 처음 얼굴을 뵙게 된, 블루마운틴에서 오신 활발한 두분은 능숙한 산사람의 자태가 있다. 예전에 10여년간 산행클럽 활동을 하셨단다. 그래서 그런지 전연 힘들어보이지 않고, 나들이 나온것처럼 가벼워보인다. 산행을 하면서 들꽃을 만나면, 나같은 사람은 "예쁜꽃이 피어있네"라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블마 언니(그분이 사는 지역 이름을 붙여서 이렇게 부르기로 하겠다)는 "어머 이꽃 정말 예쁘게 피었네"라고 말씀하시는 편인것 같다. 꽃들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말이다. 한국에 오랜만에 가서 샅샅이 보고오셨다는 두분은 많은 곳을 여행하신 은퇴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으신 것같다.


경사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평지라고는 할수 없는 산길을 차근차근히 올라가다가 전망대에 섰다. 더 그랜을 겨울에 주로 왔었기에 새순이 나오는 봄의 풍경은 처음이었다. 같은 전망대를 내려올때에 한번 더 들렀는데, 솔개들이 비행하고 있었다. 블마 김선생님은 솔개는 날개를 펄럭이지 않고 바람에 따라 비행하기 때문에 절벽같은 데서 많이 발견하게 된다고 일러준다. 그곳이 날개를 휘젓지 않아도 바람에 맡기는 비행을 할수 있는 곳이기에. 나이아가라 에스카프먼트의 한구간으로 절벽위에 우리가 서있는 것이다. 나이아가라에서 토버모리까지 이어지는 부루스 트레일에서 약간 벗어나면 더 그렌을 만날 수 있다. 


가다가 길이 두개로 나뉘면 어느쪽길인가 망설인다. 나만 빼고는 모두 걱정의 소리를 하지않는다. 남편은 잘가고 있다고 뒤에서 응원을 넣지만, "even if"를 읊조리는 나의 마음은 조금씩 타들어간다. 터널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주변을 돌고있는가, 의심이 들어 겅중겅중 앞서 나가보기도 하지만, 바위길은 좀체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블마언니에게 선수를 주면서 드디어 그럴법한 입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 다시 간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그 길을 찾아 두리번하게 될것 같다. 달리 길치겠는가? 그 바위길이 나오자, 나의 임무는 다한듯 마음이 놓인다. 우리가 처음 그 길을 만났을 때 감탄했던 것과 같은 그런 탄성이 바위 사이에 속속이 배겨든다. 잠시 맛만 보게 하는 정도의 짧은 길이 아니라, 누군가 일부러 그 길을 만든 것처럼 천연 방공호가 이어진다. 이끼와 작은 풀이 매달린 바위사이에 난 편편한 길은 수레 하나를 끌수 있을것 같다.



방공호라는 말은 블마 김선생님이 무슨 말인가 하다가 하셨다. 산행을 하면서 방공호로 쓰면 좋을 곳을 만난 적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빨치산, 이건 나와 베리언니가 산마늘 찾아 헤매던 날에 갑자기 떠오른 이미지라면서, 베리언니가 언급했었다. 아, 맞아요. 그곳이 바로 방공호같아요, 빨치산이 살만한, 하면서 뒤늦게 맞장구친 나. 이것들이 만나서 꼭지점이 있는 이야기가 완성된다. 마치 트레일처럼. 한길로 갔다가 한길로 돌아나오던지, 빙빙 돌아 나오던지, 꼭지점을 찾아 나와야 한다. 


이 바위길은 "더 그렌" 트레일을 특별하게 만든다. 하늘이 열려있어서 밝지만, 사방이 이끼낀 바위가 막고있어서 지붕만 덮는다면 큰 방공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그날의 빨치산이 되어 헤맨다.


오는 길에 보니, 다 자란 고사리가 즐비했다. 그중 몇개는 이제서 올라오고 있어서 꺽고싶은 마음을 자극한다. 내년 봄에 다시 한번 와야한다고 눈도장을 찍게 만들었다. 고사리뿐 아니라, 취나물도 많았다. 그리고 블마 언니에게서 배운 것 하나는 자작나무에 붙은 버섯은 모두 안전하다는 사실.  잘자란 자작나무 버섯 몇개를 스틱으로 탁 쳐는 따는 블마 김선생님의 전문가적인 모습을 본다. 그걸 잘 썰어서 말려서 차를 끓여먹으면 좋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먹을 것이 천지이니 방공호로 손색이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야말로 큰일날 일이니, 이쯤에서 상상은 접기로 하자.


바위길이 거의 끝난 곳쯤에서 싸가지고온 점심을 함께 먹었다. 블마팀은 그동안 몸담았던 산행클럽에서 많은 산행을 하셨다고 한다. 교민 신문사를 도와서 토버모리 국립공원 산행때는 교민 150여명이 참여했는데, 산행 가이드를 하셨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산행 리더의 조건으로 쉴곳을 잘 찾는 것을 꼽았다. 그분들 덕에 미숙한 가이드가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곳곳에 크레바스라고 부를 수 있는 벌어진 틈이 보였다. 겨울에 올때는 꼭 스틱을 가져와서 가기전에 밟을 곳을 찔러봐야 한다. 



