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일터 몇 가지 기억들(2)
참는다. 세 번의 스캐닝만 끝나면 된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답답하다.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손님 앞에서 그를 향해 소리공격을 하고 싶지 않다. 기침은 식료품을 주고받는 데 있어서 최악의 불결한 행동이다. 손님 앞에서 참을 때, 그 몇 분이 괴롭다. 어느 날은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침이 연달아 나온다. 그런 날이 오면, 아무래도 그만 일해야 하나보다 또 마음속에 다짐하게 됐다. 팔목으로 입을 가리며, 소리를 줄이고, 침을 막아내지만, 코로나 이후로 기침은 하나의 죄악이 되어서 어깨가 움추러든다. 이 기침의 원인을 알 수가 없다. 환경이었는지, 심리적인 것이었는지, 신체적인 어떤 기관의 잘못인지 말이다. 기침의 원인을 이모 저로 로 생각해 보던 중, 너무 일하는데 몰두해서 거의 숨을 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병원 대기실에서는 잘 기다리는 사람도, 그로서리 줄에서는 단 몇 분도 허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또한 캐쉬어가 기침을 하느라 일을 못하면, 줄에서 기다리다가 제 차례가 온 순간, 또 한 번 발목을 잡게 되니, 참기 힘들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손님만 보내고, 속으로 다짐하며 기침을 오지게 참는다. 물을 마시면서, 사탕을 주머니에 넣고 하나씩 까먹으면서 기침을 다독이면서 지난 시간들을 견뎠다.
주류를 식품점에서 취급하게 되면서 스마트 서브 취급증이 있는 사람이 항상 배치되어야 한다. 밤에는 주로 고등학생들이 일하기 때문에 나이 제한으로 스마트 서브 취급증이 아이들에게는 없고, 저녁에 일하는 것을 많은 캐쉬어들이 좋아하지 않아 나는 단골 밤근무에 당첨되곤 했다. 작년 11월경이던가, 일광절약제가 끝나면서 밤시간이 길어지고, 사람들은 저녁 6시 이후에는 발길이 뜸해졌다. 손님은 뜸한데, 일하는 사람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는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북적이다가 갑자기 손님이 없으니 그 시간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캐쉬어가 많지 않으면 한두 명이 꾸준히 사람들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주인도 아닌데 남아도는 인력에 대한 지출을 해야 하는 주인이 걱정이 된다. 남편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니, 나보고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밤 7시 이후에는 최대 4명, 최소 3명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거의 5-6명 정도의 사람들이 하릴없이 서로 얼굴 보는 시간들이 늘어갔다. 매니저에게 몇 번을 말해도 수정이 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스마트폰을 볼 수도 없고, 신문을 읽을 수도 없고. 매니저에게 말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7시 이후 몇 명이나 손님이 오는지, 적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포기하고 그 시간에 성경구절을 외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씩 외운다면 꽤 많이 낭송할 수 있지 않을까 큰 꿈을 꿨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며칠 시도하다가 그만두었다. 단 한편도 제대로 외우지 못했다. 시편 1편, 3편, 23편을 돌아가면서 외우다가 보지 않고 외우는 것에 매번 실패해서, 매일 한편씩 외우기는커녕 머리가 석회화되었다는 것만 알아냈다.
받는 돈은 같으나, 나의 존재의미가 무색해지는 그 일을 계속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프로모션을 하던지, 자리(혹은 시간)를 바꾸던지 변화가 있어야 직장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건가 보다. 일이 서툴렀을 때는 긴장하고 있었기에 손님의 숫자에 관심을 쓸 여유가 없었다. 매니저에게 밤일을 줄여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던 고집(?)은 결국 일찍 일을 접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어쩌면 잘한 일일 수 있다. 누군가는 그 일을 감당해야 하니, 내가 한다 그렇게 자위하면서 일했다. 매니저는 나의 "seniority(선임순서)"를 이야기하며, 조금 지나면 낮시간으로 바꿔주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 밀고 당기는 협상을 머릿속에서 벌써 하고, 귀찮아져서 포기했었다.
환불 정책이 그로서리 품목은 2주간이다. 어느 젊은 엄마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와서 기저귀 큰 박스를 리턴하고 다른 것으로 바꿨으면 한다고 했다. 영수증을 확인하니, 2주가 훨씬 넘었다. 나는 교환하기 전에 오피스에 물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매니저가 와서 영수증을 보더니 시간이 넘어서 안된다고 말한다. 갑자기 그녀의 눈에 물기가 비친다. 기저귀 큰 박스는 꽤 값이 나간다. 그녀는 이것이 값이 나가는 것이라 한 번만 봐달라고 해서, 매니저는 사무적으로 이번만 봐주라고 해서 교환처리를 해주었다.
조금 후에 젊은 엄마가 이런저런 물건을 쇼핑해서 나의 캐쉬대에 물건을 내려놓았다. 그때는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쯤이었다. 그 물건을 다 체크하고 나니, 50여 불쯤 되었던 것 같다. 그녀가 지갑을 뒤적일 때, 나는 이번 물건값은 내가 계산하겠다고 했다. 전화기에 전자지갑이 들어 있어서 물건값 계산이 언제나 가능하다. 그 엄마는 그럴 필요 없다고 손을 휘 내저었다. 나는 아니라고, 그냥 호의를 받으라고 말했다.
그녀의 행색이 초라하던가 그랬던 건 아니다. 기저귀 상자 환불을 원하며 내비쳤던 눈물에 내 마음이 움직였다. 물건을 사고 약간의 돈이 부족할 때 몇 번 도움 준 적이 있다. 나는 캐쉬어로만 있고, 뒤에 선 사람이 물건값을 계산해 주는 경우도 보게 되기도 한다. 이런 일은 일했던 시간들을 기분 좋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 된다.
