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일터, 몇가지 기억들(1)
처음 일을 시작한 2022년 11월은 코비드가 막바지였고, 마스크를 벗기 시작할 때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막아섰던 플라스틱 가리개도 운영자의 선택사항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일하던 곳은 가리개를 걷어내어서 답답함이 없었다. 그리고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썼다. 그때 함께 일했던 캐리는 마스크를 쓰고 일했는데, 내가 나올때까지 그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감기 걸린 사람을 빼고는 더이상 마스크를 쓴 사람이 없는데, 그녀는 언제나 마스크를 쓰고 일했다. 그래도 의사소통이 안될 때는 마스크를 내리고 이야기하기도 해서, 그녀의 얼굴을 알고는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이는 그녀의 아들, 가게 총괄 매니저 레인에 대한 것이다. 모자가 모두 마스크를 썼다. 일하는 3년3개월간 그의 얼굴엔 마스크가 항상 쓰여있었다. 그가 마스크를 썼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떠올린다. 쌍꺼풀이 있는 눈밑으로 가려져있는 얼굴에 언젠가부터 나만의 그림을 그려넣었던가 보다. 그러던 어느날, 함께 휴게실에 있을때 그의 마스크 벗은 모습을 봤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그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를 볼때마다 그의 본모습보다는 내안에 간직한 그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그 얼굴은 현존하는 누구의 얼굴인지, 드라마에서 본 얼굴인지 지금도 파악이 안된다. 너무 명확한 얼굴과 표정이 있어서 글을 쓰는 지금도 고개를 흔든다)
나의 그런 의문의 시선을 그는 느꼈겠지만, 절대로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몰랐을 것이다. 이제 그 장소를 떠나오면서, 간신히 그사람의 진짜 얼굴을 그려볼 정도가 됐다. 내안에 만들어진 형상은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어느 부분을 감추고 싶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고, 상대방은 스스로 만든 허상을 보면서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보여지는 사람과 감추어진 사람 사이에 큰 간격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레인과 캐리 그들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아참 캐리는 강아지를 부르듯 나를 불렀다. "헤이 민~~" 이것 좀 도와줘 하면서. 그녀만이 나를 "민"으로 불렀고, 검지 손가락을 까닥이면서 불렀기에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좀 기분 나쁘기도 했지만, 그런 뜻이 아니었던 것을 알기에 그러니라 했다. 아마도 내가 없어서 가장 곤란한 사람은 캐리가 아닐지.
벡키! 그로서리 매니저랑 미트(고기) 매니저랑 이름이 같잖아. 라스트 네임이 뭐야, 기억을 못하겠어 라고 물었다. 그녀는 큰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본다. 거침이 없어보이는 멋장이이기도 하고, 어떨땐 자다가 나왔나, 묶은 머리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기도 한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이다. 꾸미면 할리우드 여성처럼 멋질 것 같은 키큰 그녀는 영수증 페이퍼를 잘라내, 라스트 네임을 적어준다. 그러면서 그런데, 이렇게도 불러 그로서리 매니저는 "asshole1" 미트 매니저는 "asshole2"라고 말이야. 나도 asshole이 욕인 것쯤은 알고 있다. 그후로는 그들만 보면 웃음이 난다. 근엄하게 생기고, 일하는 사람에게 싫은 소리도 마다않는 미트 매니저, 찬찬하지만 어쩐지 사무적인 면이 많은 그로서리 매니저를 일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고 하니, 이 일터가 인간적인 냄새가 나고 즐겁게 느껴진다.
앤은 내게 물었다. 그만 두는 이유가 진짜 뭐야? 나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속마음을 조금 비쳤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시간을 갖고 싶어서라고 둘러댔지만. 딸이 집에 들어왔는데, 조금 아파. 그녀를 돕고 싶기도 하고. 앤은 그래, 자식은 언제나 어린애지. 나는 그러게, 나 스스로도 때로는 어린애같다는 생각을 하긴 해, 라면서 웃음으로 마무리했다. 일하는 사람과 긴 이야기를 할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가 쉽지않다. "손님 우선" "직원들끼리 잡담 금지" 분위기에서, 한국어도 영어도 어눌한 나같은 사람은 잡담을 하라고 해도 기회를 찾지 못한다. 떠날때쯤에서야 조금씩 말문을 튼다. 앤은 그날 일을 끝내면서 내게 가게에서 파는 장미꽃 한다발을 줬다. "너는 나의 최애 직원이었어"라고 립서비스를 해준다.
