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키덜트에 부디 가치를 부여해주시길 두손모아
요즘 내가 하는 짓들을 보고 있으면 '스스로도 좀 헛웃음'이 나오곤 합니다. 프로젝트가 연기될 때마다, 취소될 때마다 책상 앞에 혼자 쭈그려 앉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운동을 하기에는 날씨가 춥기 때문입니다. 매일매일 그려온 생활 드로잉 결과가 쌓여갈수록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곤 합니다.
"내가 생활에서 포착하고 싶은 건 뭐지?"
애니메이터 출신의 아내와 미술 전공의 고등학생인 딸내미까지 우리 집은 '소위 금손이 서식하는 곳'입니다. 이 곳에서 非 미술 전공인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건 아닌가?라는 자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아웃풋의 수준과 퀄리티는 저따위의 수준을 상상 못 하게 상회합니다. 자괴감이 들곤 하지요. 하지만, 끊임없이 무언가 관찰하고 하나하나 기록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는 즐거움입니다.
벌써 낙서로 시작한 그림을 매일 그린 지 이제 얼추 2년이 되어갑니다. 상상만 하던 것을 실천으로 옮기기 시작한 후 여러모로 고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난 어떤 것을 기록하고 싶은가? 왜 지금 이런 그림이나, 글을 쓰고 싶을까? 등등
한 동안 '아내에게 딸에게 내가 그린 것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주로 듣는 조언은 '다시 해봐'였고요. ㅠㅠ
역시 들인 시간이 적으니 퀄리티 적으로 문제가 보입니다. 비례도 안 맞고, 일단 선 연습도 안되어있고요. 소위 말해 기본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 그리다 보면 실력이 늘어난다는데, 저에게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 같습니다. 딸아이의 조언은 차갑습니다. '선 연습과 인체 해부도 이해를 못해서 그래. 아빠'. 하루 12시간씩 그림만 그리는 딸아이를 따라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의 이 지루하고, 힘든 생활에 활력을 주는 유일한 요소가 그리고, 쓰고, 만들기인데 좀 못한다고 포기해야 하는가?'. 그래서 두꺼운 얼굴로 무장을 하고 주야장천 쓰고, 그리고, 만듭니다.
어제 우연히 유튜브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를 취재한 짧은 다큐를 한편 봤습니다. 너무 유명한 사람이라, 지브리 스튜디오 이야기는 많이들 들어보셨겠죠. 제가 제일 흥미롭게 본 점은 다름이 아니라 그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보통 캐릭터와 스토리를 생각하고, 구성한 후 하나하나의 장면을 이어서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의 방식은 굉장히 새로웠습니다. 연결되지 않는 몇 개의 꼭 만들고 싶은 장면을 먼저 스케치하고 나면,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뭔가를 만들어낼 때는 꼭 전문적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 꽂혀있던 '건담 도색은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슈퍼 스컬피를 사서 재탕해가면서 이것저것을 만들었다가 부숴버리고, 다시 만드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습니다'. 이상한 상상도 무지많이 합니다. 이러면 멋있겠다. 저러면 더 멋있겠다 하고요. ㅎㅎ
지난주 주말 3개 연속 재탕해가면서 만든 2090 셜록홈스입니다. 물론 홈즈 이전에 '2개를 망쳤습니다'
마이클 라우라는 미국 아트토이 작가의 전시회를 가본 건 아닙니다만, 인터넷 상에서 눈여겨보긴 했습니다. 정말 '멋지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Toy_장난감'이잖아요. 그냥 가지고 놀기 좋으면 그뿐인 것일진대, 이런 수준까지 그 퀄리티와 Inspiration을 끌어올렸구나라는 감탄을 하게 되더라고요.
와우! 그 자체입니다.
일단 남들이 만들어놓은 걸 보고, 더 좋은 걸로 뭔가를 만들려면 그거 자체가 스트레스이고 아웃풋 역시 조잡해지는 게 많았습니다. (제 직업적 특성이랄까요. 보고서 작업..ㅠㅠ) 일단 이런 류의 아웃풋은 기술은 배우되 하고 싶은 말은 남의 말을 듣지 말자 주의입니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글이던, 그림이던, 피규어어던 나타나는 거 아닐는지요...'
넵. 제가 하고 싶은 건 '의미 있고, 즐거운 소일거리'입니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예전과 달리 동시에 여러가지를 할 수 있다고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인간은 멀티태스킹을 한다치더라도 '능력 총합은 불변'하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폰보면서, 커피마시고, 걸어가면서 창작할 수 있는 영감은 얻을 수 있더라도 실제로 뭔가를 온전히 집중하거나/몰입하거나/만들어낸다고는 믿기 어렵습니다. 아저씨인 저에게 왠지 그들이 약간 '언밸런스해보입니다'.
맞던 틀리던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담은 장난감을 메시지 토이라고 생각합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