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한국어?

있는 것은 시간뿐이라...

by mindy

살면서 미뤄두었던, 혹은 가능하면 피하고 살고 싶었던 것들이 어느 날 고개 들고 나타난다. 그러면 보일 때마다 더욱 깊이 밟아준다. 여러 가지 합리화의 옷을 하나씩 겹쳐 입는다.


어느 날 밟는 것도 힘들어지고,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어질 때가 온다. 그러기 전에 미리 했다면, 삶이 오래전에 달라졌을 것을 인정하면서, 늦음이란 건 없다고 자신을 토닥인다. 그 최전선에 서있는 것 중 하나가 "그놈의 영어"다.


내게 수많은 날과 시간과 분과 초가 생겼고, 더 이상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 나라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 언제나 마음에 걸림돌이 되었다. 특별히 함께 온 자매들은 고등학교로부터 시작해서 공부들을 했기에,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공부는 스스로 찾아먹는 것이다. 밤이든, 새벽이든 간절했다면, 이곳에서 꿈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았을 것만 같다. 후회를 만들지 않는 삶을 모토로 살아왔지만, 어떻게 보면 후회 투성이다. 다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뜸 들이는 시간이 길었다고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이민 초기에 선배들로부터 그런 인상을 받았다. 이제는 영어 좀 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민망한 모습, 우리를 초대한 큰 형부는 우리 앞에서 내 영어가 서투르다, 하면서 자백하기도 했었다. 그때는 그 모습이 내 모습이 될지는 몰랐다.


원하는 공부를 칼리지에서 하게 되면, 영어는 덤으로 얻지 않을까, 기가 막힌 방법을 찾기는 했다. 그런데 무엇을 공부할까 하는 것이 잡히지 않는다. 이곳 칼리지에서 제공하는 코스가 제한적이기도 하고. 나중을 위해서 여행 관련(숙박업 포함)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지만, 관련학과를 인터넷으로 찾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칼리지에서 공부하는 것은 모양이 그럴싸하게 나를 포장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 그걸 따라갈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우선은 영어를 하고 나서 무엇을 하더라도 그때 가서 결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교육청에 직접 알아보려고 했다. 교육청 웹사이트에서는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 공부를 원할 때 Adult Learing Centre로 연결이 되게 되어 있었다. 그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전화가 연결되기까지 몇 주가 걸렸다. 새롭게 시작하는 일은 그리 쉽게 정착이 되지 않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되새긴다. 전화를 받은 여인은 나를 YMCA의 영어공부 코스를 연계해주려고 했다. 내가 이민 온 지는 오래되었고, 제대로 된 공부를 이곳에서 해본 적이 없어서 고등학교 영어코스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니, 자신에게 찾아오라고 했다. YMCA는 새로 정착한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곳은 도서관 큰 건물의 한쪽에 있었다. 도서관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다른 도로 쪽에 인접해 있고, 작은 입간판이 있었다. 반지하에 위치해 있어서 조금 외진 느낌도 들었다. 두꺼운 나무문을 두드리고 열고 들어갔다. 두 명의 여직원이 있었다. 사무실 가운데에 적당한 크기의 책상이 있다. 마주바라보이는 곳에는 유리문으로 된 큰 회의실 모양의 방이 보인다. 뒤쪽으로 또 나갈 수 있게 되어 있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 그쪽이 보이지 않는다. 규모를 짐작하지 못하겠다. 학교는 아니고, 임시 학생들을 모아서 적당한 곳으로 재분배하는 그런 작업을 하나 싶다. 나와 만나기로 한 직원이 나를 책상으로 인도한다. 성인교육센터라고 말하기로 하자. 그녀는 나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뒤,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온타리오 교육청에 내 이름이 올라갔다. 성인교육센터의 학생으로.


그녀는 나 혼자 풀 수 있는 영어문제지를 복사해서 갖다 준다. 나의 수준을 알아보려는 것 같다. 그날 처음 그녀와 1시간 공부하고 나서, 다음 주 약속을 하려던 찰나, 자신은 휴가라면서 한주 빼고 그다음에 오겠느냐고 말하는 순간, 뒤편에 앉아있던 또 다른 직원이 자신이 그 시간을 맡아주겠다고 해서, 그리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 1:1 만남인데, 이것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다. 틀린 대답이 있으면 찾아서 교정해 주는 수준인데, 내가 생각한 학습방법이 아니어서 지금은 과도기가 아닌가 싶다.


