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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Jul 04. 2024

발견

이세상은 보물로 가득찬 창고

보솔레이 섬을 두번째 찾았을 때는 헤매지도 않고, 익숙했다. 남쪽으로 가는 배는 2대나 기다리고 있었다. 한배에 10여명 정도 타니, 한번에 20여명의 방문자가 있는가싶다. 남쪽 섬도 다 돌아보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우리는 섬의 허리를 가로질러 서쪽 해안가 크리스천 비치로 갔다가 보솔레이 포인트를 찍고 다시 올라오는 경로를 선택했다. 


숲을 가로지를 때는 모기때문에 힘들었다. 모기약을 바르고, 무장했지만 모기들은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가는 내내 가지고 있는 무엇으로라도 흔들어 모기가 살을 뚫지못하도록 방어했다. 


드디어 서쪽 해변에 도착했을때 그곳에 정자아래 피크닉 테이블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약손님을 기다리듯이, 물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아주며 선선한 호숫바람까지, 모기에 쫓겨온 우리들에게 쉼을 주었다. 그 정자는  캐빈 캠퍼들을 위한 것같았다. 마침 숙소가 비어있어서 우리들에게 안성맞춤의 장소가 되어주었다. 시원한 그늘에서 바람을 맞고 있으니, 걷느라 흘린 땀도 날아가고, 나중에 선뜩해져서 주섬주섬 일어나게 되었다.



보솔레이섬의 호숫가와 섬에서 바라본 풍경들


가이드는 보솔레이섬이 국립공원 역사유적지(Beausoleil Island National Historic Site) 중 가장 작은 국립공원에 속한다고 했다. 그 작은 곳을 2주에 걸쳐서 왔지만, 아직 몇번은 더 와야 다 볼수 있을 것 같다. 가보지 않은 길이 궁금하다. 이곳에서 캠핑을 하면서 즐기는 방법도 있겠지만, 곰과 뱀이 있다고 하니 캠핑하기엔 조금 겁이 난다. 해변에서 곰발자욱 비슷한 것을 찾아내기도 했다.


공원내에 있는 캐빈


돌아가는 길, 지난주에는 너무 일찍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시간내 도착하느라 땀깨나 흘렸다. 배에서 내려, 그날 가봐야 할 곳이 한군데 더 있었다. 꿀 선착장(honey Horbour)에 올때 가장 눈에 띄던 제너랄 스토어를 들려야 한다. 공부파인 배리 선생님은 그 스토어의 주인이 한국사람인 것을 알아내셨다. 우리들에게 제너랄 스토어 사연이 담긴 작은 책자를 주어서 훑어볼 수 있었다. 나머지는 주인과 만나 이야기하면 깊은 속얘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 했는데. 


그 가게는 꽤 넓고, 많은 것을 취급하고 있었다. 작은 동네의 미니백화점이라고 할까. 커피와 요깃거리도 팔고, 앉아서 먹을 수 있게 테이블도 있었다. 하드웨어 제품과 옷까지. 주인과 약속하고 온 것은 아니니 못만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일하시는 분이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말한다.


어느 마을에 가든 편의점을 찾아가면, 한국인인 경우가 많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말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찾아가기 전에 한인이 주인인 것을 알아낸 것이 너무 신기했는데, 그것은 학구열이 유별난 그분이 있기에 가능했다. 지난주 팀호튼스에서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관광안내 책자중 카테지 잡지에 소개된 내용을 읽으신 것이다. 섬안에, 섬밖 물가에 자리잡은 카테지를 소개하는 그 잡지에는 올 시즌, 새롭게 문을 여는 그 제너랄 스토어의 사연이 담겨있었다. 그 내용이 짠했다.


우리중 누군가의 이야기였다. 짧게 말하자면, 1982년 100달러를 들고 이민온 가정의 가장이 은퇴까지 일할 장소로 이곳 제너랄 스토어를 사게 된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부탁으로 상점을 사기전 이곳에 들렀고, 자신도 이 마을과 가게가 마음에 들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가게문을 열려고 오는 길에 쓰러져서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다. 아버지의 꿈을 실현하고자 아들이 이어받아 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그 아들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한국인 부모들은 자신들의 생업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경우가 많지 않다. 물려받고 싶어하지 않아서,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부모의 꿈은 아이들이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 제너랄 가게처럼 내가 아는 몇몇 가정도 부모를 도와 일하는 자녀들이 눈에 띔은 다행이다. 그들은 이민1세들보다는 더욱 일을 잘할 것이다. 우리가 가게를 팔때 대니얼(인수자)과 매디도, 호기심으로 물어본다며 왜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느냐는 말을 우리들에게 했었다. 욕심을 내는 자식이 있었다면 한번쯤 생각해봤으련만. 편의점 경영에 대한 철학과 자긍심, 이런 것들이 미진했다 싶다. 많은 좋은 기억들을 만들어준 귀한 생업의 현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연냄새가 밴 소풍팀과 주변의 분들과 함께 모이는 자리가 우리집에서 급격히 마련됐다. 며칠새로 일사불란하게 마음을 맞춰, 모두 만나게 된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모두를 아는 사람은 우리 부부였기에 나는 중간에서 약간의 의식적인 진행을 해야했다. 12명이면 잘못하면 중구난방, 혼란속에 모임이 끝날 수도 있어서 말이다.


나는 그날 아침부터 5시까지 일해서 짬이 없었다. 음식은 주문도 하고, 한접시씩 가져오기도 하고.  모두 협력해서 어려울 것이 없었다. 식사는 남자들끼리, 여자들끼리 나눠서 했지만 디저트 타임에는 모두 둘러앉아서 모르는 사람들을 알아가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날은 서로의 향기를 진하게 느끼게 됐다. 모두가 그 아름다운 향기에 자신의 향기를 보탰다. 지금은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기회가 된다면, 그분들의 이민여정을 한분한분 따로 담고싶기도 하다. 


우리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동의했던 건, 이런 모임이 참으로 오랜만이라는 점이었다. 이민와서 처음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런저런 상처들로 인해서 만남이 뜸해지게 되는데, 그에 더해 코로나로 인해서 그런 만남은 자취를 감추게 되어버린 것같다. 나만 그런가 했는데, 사실 모두 그런 여파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소모임은 있지만, 이렇게 모르는 사람까지 낀 큰 모임은 꽤 오랜만이라 했다.


디저트로 내놓은 "감"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단감, 야채 파트에서 일하는 사람의 어깨위에 감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 1주일은 됐던 것같다. 분명히 진열이 되었을텐데, 가게에서 그 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며칠간 찾다가 내가 헛것을 봤나 했었는데, 모임을 앞두고 과일을 사려고 헤매는 중, 전에는 찾을 수 없었던 단감상자가 보였다. 아마도 며칠전부터 그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이제서 내눈에 띄었을뿐. 꽤 잘생긴 큰 단감을 두 상자를 샀다. 단감은 우리들을 위해 발견되었다,고 그날 나는 흥분해서 말했다.(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야채담당자에게 한번 물어봤으면 더 빨리 알았을 것을)


발견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발견된 것처럼, 숨겨진 많은 것들이 발견될 것이 남았다. "발견"을 우리의 화두로 끌어낸 배리 선생님의 말씀처럼, 자연과 사람을 발견하는 일에 흥미를 잃지 않는다면, 이세상은 발견할 것들로 가득찬 보물창고가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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