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그릇 머리에 쓰고 하늘고래 바라보기
요즘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막 만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전 거의 못 만납니다.
어떠냐구요?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서로 인정하고, 응원하고, 조언하고, 욕도 먹어야 사는 맛이 나는건데, 요즘은 사는 맛이 강제적으로 없어진거죠. 왜 좋은 브랜드 옷을 하나사도 누군가에게 오! 잘샀어!라는 말 정도는 들어줘야 하는거 아닌가요?"
강제적으로 지루해진 삶은 피폐해진 느낌입니다.
주변의 사람들과 그들에게 벌어진 다양한 일들을 그리고 싶었습니다만, 별 꺼리가 없어졌구요. 사람들은 마스크만 쓰고 다닙니다. 표정도 모르겠구요. 얕은 인연들이 깊어질 기회조차 박탈 당하는 느낌입니다. 모든 이들의 삶은 그들의 가족으로 돌아갔고, 대면 인간 관계는 최소화되어 갑니다. 왠만하면 만남을 미루면서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은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가리기 시작합니다.
조그마한 마을/동네에서 자랄 때는 앞집 형이 산 '나이키' 정도되는 신발이 우리 동네에 총 몇 켤레가 있는지저는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학교에서 유행하면 다른 학교에도 유행하고, 60명 중에서 10명 정도 구매가능한 나이키는 1980년대에 전국에 총 몇개 팔렸는지 카운팅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공식 = 한 학급 중 약 20%가 구매 x 한 학교내 한 학년은 10% x 전국 학교 수'
요즘은 안그래도 개성을 추구하느라 바쁘기에 '그 커다랗다는 데이터를 뒤져가며, 어떤 상품이 많이 팔리는지를 보고 있지요'. 비익 데이터입니다. 얼굴 가리기가 그 현상을 가속화하는 것 같습니다.
다들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사라져가는 것 같고, 개인성이 추구되는데, 이게 우리나라 특성 상 '비슷한 개인이 많다보니까 개인적 집단 주의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납니다. 개성을 아무리 추구해도 결국 서울 시내 어딘가에 있는 그 트렌드'입니다.
세상에 노력하지 않고, 타인의 인정을 받기에 쇼핑만큼 쉬운게 있을까요?
'난 오늘 000을 샀어요'
'난 오늘 000에 묵어요'
'난 오늘 000을 봤어요'
모두 일정한 금액을 내고나면 쉽게 내 것이 됩니다.
근데, 쇼핑으로 나를 표현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은 것 같습니다.
죽을 때 이러지 않을까요?
"아. 왜 난 평생 신라면을 고집했을까? 60이 넘어서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말고 진라면으로 갈아탈 것을... 손자야. 이 할애비는 후회가 막심하구나. 넌 부디 할애비의 전철을 밟지 말고 부지런히 갈아타면서 라면을 먹도로 하려므나..."
내가 돈을 내건 말건, 상황을 직시하지 말고 우회적으로 돌려서 상상을 하면 '자연스러운 욕구'가 발생합니다. 어제는 비가오면서 날씨가 쌀쌀했습니다. 문득 지브리 캐릭터들을 보고 있었고, 갑자기 우동 그릇을 쓴 요괴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아...늦잠 자는 딸내미 일어나면 우동이나 먹으러 가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ㅎㅎ
뭐 대단한 생각은 아니지만, 긴 시간이 지나도 어제 일요일 오후 1시 무렵은 아마 꽤 오래 제 기억에 남아있을듯 합니다. 물론 코로나로 우동은 포기하고 라면을 끓였지만요..ㅋㅋ
'하늘을 나는 고래'. 왠지 멋지죠?
'폐허가 된 세상'도 왠지 멋있습니다.
넷플릭스에 이런 거 많지요.
'하루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는데, 영 작업이 되지가 않더라구요.
왜 그럴까?라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평상 시에 상상을 많이 하지 않아서'
입니다.
사는게 지루해지거나, 괴로워질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아무래도 '상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현실과 연결성이 커지면
더욱 좋지요.
그래서 슈퍼스컬피를 사서 고래한마리와 우동그릇을 만들어 보렵니다.!!
마눌이 소리치네요
'그럼 이제 건담은 안 만드는 거냐? 도구랑 건담이랑 모두 얼마인 줄 알아?. 이씨...'
ㅋㅋㅋ