영어 공부에 관한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김민식 PD의 글을 읽었다. 그가 영어를 깨우친 방법을 자신의 삶을 설명하면서 말하는 책이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영어 문장을 완전히 외워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권고대로 그가 책 부록으로 실어놓은 30과에 해당하는 영어 대화를 외워보기로 했다. 100일에 걸친 과정을 잘 끝마치면, 그가 한 말이 맞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 일에 항상 만나는 두 언니들을 끌어들였다. 100일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말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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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만 문제겠는가?

한국어도 문제이다.


나의 한국어는 보통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하지만, 한국에서 국어국문학과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는 한글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교포엄마이다. 이것도 합리화로 인한 두꺼운 외피를 너무 많이 겹쳐 입고 있어서 무겁다. 한국에 있는 큰애는 이제 잘못된 글자를 고쳐주면 피곤해서 오타가 난 것이라고 항변할 정도로 한국어가 늘어서 다행이다. 이제 막내가 우리와 함께 하니, 조금이라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다. 막내뿐 아니라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좀 있을 것도 같고, 내가 할 수 있는 보람 있는 일중에 하나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르치는 것이 내게는 가장 힘든 일이다. 국문학과를 나왔다고 스스로 말하면서, 국어학은 내팽개쳐두었다. 국어학을 모르는 것도 우선 문제이지만, 누군가에게 지식을 습득하게 가르치는 것을 포기한 것은 나의 교생 때였다. 대학 4학년 때, 나는 자긍심이 부족했고, 실력이 달렸고, 교수법을 몰랐다. 학생들이 내게는 어려웠다. 그리하여 교생을 한 후 교사는 될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 길을 더 찾지 못했다. 출판사에 같이 근무하던 분의 소개로 한 사립학교 교사 자리를 알아봤던 적이 있다. 약간의 돈을 내면 교사가 될 수 있다는 막판 언질까지 받았고, 그렇게 되니 "돈을 내면서까지?"라는 생각에 교사는 할 수 없는 직업이 되었다. 공립 순위고사에서 통과를 하지도 못했고 말이다. 그리고 출판업에 일하다가 캐나다로 오게 되었다. 교생 때를 제외하곤 써먹지 못한 나의 "교원 2급 자격증"이 최근에 생각이 났고, 마지막으로 써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갑작스러운 소명감을 갖게 됐다. 쓸만한 자격증을 갖지 못했어, 자책하던 내가, 퀘퀘묵은 자격증을 찾아내 가슴에 안아본다.(한글학교 교사는 교원자격증이 필수항목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의 낙천성은 여기에서도 완전히 나타난다. 지금 한번 준비해 보고, 필요해지면 사용할 수 있겠지, 라면서 한국어학교 연합회에 연락해 봤다. 20여 명의 학생을 모으면, 교육청에 신청해 보고 그때가 되면 자신들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우선 어떻게 가르치나, 그 부분이 중요한데 그것은 내가 스스로 알아봐야 하는 것 같았다.


인터넷을 헤매다가, 누리 세종학당을 만나 분위기 파악을 하고 있다. 세종학당 선생이 아니더라도 교사로 아이디를 만들고 안에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었다.


이 작은 도시에는 한국어 학습을 하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

나의 영어가 조금 더 자연스러워지고, 그러는 동안 한국어 교습법도 좀 익히고 나면, 원하는 한두 명에게라도 강습을 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배울 수 있는 길이 수도 없이 열려있는 인터넷 환경이라 할지라도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제대로 된 길을 들었는지는 일단 시작해봐야 하는 것 같다. 이럴 때 나의 가장 큰 무기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방패막이다. 영어습득도 한국어 교사 수련도 어떤 길에 도달하게 될지 모르겠다. 내게 있는 것은 "시간"이니, 그것만큼 확실한 자산은 없다고 본다. 밀려서 하는 공부가 아니고,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니 이제야말로 학생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어째, 매일매일 어려지는 느낌이다. 모습은 늙어가는데 말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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