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배운 공식이 모두 깨진 요즘. 저에게 남은 건 '일상' 뿐.
'팀장님. 요즘 중년남이 괴로운 이유가 뭔지 아세요?'
'뭘까나?'
'어릴 적에 배웠던 게 커보니 하나도 맞지 않는다는 거죠. 열심히 일하면서 돈 벌면 집도 사고, 성공하고 이렇게 될 줄 았았죠. 그런데 커보니,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이런 거 요즘 하나도 않맞지 않나요? '
부정할 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 역시 커가면서 믿어온 것이 맞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아직도 집 대출금은 계속 갚고 있고, 제가 속한 산업군은 시뻘건 오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녀 교육비가 이렇게 많이 들어갈 줄도 몰랐구요. 더군다나 제 40대 또래들이 너무 많아서 회사마다 중간관리자가 쌓여있다네요.
행복한 뉴스라도 보면 좀 낳을 듯 한데, 뉴스 역시 너무 극단적인 내용들로만 가득차 있으니 불안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수없으면 걸리는 병과 사건사고로 가득차있는 정말 위험한 사회로 변해가는듯 합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이 녹고 있다고 하구요. 동물들 서식지가 없어져서 인간과의 접촉이 늘어난다네요. 얼음이 녹으면서 예전에 죽은 동물 사체에서 신종 바이러스가 나올지도 모른답니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파와 바이든 지지파 간에 내전에 날지도 모른다네요. 헐.
세상은 거꾸로 가는걸까요? 그냥 반복되는 걸까요? 글로벌화는 바이러스로 다시 로컬화로 바뀌네요. 4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수혜자는 일반 소비자가 아니고, 그냥 ICT 기업들입니다. 뭐가 잘못된 걸까요? 아니면 원래 깨질 수 없는 계급 DNA가 인간들 속에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일까요?
1. 우리는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과 번영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2. 노오력해서 성공한 사람찾기 어려워졌다.
3. 20년 열심히 벌어도, 사교육비 해결 못하면 대출청산은 불가능하다.
4. 한우물을 파도, 그 동네가 망하면 같이 망한다.
5. 4차산업혁명은 모두를 위한 혁명이 아니다. 기득권의 생산수단 혁명일 뿐이다.
6. 스타일은 신분위장의 저렴한 술법이었는데, 이제 그것도 비싸다.
7.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은 창의적이지만, 생산성이 없는 창의성은 '좋아요'만 받을 수 있다.
8. 인맥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 얇고 넓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인맥도 케바케다.
9. 면역력을 키워야하는 세상인데, 불감증과 불안증만 커져간다.
10. 내면의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는데, 외면을 아이처럼 만드느라 더 바쁘다.
11. 죽고싶지만 떡뽁이를 먹고 싶다는 다중인격적 증후군 환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12. AI와의 채팅이 늘어난다. 이제 롤링페이퍼 따위는 없다.
13. 종교는 자유인데, 억지 부리기도 자유가 되고 있다.
"내 일상을 돌려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답답한 사회라 더 그렇습니다. 세상 살이 팍팍할 때 한잔 술로 고민을 날려버릴 친구들도 멀어졌구요. 한 직장에서 충성하고, 성실하면 왠만큼 살아가던 가치도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이제 중요한 건 '오늘 내가 보낸 하루'가 되어 버렸습니다.
인생살이에서 믿었던 공식이 깨지니,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갑자기 하지도 않던 일에 의미를 부여하자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돌에 실타래 하나 얹고 기도하면 신당'인가요? '돌을 깍아서 표정을 넣으면 사람이 되나요?' '돌로 만든 신상 앞에 무릎꿇은 사람은 그 안에서 살게 되지만, 신상이 앞에 있어도 자기 볼 것만 보는 사람은 자신으로 살아가게 되는 듯 합니다.'
어릴 적 보았던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우연히 오랜만에 만난 형님의 책상 위에서 보았습니다. 어렵기만 했던 책이었습니다. 기억나는 건 절벽 위에서 자연이 만들어낸 수면제에 대한 몇 구절 뿐. 바람이 살살 불고, 태양빛이 가득할 때 소금기 먹은 바닷내음이면 잠 잘온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솔직히 까뮈가 느꼈다는 삶의 이질감은 잘 공감이 가질 않았습니다. 단지 수면제 이야기만큼은 '아..나도 저렇게 잠들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리 짧은 고양이 한 마리가 스쿠터를 타고 절벽 위로 올라가 까뮈 옆에서 낮잠을 자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저의 소중한 가족을 동물로 변화시킵니다.
가족의 일상은 소중하니까요
마누라의 우아한 발차기를 사랑합니다.
뒤로 넘어가도 소중한 일상이기에
딸내미의 기말고사 성적보다는, 같이 만들 건담이야기를 하거나,
새로산 보쉬 드릴로 이것저것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아무래도 먼 미래에 더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은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