위니펙에서 이주해 온 청년 제라드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10여개의 쇼핑 바스켓을 한손으로 들어나르는 힘센 사람이다.(바퀴달린 바스켓 홀더를 거들떠도 안본다) 과체중이라고 할까. 그가 입은 회사 유니폼 더블 엑스트라 라지 사이즈 T셔츠는 바스켓을 들 때마다 올라가서 출렁이는 뱃살이 나온다. 머리카락이 힙합가수처럼 꼬불거리고, 그걸 묶기도 했다가 풀어헤치기도 한다. 계산을 끝내고 가는 80대 할머니에게 "파티 너무 하지 마시구요"라고 말해서 할머니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한참을 생각하다가 웃는다. 위니펙보다는 이곳이 훨씬 안전하고 괜찮다고 말한다. 위니펙에서는 싸움이 나면 총을 들고 쳐들어오기도 한다고. 정말로 그런지 과장해서 말해서 그런지 사실 관계는 모르겠지만 이곳 다운타운에 많은 노숙자들은 위협적이기보다는 이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느냐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도 했다.
캐쉬어가 아니고 다른 파트에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각별했던 코리에게 이별을 이야기했다. 휴게실에서 만나면 초코렛 하나라도 권했던 그이기에 너와 함께 일해서 좋았다,고. 내가 처음 들어올 때 17년 되었다고 하더니, 나갈 즈음에 곧 있으면 이 직장에 있는지 21년이 되어간단다. 뇌수술로 얼굴에 표정이 나타나지 않는 뚱한 표정을 자주 지어 처음에는 화가 났는가 했다. 조금 남들과 달라보이는 그와 함께 앤드류도 나의 떠남을 서운해했다. 나보다 조금 늦게 들어온 그 역시 평범하지 않다. 어떤때는 머리를 감지 않아서 비듬이 수북이 떨어져 있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타다가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기도 했었고. 그러면서도 꾸준히 열심히 일하는 직원중에 하나다. 손님이 나가면서 "Have a good day" 하면 앤드류는 "You as well" 이라고 대답한다. 나는 등뒤로 그의 인사를 들을 때마다 나도 저말을 써야지 했지만, 지금까지 그게 안됐다. 나의 대답은 "You too"였다. 무엇이든지 짧게 단순하게 살아온 것이 인사에서도 드러난다. 이 세명의 남자들은 자신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사는 중이다, 그들의 삶을 소설적으로 해석하며, 꼭 부모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게 된다.
나도 슈퍼바이저가 될뻔했다. 캐쉬어 오피스에서 일하면서 매니저를 돕고, 매니저가 없을때 전반적인 일을 해결한다. 들어가서 몇달이 지난후 슈퍼바이저 제안을 받았을때, 사실은 그것이 슈퍼바이저인줄도 몰랐다. 현금통(Cash till)을 가져가서 중간 계산을 하고, 아침에 전날 현금이 제대로 들어와있는지 계산해서 일을 시작하게 하는 것등의 일들이 있다. 오피스일에 대해서, 예전에 한번 쓴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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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내가 실패했기에, 슈퍼바이저들을 보면 존경하는 마음이 든다. 그 일은 젊을수록 잘하는 것 같다. 거린과 소피아가 그렇다. 거린은 인도에서 온 젊은 처자로 코빠뜨리고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뭐하고 있니?"라고 물어서 웃음을 자아낸다. 오늘도 매니저에게 전화를 해서 바꿔달라고 했더니 내게 인사를 건네며, 바꿔줄 수 없다고 한다. 나를 웃기기 위해서다. 한국드라마를 좋아한다. 본인은 석사학위까지 있는데, 직업이 구해지지 않는단다.
소피아는 필리핀에서 왔다. 내가 소피아에게 내일 모레가 나 마지막날이야, 라고 말하려는데, 한국 인천공항에 가면 쉴만한 공간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럼, 그런데 왜? 한국에 가려고? 했더니, 필리핀으로 아주 돌아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국 공항에서 19시간을 쉬었다 가는 비행기편이라면서. 그녀의 이야기인즉슨 아이들 셋을 고국에 남겨두고, 캐나다에서 삶을 살아볼까 왔는데 워킹 비자가 만료되어서 돌아가게 됐단다. 남편은 2년 되었는데 더이상 연장이 안된다고 덧붙인다. 캐나다가 이민법이 강화되어서 여러 방법으로 노력했지만 실패해서 돌아가는 수밖에는 없다고 말한다.
나는 나도 이번에 그만두게 되는데, 내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네가 그렇게 되었다니 정말 유감이라고 말했다. 소피아는 조용히 소비자와 캐쉬어들의 문제들을 잘 해결해서 일을 잘한다 생각하고 있었기에 좀 충격이 되었다. 회사에서도 아무런 것도 제공해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눈밑이 까맣게 다크 써클이 그려져있다. 남편은 맥도널드에서 일하는데, 마찬가지라면서. 식품점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쉘리, 눈이 마주치면 언제나 함박웃음을 주었던 그녀도 함께 떠난다고 했다. 아마도 필리핀에서부터 함께 온 친구들이 아닌가 싶다. 밖에서 한번 보자, 했지만 그리 되려나 모르겠다. 언젠가 다시 캐나다로 오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떠남은 떠남도 아니라는 생각이 소피아를 보면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