블마언니는 산행은 좋지만, 두명만 다니는 것은 절대 반대한다고 말한다. 젊음의 나이가 아니기에 어떤 문제가 벌어졌을때, 수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임교수님은 나의 글쓰기 전성기(?)때를 기억하신다. 지금도 잘쓰고 있는줄 아신다. 브런치로 옮기고 글쓰기에 진심인 많은 사람들앞에서 주눅 들고, 진심을 다하지 못해 나의 글쓰기는 뱀꼬리가 되어있다는 말씀을 드리지만, 처음 만나는 두분께 과대포장해서 소개해서 몸둘바 모르겠다. 절벽위에 앉아서 함께 이야기했던 그 시간, 공기의 색, 맛, 방향을 잘 서술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 이야기는 글에 실어도 좋소, 하면서 해준 이야기는 여자가 결혼해오면 동네의 이름을 따서 서산에서 살다온 이면 "서산댁"이라 하는데, 그것의 의미는 동네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는 의미가 있다고 하신 다음, 그렇다면 같은 동네 처자가 동네 남자와 결혼하면 어떤 이름으로 불렸을까, 우리에게 질문하셨다. 대답도 물론 임교수님이 하셨는데,  한동네 사람이란 의미로 "한동댁"이라 불렀고, 또 다른 처자가 있으면 어떻게 했겠느냐, 물어서 "또 한동댁" 등 우리가 대답하자, 그건 아니고 다시 "재"를 붙여서 "재동댁"이라 불렀으며, 세번째 여인에게는 "본동댁"이라 했다고 하신다. 그분은 "한동댁" 이렇게 말하지 않았고, "한동때기"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이와같은 대화로 모인 우리들의 연배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공통의 화제를 끌어내기 어려울때 이렇게 뜬금없는(?) 이야기로 말줄기를 터주니, 말하기의 전문가다우시다. 나는 이런 풍경에 같이 있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번 일은 우연이 아님을 아는 사람은 안다고, 마음이 초조해 기도했던 그 기도가 이뤄졌음에 감사기도를 드린다. 누군가는 나와야 볼수 있는 하나님의 작품이라며. 골방에 있는 이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던 것도 같다. 



걸어내려오면서 두 언니에게 한국에서 살고싶은지, 물어봤다. 이건 나의 단골 질문이기도 하다. 베리언니는 언제나 가고싶은 곳, 살고싶은 곳이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아서 실현될 가망성은 없다는 이야기를 했고, 블마언니는 이번에 오랜 기간 있다 왔는데, 한적한 캐나다살이가 더 좋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한번쯤 한국살이를 한두해 해보고싶다고 이야기했다. 모두가 다르지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한다. 그렇게 긴 산행을 끝내고 가까이에 있는 우리집으로 가자고 했더니, 모두 고개를 흔든다. 


찻집에서 티를 마시고 마무리를 하자고 해서 내가 양보하기로 했다. 실외에 있다가 실내로 들어가는 것이 내키지 않기도 한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겠지. 차를 주차했던 오웬사운드 보호구역 정원에 야외의자가 있어서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해놓고, 남편과 음료수를 테이크 아웃하러 갔다. 임교수님이 아이스크림을 주문해서 맥도널드로 향했다. 아이스크림과 커피, 프렌치 프라이, 애플 파이 등을 픽업해서 갔는데, 잠시 운전하는데 아이스크림이 사정없이 녹는다. 야외의자에서 기다리시게 한건 나의 아이디어였는데, 잘못된 결정인 것 같았다. 에어컨 나오는 맥도널드로 와도 되는 것을. 정신없이 내달려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핥아먹으며, 넘 나대지말자,고 다짐한다. 


이 자리에서 베리언니는 제안을 했다. 하이킹을 한다 생각하니 너무 설레고 좋았다. 오늘 완수하지 못할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남편은 그런 말 내색하지 말라고 했지만, 매주 만나서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떠신가, 하면서. 나와 남편에게는 조금 익스큐즈를 허용해주었다. 빡세게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하는 사람들이므로. 세집이 사는 곳이 그다지 가깝지 않다. 일직선에 뻗어있기는 하지만, 우리집에서 블루마운틴까지 1시간 이상, 블루마운틴에서 베리까지 1시간 이상 걸리는 곳이니 매주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겠는가? 가장 연약해보이는 베리언니가 그런 제안을 하자, 모두 흔쾌히 동의한다. 블마언니는 산행은 최소 4명은 함께 해야 하니, 아주 좋다고 하면서. 


새롭게 구성된 산행팀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다. 우리는 한달에 두어번 참석하면 좋을 것같기도 하다. 베리언니 말대로 이렇게 정해놓으면 조금 더 책임감을 갖고 움직이게 될것이고, 지금은 그래야 할때인 것 같다.


아, 모두 예상보다 잘 걸었다. 걷기 힘들때 기어서라도 가겠다는 의지로 면손장갑까지 마련해온 베리 언니는 이정도면 걸을만 하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게서 터졌다. 전에 신던 하이킹 부츠가 밑에 튿어지기 시작해서 이번에 한켤레 구입했는데, 그게 내발과 맞지 않는듯싶었다. 나중에 왼발이 걷기가 힘들어졌다. 왼쪽 발목과 오금다리 부분, 새끼발가락이 많이 아팠다. 한번 사용한 운동화를 바꿀 수는 없을 거야, 그런 마음이었는데 이게 너무 억울했다. 잘 닦아서 용기를 내어 캐네디언 타이어에 가져갔다. 새끼발가락이 아파서 신을 수 없다고 했더니, 아무말 없이 바꿔줬다. 너무 감사했다. 쓴 것을 다시 바꾸는 쾌거를 이룬 이번 산행, 남는 게 많았다. 


"The Glen"은 유명해질 것이라고 예언한다. ^^

그날 산행을 마치고 나왔을때, 밖에 서있는 차는 우리 차밖에 없었다. 들어갈 때는 서너대쯤 있었던 것 같은데. 평일이긴 했지만, 주차장도 길가에 최대 10여대를 주차할 공간이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지역이 아님을 알수 있다. 더 그렌은 갈때마다 감탄을 한다. 그 감탄이 내게서 끝난 게 아니었음을 이번에 알았다. 그곳에 있어줘서, 있어줄 더 그랜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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