진상 손님도 몇 있었지만, 그것은 따로 복기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매니저에게 이메일을 보낸 다음날, 그녀는 아침에 일하는 나에게 전화로 다른 파트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때 마침 온라인 주문이 폭주할 때였던가 보다. 예전에 하루 트레이닝을 받다가 그만둔 부서이기도 했다. 거절을 바로 하지 못하던 나는 태도가 돌변하여, "No!!"라고 외쳤다. 그리고 내 이메일을 보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눈치가 백 단인 매니저는 그만두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한 달만 있으면 심심해질 것이라며, 시간을 줄여서 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다고, 2주 후에 그만둘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마지막 2주를 보내는데 참으로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동료들에게는 그들과 마지막 대면하는 날 혹은 하루 전 말하려고 했다. 파트타임이 대부분이고, 자주 새사람이 투입되는 일의 속성상, 하루아침에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없어져도 그가 그만두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특별히 관계없는 사람들에게는 알릴 필요는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내 입으로 인사를 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스케줄을 훑어보며, 적절한 인사 시기를 정했다.
마지막 날에는 한국의 냄새가 나면서도 오래 두어도 괜찮은 간식거리를 생각하다가 찹쌀가루를 이용해, 오븐 케이크를 구웠다. 그리고 막내가 만든 쿠키도 옆에 담아, 휴게실 책상 위에 놓고, "help Yourself"라는 말과 민디라고 써서 놓았다. 저마다의 휴식시간에 와서 한두 개라도 집어먹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휴대폰의 구글 어카운트를 켜면, 약속이나 한 듯이 은퇴 후에 모두들 후회하고 우울감에 빠지며 시간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기사겸, 다큐가 올라온다. 매니저는 또 며칠 후 다른 일을 잡았느냐, 금방 후회할 텐데 해서, 나도 그런 기사 매일 본다. 네가 보낸 것 맞지? 되받아친다.
나는 매니저에게 따로 메일을 보내서, 밤 근무할 때 손님이 없으면 좀 힘들다, 일하는 사람을 줄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의견을 밝혔는데 그 2주 동안 달라진 것은 없었다.
마지막날, 2월 28일 토요일은 일하는 시간이 2시부터 8시까지였는데,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겪었던 것 같다. 내가 일하는 시간 전에도 바빴다고 했는데, 줄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줄이 엉켜서 줄어들지 않고, 이곳저곳에서 가격에 문제가 있는지 사내방송을 해대고, 한 곳에서는 블루베리 상자가 열려 바닥에 떨어져서 사람들이 밟고, 그야말로 도깨비시장이 되어있었다. 다만 한 가지, 큰 봉투에 담긴 프로즌 콩 봉투가 찢어져 캐쉬대 컨베어벨트에 구르고, 사람들이 밟고 그런 상상을 그 물건을 팔 때마다 했는데, 내가 있는 동안은 그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귀신같은 스캐너 솜씨를 발휘하며, 그 소란통을 잠재우는 식품점계의 원더우먼이 되어 피날레를 장식했으면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나는 셀프 체크 아웃에 묶여있어서 도울 수도 없었다. 줄 선 사람 중에 많이 사지 않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해결해 주는 것으로 최대한 돕는다.
그날의 상황을 사장이 봤다면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이 셀프를 맡을 테니 민디는 캐쉬대 하나를 맡으라고 했을 것이다. 그의 식품점 운영 최대 방침은 "고객들에게 최소한의 기다림을 보장함"으로 보이는데, 큰 카트를 끌고 장사진을 선 사람들을 보면, 까무러치려고 했을 것 같다. 그럴 때 매니저와 슈퍼바이저의 활약이 중요 요소가 된다. 그리고 각 부서와의 긴밀한 협조도.
일하면서 가장 부담되었던 일은 서베이 종이를 주는 것이었다. 내게 좋은 리뷰를 해달라는 그런 내용이 있는. 물건을 사가는 사람에게 그 쪽지를 얹어서 주라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었다. 95%는 어딘가에 버려질 그 종이는 고객에게 종이무게만큼의 부담을 주는 것이어서 끝까지 습관적으로 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때가 오면, 도네이션을 요구하는 말도 해야 했다. 그것도 내게는 힘들었다.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을 이렇게 어렵게 생각하니, 나의 성격에도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그런 것에서 벗어나서 홀가분하다.
어느 책에서인가. 일에 너무 깊이 몰두하지 말라는 글을 읽었던 것 같다. 사람관계도 그렇고, 적당히 힘을 쏟고, 적당히 하라는 말. 그 말이 많은 힘이 되었다. 처음에는 직원들과 친구처럼 어울릴 수 있지 않나, 했지만, 나뿐이 아니고 모두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을 그대로 두자, 조금 더 초연히 일할 수 있었다. 큰 즐거움이나 보람을 찾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처음에 사내방송을 할 때 내가 들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었지만, 나올 때쯤엔 새로운 직원들에게 훈수를 두고, 그들 대신 방송을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민 연수와 어울리지 않는 영어 구사 능력과 이해 능력 때문에 부끄러움을 안고 살았는데, 그런 면에서도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꽤나 유능한(?) 캐쉬어였지만, 사실 며칠 지나가면 내 자리는 흔적도 없이 채워질 것을 알고 있다. 가끔씩 캐쉬어들의 머리에 나의 모습이 떠오르겠지. 그렇게 나의 한때는 정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